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08 Becoming Mixed Media on Paper, 76.5×54㎝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벌건 대낮에 ‘놀러’ 다니는 사람들을 내내 부러워했다. 대학생 때는 어학당 다닌다, 뭐 한다, 새벽같이 집을 나섰고, 학교 가서 수업 듣고 각종 모임과 과외까지 마치면 밤 12시 가까이 귀가하기 일쑤였다. 직장 다니면서도 몸이 한 개인 게 원망스럽도록 바빴다.
그래도 노는 건 중요하게 여겨서 컨설턴트 ‘어린이’ 시절 언젠가는 밤을 아예 새우다시피 일한 다음날 쉬라고 집에 일찍 보내주자, 황금 같은 평일 오후를 잠으로 보낼 수 없다며 외출에 나섰다. 딱히 갈 데는 없어 작은 가게를 개업한 선배를 찾아가 점심을 얻어먹고 카페에 가서 앉았는데, 맞은편 갤러리아백화점이었던가, 내 또래 여자 둘이 나오는 게 보였다. 상큼한 옷차림으로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길을 건너는 그들의 양손엔 쇼핑백이 한가득했다. 세상에나,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게 비유가 아니라 실제 벌어지는 물리적 현상임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나의 바쁜 생활은 20년 넘는 직장 생활 동안 크게 달라지지 않아 3년 전쯤에도 회의 가던 길에 들른 백화점에서 동료들과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도대체 이 많은 사람은 이 시간에 어떻게 여기에 있느냐고. 직장에서 벗어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발 동동 무언가를 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성격이 다른 다섯 가지 일을 하느라 띄운 수십 개의 노트북 창을 보며 누구는 남(南)으로 창을 내겠다고 했는데, 하나만 내서 좋겠다 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내 작업실 통창을 굽이굽이 두른 넝쿨에 눈길이 갔다. 시어머니가 농사지어 보내주신 고구마에 싹이 났길래 재미 삼아 물에 꽂은 것에서 시작된 넝쿨이다. 잎사귀나 좀 보자고 한 건데 두 달이 다 돼가는 요즘 2~3m 넘는 넝쿨이 여럿이다. 무한정 자라는 고구마를 보고 있자니 엉뚱한 질문이 머리를 맴돌았다.
‘고구마는 자라서 무엇이 될까?’
이미 다 자라서 어엿한 성체가 된 고구마인데, 나는 너더러 무엇이 되라고 물에 꽂았으며, 그 마음을 받은 너는 뭐가 될 줄 알고 이렇게 어딘가를 향해 쭉쭉 뻗어 자라느냐, 속말을 혼자 주거니 받거니 하며 뜨개실을 활용해 넝쿨을 높낮이 다양하게, 방향도 틀어가며 얼기설기 둘러 나만의 정글을 꿈꾼다. 순을 쳐주고, 하루가 멀다고 물을 채우고, 점점 야위어가는 고구마 본체가 걱정스러워 요즘은 영양제도 몇 방울씩 준다.
처음에는 무슨 짓이냐, 하시던 아빠가 나의 헛짓거리를 들여다본다. 혀를 쯧쯧 차면서도 재미있어하는 눈치인데, “아빠, 얘가 이러다 꽃을 피우는 건 아닐까요?” 하니 고구마꽃은 본 적 없으시단다. 그렇다면 꽃에 일가견이 있는 분들에게 물으리라, 하곤 40대 후반부터 ‘방 한 칸의 우주’를 노래하는 90대까지 세대를 넘어 문우로 모인 수필반 단톡방에 올렸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 방에도 고구마꽃을 본 사람이 없단다. 번성 중인 나의 고구마 넝쿨 사진에 70대 수필가 한 분이 자기도 이런 일 벌이는 걸 좋아한다며 반색했다.
문득 지난해 만난 마을 정원사가 떠올랐다. 은퇴 뒤 동네 가로수며 공원 조경을 다듬는 봉사를 하는데, 예전에는 주변에 베푸는 ‘여유 있는’ 분들을 보며 나도 저 나이 되면 그렇게 되겠구나, 했단다. 자기가 그 나이를 지나고 보니 심성이 아니고 노력이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그러고 보니 삶의 경험을 양분 삼아 뭐가 될지는 몰라도 파란 잎을 하나씩 내놓으며 뻗어나가는 수필가들의 모습이 고구마를 똑 닮았다. 몇 주 만에 만난 70대 문우가 신나서 이야기한다. 작은 양파를 물에 꽂았는데 그 싹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르겠다고. 백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다는 고구마꽃이 눈앞에 스친다. 고구마꽃이 피었습니다!
글·그림 Jaye 지영 윤(‘나의 별로 가는 길’ 작가·화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