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의 꿈, 한강

‘숨’ Jaye 지영 윤

등록 : 2026-03-26 12:15
Life11. Lullaby Mixed Media on Paper & Digital Composite, 76.5×54㎝

일하러 모였으면 일만 잘하면 됐지 웬 밥은 그렇게들 먹자고 하는지…. 나조차 다 기억 못하는 내 편식 ‘메뉴판’을 펼쳐 보일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매일의 밥때와 격식을 차려야 하는 식사 자리가 부담이었다.

마음이 유난히 부대낄 때면 ‘사람’을 불편해하는 성격이라 그런 거라고 스스로에게 핑계 댔는데, 돌이켜보니 으뜸으로 ‘불편한 식사’는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항구에서 갈매기 떼를 앞에 두고 먹은 케밥 점심이었다. 아름다운 하늘과 탁 트인 바다, 그림 같은 항구를 보며 여유를 즐기리라 했던 건데, 내 입만 바라보며 고개를 까딱이는 수십 개의 검은 구슬 눈이라니. 감상은커녕 으아, 불편해. 절반도 먹지 못하고 도망쳤다.

그 후에도 갈매기는 국내외 여러 항구도시에서 마주치곤 했는데, 몇 년 전 원효대교를 건너다 만났을 땐 깜짝 놀랐다. 찰나였지만, 갈매기 한 마리가 차 옆에서 같은 속도로 날았던 것. 미국 샌프란시스코공항 옆 수면을 스칠 것 같은 샌마테오다리를 따라 낮은 바다 위를 차와 나란히 경주하듯 달리던 갈매기가 떠올랐다.

거기는 태평양 바다…, 그런데 한강에서 이런다고? 길이라도 잃었나 싶었는데 가만 보니 갈매기가 지천이었다. 이 정도 집단행동이라면 이유가 있겠다 싶었다. 예를 들면 자기들도 비둘기처럼 속 편하게 살겠다던가, 뭐 그런 거.

먹이 사냥이 아닌 비행 자체의 완성을 위해 더 높이 나는 꿈을 품는 ‘갈매기 조나단’이 흔하지 않은 건 리처드 바크가 책에서 다 말하지 않았던가. 제게 주어진 바다를 버리고 비둘기처럼 살겠다고 한강으로 온 녀석들이라고 내 멋대로 상상하고 나니 그 뒤로 자꾸 갈매기만 보였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뜨끔해서인지 보는 족족 속으로 타박했는데, 얼마 전 운전 중에 순간 엄마야, 했다. 갈매기 하나가 나를 응시하며 정면으로 날아들어서.


오랜만에 마주 본 새까만 구슬 눈에 20년 전, 회사 자원봉사에서 만났던 ‘ㅁ’자로 시작하는 예쁜 이름을 가진 꼬마가 생각났다. 스리랑카에서 온 대여섯 살쯤 된 아이가 까만 피부에 빼빼 말라 눈만 댕그란 게 어린 시절 이라크에서 찍은 내 사진을 보는 듯했다. 놀이동산을 함께 다녀야 했는데,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고 상처받은 고양이처럼 부지런히 토라지고 작은 발을 쿵쿵 구르며 성을 냈고, 한나절이 지나고 나서야 장난도 치고 웃었다. 나중에 듣기로 피부색이 달라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단다. 부모가 어떤 사정으로 한국에 왔는지는 모르지만, 나도 미국 이민 1세대인 고모가 있고 1.5세대 교포의 마음까지도 조금은 알기에, 이 가느다란 팔로 편견 넘치는 세상을 어찌 헤쳐가려나, 생각에 잠시 아득했다.

미국 한인 신문에서 ‘주류 사회’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의 당혹감을 기억한다. 몇십 년을 산 땅인데도 내가 ‘주류’가 아니라는 걸 순순히 인정한 사회라니. 그 단어에서 어쩐지 아메리칸드림을 좇아간 한국의 갈매기들이 품었을 체념, 그럼에도 이뤄낸 것에 대한 자긍심, 그리고 ‘이만하면 됐다’는 자족감이 함께 느껴졌다.

문득, 동네 단골 숯불닭갈비 집 외국인 청년이 떠오른다. 몇 년 전 처음 봤을 때와는 달리 요즘은 한국어가 편안해 보이기에 말을 붙여보니 학생이라고. 그제인가는 운전 중에 들린 중국어 방송에 내 귀를 의심했다. 몇 년 전 생긴 프로그램이라는데 그만큼 중국동포 커뮤니티가 많아졌다는 방증이리라.

그뿐인가. 간병인, 가사도우미 같은 돌봄의 현장과 영어 교사 같은 교육의 현장까지, 우리 생활 곳곳에는 ‘갈매기’들의 손길이 묻어 있다.

입맛이 나보다 성숙해져 버린 조카가 편식하지 말라며 나를 구박한다. 내 굳은 입맛을 바꾸기가 쉽지 않을 터인데…. 대신 ‘사람 편식’도 하는 고모이니, 일단 한강 갈매기부터 기쁘게 보겠다고 하면 좀 봐주려나?

글·그림 Jaye 지영 윤(‘나의 별로 가는 길’ 작가·화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