하얀 송판 위 맑고 파란 글씨처럼
‘숨’ Jaye 지영 윤
등록 : 2026-05-07 11:04
Life14. Hold, Mixed Media on Paper, 53.5×70㎝
하지만 그의 말을 듣곤 식당의 고충도 곧 이해됐다. 대부분의 식당은 한 줌 손님의 한입 한입 만족이 아닌 회전율이 생명이니 공간을 크게 차지하는 휠체어가 달가울 리 없고, 비 오는 날 미끄러져 생기는 민원에, 건물과 사람 빼곡한 서울이 좀 좁나…. 확보해야 하는 법적 각도 ‘탓’에 욱여넣은 경사로가 인도나 차도를 침범하기 일쑤란다. 그래서 어찌어찌 설치해도 채 1년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거다. 그렇다면 문턱이라도 없애지! 싶지만, 청결을 위해 현관을 두는 우리 문화에서 그 일이라고 어디 쉽겠는가. 그러고 보면 권리와 효율이 부딪히는 현장이 가장 난처하고 어렵지 싶다. 권리를 찾아주는 일은 정의롭기에 아름다운 일이기는 하지만, 생계라는 지엄한 책임 아래서는 얼굴 마주할 일을 아예 만들지 않는 편이 윤리적 명령을 피하는 방도라고 무의식중에 아는 건지도 모르겠다. 본래 우리는 눈앞의 약한 이에게 저도 모르게 손 내밀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에 말이다. 조금은 복잡한 마음으로 집에 가는 길, 지하철을 기다리다 스크린도어에 적힌 시에 눈이 갔다. 투명한 벽에 걸린 시구를 읽다보니 운현궁 고택 기둥마다 걸린 하얀 바탕에 맑고 파란 글씨로 적힌 주련(柱聯)이 떠올랐다. 분 단위로 정확한 열차 시스템에 나는 가끔 경탄하는데, 지하철의 시가 바로 “오일장에서 만나자”라며 어리숙한 기약을 하던 민족이 차마 참지 못해 걸어둔 도시의 주련이라는 걸 문득 깨달았다. 어쩌자고 웃는가 싶은 이들이 스쳐 지나고,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쉰다. 바탕 하얀 사람들의 푸른 마음이 쉴 새 없이 하느작거리는 도시이기도 하면 참 좋겠다. 글·그림 Jaye 지영 윤(‘나의 별로 가는 길’ 작가·화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