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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시민의 일상이 무대…단단한 문화 생태계 만들 것”

사람& ‘2026년 10대 혁신과제’ 발표 송형종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등록 : 2026-03-26 11:58
송형종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가 대학로센터 집무실에서 서울&과 인터뷰하고 있다.

서울살이를 하느라 쫓기듯 출퇴근하는 현대인들에게 문화예술은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스쳐 가는 한강과 동네 공원, 가족과 함께 걷는 산책길에 예술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면 어떨까.

올해 3월로 설립 22주년을 맞은 서울문화재단은 서울시가 문화예술 진흥을 위해 세운 출연기관이다.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돕는 튼튼한 ‘기차 레일’ 구실을 하며 시민과 예술을 간접적으로 이어왔다. 송형종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는 “예술의 진정한 가치는 팍팍한 서울 시민의 일상을 위로하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있다”며 “시민이 일상 속에서 문화 복지를 체감하고 세계인이 찾아오는 매력적인 ‘글로벌 문화도시 서울’을 만드는 것이 재단의 핵심 미션”이라고 역설했다.

연극 연출가 출신으로 예술과 교육 현장에서 평생을 보낸 그는 최근 글로벌 문화재단으로의 도약을 선언하며 ‘2026년 10대 혁신과제’를 발표했다. 이제 ‘예술 행정가’로서 천만 서울 시민을 위한 ‘거대한 무대’를 연출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17일 서울문화재단 대학로센터 집무실에서 송 대표를 만나 우리 삶 곁으로 한 걸음 더 다가온 서울의 문화예술 혁신 과제와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들었다.

단기 성과보다 10년 뒤를 보는 ‘농사꾼의 행정’

전남 고흥에서 농사꾼의 아들로 자란 송 대표는 문화예술 인력 양성과 청년 지원의 본질을 ‘농사'에 빗대어 설명했다. “예술 창작 지원이나 인재 양성은 당장 눈앞에 단기간의 성과가 나타나지 않으며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는 일입니다. 이는 봄에 씨앗을 뿌리고 오랜 시간 정성으로 가꿔야만 가을에 수확할 수 있는 농사의 속성과 완벽히 닮았습니다.”

그는 이어 ‘냉수 온탕 침법’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산간 지방에서 볍씨를 뿌리기 전, 찬물과 더운물에 번갈아 담가 씨앗 자체의 내성을 기르는 전통 농법이다. 그는 이 치열하고 세심한 준비 과정을 청년 예술인 지원에 그대로 접목했다. 올해 1~2월 첫선을 보인 청년 예술인 지원 사업 ‘서울 커넥트 스테이지’가 그 결실이다.


송 대표는 “매년 7만 명 넘는 예체능 전공자가 배출되지만 단 18%만이 현장에서 살아남는다”며 “졸업을 앞두고 캄캄한 막막함을 느끼며 꿈이 꺾이기 전 서울시와 재단이 한발 빠르게 디딤돌이 돼 이들에게 거친 현장을 버텨낼 내성을 길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특히 지원 시기를 통상적인 3월이 아닌 공연계 비수기인 1~2월로 앞당긴 것은 텅 빈 극장을 내주고 이들의 공백기를 최소화하기 위한 현장 맞춤형 역발상이었다.

닫힌 극장을 넘어 시민의 곁으로: 한강 ‘아트레킹’과 세대 공감 ‘축제 봄봄’

올해부터 시민들은 서울의 일상 공간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예술을 마주하게 된다. 송 대표는 지난달 올해 업무 계획을 통해 서울의 상징인 ‘한강’을 단순한 여가 공간을 넘어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예술이 머무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킬 구상을 내놨다.

그는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반드시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며 기존 도심 한가운데서 주로 열리던 거리예술축제 무대를 한강으로 확장한다고 밝혔다. 여의도에서 반포, 뚝섬, 잠실까지 무려 15㎞ 구간을 강바람과 함께 걸으며 공연과 전시를 만끽하는 ‘한강 아트레킹(Art+Trekking)’을 도입해 일상 속 예술 향유의 폭을 넓힐 예정이다.

다가오는 5월 가정의 달에는 서울 최초의 대규모 가족 예술축제인 ‘축제 봄봄’이 새롭게 시민들을 찾아간다. 5월1일부터 9일까지 서서울호수공원, 노들섬, 서울숲 등 권역별 랜드마크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진다. 송 대표는 “이런 기획의 본질은 ‘우리는 모두 한때 어린이였다’는 공감에 있다”고 설명했다. 가족 모두가 과거의 동심을 되찾고, 세대 간의 단절과 현대 사회의 외로움을 예술로 치유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다음’(NEXT)이 있는 지원, 기초예술의 선순환 생태계 구축

송 대표가 인터뷰 내내 강조한 또 다른 키워드는 ‘다음(NEXT)이 있는 지원’이다. 단발성 예산 지원을 넘어 완성된 작품이 널리 유통되어 시민 관객과 만나고 국외 무대까지 진출할 수 있도록 튼튼한 ‘선순환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그 핵심적 결실이 매년 가을 서울 전역에서 열리는 공연예술 통합 브랜드 ‘서울어텀페스타’다. 작년에 시작해 53만 명의 관객을 끌어모은 이 축제는 올해 운영 기간을 72일로 늘리고 25개 전 자치구의 참여를 목표로 대폭 확장한다. 가을이 되면 세계 관광객이 서울의 우수 기초예술을 맛보기 위해 찾아오는 명실상부한 ‘공연의 계절’로 브랜딩하겠다는 포부다.

공공 지원금에 의존하지 않고 자생적으로 우수 작품을 발표한 예술가를 조명하는 제4회 서울예술상의 ‘스팍 포커스상’ 신설도 같은 맥락이다. 송 대표는 “진정한 농부는 지원금을 받든 안 받든 봄이 오면 무조건 씨앗을 뿌린다”며 “공공 지원이 없어도 묵묵히 예술적 성취를 일궈낸 현장 예술가들의 자생력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것이야말로 독립적 창작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시상식은 다음달 5일 오후 5시 여의도 KBS홀에서 열리며 20일 밤 11시35분 KBS1 TV를 통해 시청할 수 있다.

“10년 뒤를 내다보는 굳건한 문화 시스템을 남기고 싶다”

자신을 책임감 있는 ‘예술 행정가’로 칭하는 송 대표는 남은 임기 동안 바라는 바가 명확했다. “당장 일희일비하는 눈앞의 단기적인 행사보다는 예술가가 지속해서 성장하고 천만 시민이 풍요로운 문화를 누리며 서울이 매력적인 문화도시로 우뚝 설 수 있는 굳건한 시스템을 10년 대계의 마음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과거 자신의 연극 작품 세계를 연출하던 그는, 이제 천만 시민이 살아 숨 쉬는 서울이라는 거대한 무대를 총괄 지휘하고 있다. “어쩌면 저는 지금도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차원의 연극을 연출하고 있는지 모릅니다”라며 호탕하게 웃는 송형종 대표. 그의 치열한 고민 끝에 다져질 단단한 문화 생태계가 서울 시민들의 고단한 일상에 어떠한 변화를 불어넣을지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글·사진 하변길 기자 seoul0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