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09_Beyond Mixed Media on Paper, 53.5×70㎝
외국을 들락거리며 자란 탓도 있겠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나는 천상 떠돌이만 같았다. 파트너사와 우리 회사, ‘내 집, 네 집’을 번갈아 만나기 마련인 사업 개발이 몸에 익기 시작하던 시기로 접어들며 더욱 그랬던 성싶다. 남의 일터를 돌아다닐라치면 자연스러운 태도에 나를 동료로 착각한 분들의 목례를 받기도 했는데, 그럴 땐 수상한 사람으로 비칠세라 뻔뻔하게도 답 목례를 건넸다. 그렇게 보게 된 다양한 회사의 사무 공간에는 사람 사는 집처럼 살림의 형편과 규모, 솜씨는 물론, ‘삶’을 꾸리려 애쓰는 크고 작은 마음이 담겼다.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고 눈높이에는 하늘만 둔 매끈 반짝한 사무실이 있는가 하면, 식물로 파티션을 두른 ‘자연주의’ 사무실도 있고, 이사 중인가 싶도록 어수선한 곳도 있다.
그런 일터를 채우는 건 매년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 그중에서 새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려 입사한 이들을 우리는 ‘신입’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정겨운 호칭보다 ‘제트(Z)세대’라는 용어가 더 자주 들리는 듯하다. 얼마 전 Z세대의 몰입에 대한 기업 대상 강연을 준비하다 문득, 의아해졌다. 어쩌다가 유독 Z세대는 일터에서 이렇게까지나 ‘분석의 대상’이 돼버린 걸까?
강연 당일,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훌륭한 조직문화를 갖춘 기업들이 Z세대를 주제로 발표하는 걸 듣다보니 문득 칠팔 년 전 효창공원역 옆 좁다란 골목길에서 자그마한 책가방 둘이 나란히 걸어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타박타박 걸음이 귀엽기는 해도 내 갈 길이 바빠 아이들을 앞지르려 발걸음을 조금 서두르니 둘의 대화가 들렸다.
“이건 내가 유딩 때 얘긴데, ….” 고딩, 중딩에 초딩은 들어봤어도 유딩이라는 말은 처음. 콩알들이 유치원 시절을 마치 아득한 과거처럼 회상하며 스스로 우위를 점하고 경계를 짓는 ‘선배'의 위치에 서는 모습이 어찌나 우습던지 혼자 쿡쿡댔는데, 그 기억이 왜 하필 그 자리에서 소환되었을까? 질문을 곱씹다 김춘수의 시 ‘꽃’에 생각이 머물렀다.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너는 나에게로 와 꽃이 되었다는데, 우리가 Z세대라는 이름을 붙여 불러주는 건 어떤 마음인가, 하고.
몇 주를 고민하며 준비했던 강연을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음날 별렀던 영화를 보러 갔다. 폐위되며 낯선 이름을 받아 유배 간 17살 소년 왕의 처연한 서사와 이 소년을 금맥이 될 ‘비즈니스’로 알고 유치한 어른의 서사가 만나며 영화는 전개된다. 12세 관람가인 줄 알고 봤건만 뜻밖에도 유혈이 낭자한 장면에 욕도 더러 섞여 나오는 게 아닌가. 올해 12살이 된 조카를 떠올리니 순간 모골이 송연했다. 소년 왕도 조카도, 세상이 너무 빨리 키운 건 아닌가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아이’에겐 잘만 기준을 세우는 세상인데, 그렇다면 정작 우리는, 어른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그와 함께 전날 여의도 행사장에서 만났던 Z세대가 생각났다. 상을 받는 엄마에게 꽃다발을 건네러 잠시 들렀다가, 저녁도 거른 채 상사의 전화를 받고 그는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물개박수를 치다 말고 배꼽인사를 꾸벅, 하고는 서둘러 나가던 이십 대 중반의 모습에 우리는 한참 웃었다. 어쩌면 집단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건 눈 마주친 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야근하러 간다며 보인 환한 웃음을 복기해보니 그간 읽었던 보고서와 애써 준비했던 강의는 하얗게 휘발되고 네게 못다 한 말만 남았다. 부디 일터에서도 삶에서도 천천히 자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기를. 만약 그리되지 않더라도 땅에 굳게 발 디딘 네 시선은 눈앞의 현실 너머 펼쳐진 세계를 향할 수 있기를…. 너는 참으로 어여쁘므로.
글·그림 Jaye 지영 윤(‘나의 별로 가는 길’ 작가·화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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