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면서 그들의 증상은 한결 나아졌다
성인 발달장애인들의 ‘자립’ 이야기-보호 대상에서 당당한 사회구성원으로
등록 : 2016-04-14 19:16 수정 : 2016-04-28 13:54
도봉구청 1층에 자리한 카페 ‘화음’에서 이가영씨가 손님에게 커피를 건네주고 있다. 이곳에서는 이씨 이외에 김정애, 임사인씨가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다.
산울베리 직원 박재홍씨가 사회체육 동호인 교사의 지도들 받아 따뜻한 봄볕 아래 농구를 즐기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센터와 장애부모들이 발달장애인들이 농장 같은 탁 트인 공간에서 일할 수 있도록 2010년 블루베리 농장을 열고 산울베리 사회적협동조합도 꾸렸다. 블루베리 나무는 기후에 덜 민감하고 성인 키 높이 정도로 자라 발달장애인들이 작업하기에 덜 위험하다. 박씨는 산울베리 직원이 되어 지하철 묘목 배달을 하면서 부쩍 어른스러워졌다. 박씨는 한번 하기 시작한 일은 삼시 세끼 챙기듯 빠지지 않고 해야 한다. 10년 전부터 날마다 1000원씩 은행에 가서 저금을 했고, 얼마 전부터 2000원으로 늘렸다. 고집불통인 그가 저축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갑에 1000원짜리를 수십장 넣고 다니는 그가 걱정돼 이영심 산울베리 사무국장이 경제 개념도 알려 줄 겸 저축을 하자고 제안했다. 예상대로 그는 완강하게 거부하고 센터까지 나오지 않았다. 부모님은 30년 동안 자신들도 꺾지 못한 고집이라며 포기하라고 했지만, 이 국장은 이 고비를 넘겨야 한다며 오히려 부모님을 설득했다. 두달 남짓 집에서 심심하게 지내던 박씨는 센터에 가겠다고 스스로 나섰다. 이렇게 모은 돈을 박씨는 이 국장의 조언을 따라 아버지 칠순 잔치비와 해외여행비로 내놓았다. 박씨와 같은 산울베리 직원 노우성(26)씨도 최근 저축을 시작했다. 자폐성 장애를 가진 그는 갑자기 사라지곤 한다. 자원봉사자 두 사람도 그를 놓치기 일쑤여서 애를 먹었다. 센터에서 생활하며 그런 행동도 덜해졌다. 그런데 그가 은행에 갈 때면 신문, 잡지를 찢어 와 은행에서 센터로 항의를 해 왔다. 센터 선생님들이 뭘 찢어 오나 살펴봤더니 자기 또래의 양복 입고 안경 낀 멋진 청년들의 사진이었다. 제대로 표현은 못하지만 그도 여느 청춘들처럼 마음에 열망을 담고 있다. 도봉구청 화음 카페 주문대 앞에 선 지적장애인 이가영(28)씨는 손님이 오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고 주문 받은 음료를 손님께 내놓으며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발음이 정확하지 않고 목소리가 작아 웅얼거리는 것처럼 들리지만 대신 그는 예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이씨는 특수학교 전공과(전문대 과정)를 졸업한 뒤 지역 보호작업장에서 2년 일했다. 손아귀에 힘이 약한 그에겐 집게 만들기, 박스 접는 일조차 힘들었다. 그가 일할 수 있길 바라는 엄마와 함께 여기저기 교육 프로그램을 찾아다니던 중 주말 직업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수강생 부모들이 공동체 일자리를 만들자고 뜻을 모으면서 각자 할 수 있은 일을 찾아 연습했다. 이씨는 똑바로 걷지 못하고 아귀힘이 약하지만, 표정이 밝고 인사도 잘해 고객 응대 중심의 일을 배웠다. 이씨는 카페 일을 하면서 이전보다 훨씬 밝아졌다. 사람들과 눈도 못 맞추고 늘 자신감이 없었던 그가 이제는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피곤하고 몸이 아파도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일을 한다. 집에 가서는 허리 아프다고 투정을 부리기도 하지만, 카페에서 반나절 줄곧 서 있어도 군소리 없이 참아 낸다. 일터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리스타로 자리 잡자 성격도 변화 화음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는 자폐성 장애인 김정애(30)씨는 오후 시간에 커피 내리는 일을 맡았다. 원두를 갈아 커피 가루를 압축해 에스프레소액을 만든다. 커피머신 주위에 가루가 떨어지면 솔로 깨끗이 쓸어 내는 게 영락없는 바리스타다. 특수학교를 졸업하고 김씨는 장애인복지관을 다녔다. 그곳에서 취업 준비 훈련을 받으며 나사 조립과 박스접기 등 단순 작업을 2년 동안 했다. 그는 장애로 표현을 잘 못하고, 폐쇄성도 있어 거의 혼자 지냈다. 감정 기복도 심했다. 주말 직업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 과일 껍질을 잘 깎는 능력을 찾아내 주스 만들기를 반복 훈련했다. 에스프레소를 만드는 일도 배웠다. 스스로 ‘바리스타’라고 말하는 김씨는 요즘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진다. 자주 오는 손님을 알아차려 먼저 인사하기도 한다. 의사소통은 어렵지만 다른 사람들을 보고 받아들여 가고 있다. 변화에 예민하고 가끔 하던 문제 행동들도 일하면서 많이 줄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첫마디가 “카페 가야 한다”고 할 만큼 김씨는 지금 하는 일을 좋아한다. 발달장애인 직업재활 전문가인 김재홍 성분도복지관 사무국장은 “일반적인 잣대의 자립이면, 많은 발달장애인들은 평생 자립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발달장애인의 자립은 주변의 지원을 받아 능력을 현재보다 10~20%쯤 올리며, 사회 속에서 의미 있게 살아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현숙 기자 hslee@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