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보다 자립! 발달장애인 일터

등록 : 2016-04-14 19:10 수정 : 2016-04-28 13:46
강남구 일원동 카페 ‘래그랜느’ 작업장에서 빵을 만들고 있는 발달장애인들. 장애인들에게 일터는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받는 터전이자 장애를 개선하는 평생교육기관이기도 하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가족이 만드는 발달장애인 일터 사회적기업 등 지원제도도 큰 힘

강남구 일원동엔 특별한 카페가 있다. 입구 노란색 벽의 커다란 말풍선 속에는 사회적기업 래그랜느란 글자와 커피잔이 그려져 있다. 커피와 수제 쿠키를 파는 카페 맞은편 작업장에는 20~30대 발달장애인 5명이 한창 일하고 있다. 반죽 밀기, 밀가루 묻히기, 쿠키에 노른자 칠하기 등 각자 맡은 일을 놀이하듯 즐겁게 해낸다. 2명의 제과제빵 기술자들이 곁에서 지도하며 오븐에 빵과 쿠키 굽는 일을 한다.

남기철(64) 대표는 2010년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들에게 일할 기회를 주기 위해 회사를 만들었다. 래그랜느는 ‘밀알’이란 뜻의 불어로, 하나의 씨앗이 되어 발달장애인들이 자립할 수 있는 공간이 여러 곳 생겨 나기를 바라는 그의 마음이 담겨 있다.

도봉구청 1층의 카페 ‘화음’은 발달장애인들에게는 꿈의 일터다. 탁 트이고 밝아 일하기 좋고, 늘 사람들이 들고 나 사회 적응 훈련도 자연스레 할 수 있다. 주 5일 하루 6시간씩 일하며 이들은 최저임금 기준으로 월급을 받는다. 발달장애 청년 3명이 바리스타이면서 고객 서비스도 한다. 비장애인 3명이 이들을 돕고 있다. 카페 운영을 맡고 있는 ‘세상을 움직이는 힘(세움)’은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2010년에 만든 사회적기업이다.

최근 장애인 가족들이 성인기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위한 작은 일터를 만드는 사례들이 생겨 나고 있다.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등 사회적경제 지원 제도를 활용하기도 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발달장애인들은 자신의 능력에 맞춰 일하며, 느리고 더디더라도 생산적으로 사회에 기여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발달장애인법)’이 시행됐다. 이 법이 시행되면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발달장애인들이 성년후견제도를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활동 지원 급여, 고용 및 직업교육 지원, 발달장애인지원센터 설립 등의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

제도는 나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성인기 발달장애인들은 학교를 졸업하면 울타리 없는 허허벌판에 선다. 졸업 뒤 복지관의 직업재활센터나 보호작업장을 찾지만 한곳에서 3년을 계속 있을 수 없다. 장애인들에게 골고루 기회를 준다는 시설 운영 원칙 때문이다. 이렇게 몇번 시설들을 돌고 나면 갈 곳이 없어진다. 많은 발달장애인들이 집에만 있다 보면, 그동안 교육과 훈련으로 개선되었던 증상들이 나빠진다. 가족들은 난감하기 그지없다.

영화 <말아톤>의 주인공인 발달장애인 초원이의 엄마는 평생 소원이 “자식보다 하루 먼저 가는 것”이었다. 가족의 희생과 사랑이 아무리 커도 어른인 초원이에게 채워지지 않는 게 있었다. 초원이가 자기결정권을 존중받을 때, 그 자신도 가족도 비로소 행복해졌다.

이현숙 기자 hs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