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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쿠바 농장의 ‘성미’가 신촌의 ‘나눔’으로

사람& 서대문구 ‘나눔 1%의 기적’ 참여 ‘데사유노’ 엘리자베스 대표

등록 : 2025-12-25 12:40
서대문구 신촌역 앞 신촌 청년푸드스토어 점포 중 하나인 ‘데사유노’를 운영하는 산체스 리베로 엘리자베스 주닐다씨가 식당 앞에서 서울앤과 인터뷰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역 건너편 청년들의 열기로 가득한 ‘신촌 청년푸드스토어’ 2층에는 조금 특별한 식당이 있다. 쿠바 가정식의 따뜻함을 전하는 ‘데사유노’(Desayuno)다. 이곳 산체스 리베로 엘리자베스 주닐다(33) 대표는 단순히 이국적인 음식을 파는 요리사가 아니다. 그는 1921년 멕시코에서 쿠바 마탄사스로 이주해 평생을 조국 독립을 위해 재정 지원을 멈추지 않았던 이승준 선생의 고조손녀다. 개업 6개월 만인 이달 서대문구(구청장 이성헌)가 운영 중인 ‘나눔 1%의 기적’에 168번째 점포로 이름을 올렸다. 나눔 1%의 기적은 소상공인과 기업들이 수익의 1%를 지역사회에 기부하는 운동으로 2023년 시작됐다. 그를 만나 100년에 걸친 가족사와 한국 정착기를 깊이 있게 들어보았다.

사라진 성씨 속 지켜낸 한국인의 피

엘리자베스씨의 이름에는 한국 성씨인 ‘이’가 보이지 않는다. 쿠바의 이름 짓는 방법 때문에 세대를 거치며 부계 성씨가 뒤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강렬한 정체성을 가슴에 품고 자랐다.

“고조부와 증조부 세대까지는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 100% 한국인이었어요. 그다음 세대부터 현지인과 결혼하며 혈통이 섞이긴 했지만요.” 하지만 엘리자베스씨는 어린 시절 증조할머니에게서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배웠다.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시던 열다섯 살까지였다. 학교에 입학한 뒤에야 자신이 남들과 다른 언어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친구들이 쓰는 스페인어 대신 무의식적으로 한국어인 ‘베개’ 같은 단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무슨 말이냐고 물을 때마다 그는 자신이 한국인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나아가 집안의 식탁이 한국식이었다. 쿠바 현지인들은 밥에 소금과 기름을 넣어 먹지만, 그의 집은 항상 한국식으로 아무것도 넣지 않은 밥을 지어 먹었다. 쿠바인들이 먹지 않고 버리는 고구마 줄기를 뜯어와 나물로 무치고, 산에서 고사리를 채취해 요리했다. 고추장과 김치는 물론 시장에서 팔지 않는 콩나물까지 집에서 직접 길러 먹기도 했다.

그의 가계는 독립운동의 거대한 줄기였다. 고조부 이승준 선생뿐만 아니라 증조부 이병호 선생, 그리고 외고조부이자 쿠바 한인 사회의 첫 목사였던 장영기 선생까지 총 세 명의 독립유공자가 포진해 있다. 장영기 목사는 쿠바 한인들의 정신적 지주였으며, 이승준 선생은 척박한 에네켄(사탕수수) 농장에서 고된 노동 끝에 받은 한 달 급여 4달러 중 무려 75%에 달하는 3달러를 독립자금으로 보낼 만큼 조국 독립에 헌신적이었다. 1924년 대한인국민회 쿠바 마탄사스 지방회에 가입한 뒤 1945년 광복을 맞이할 때까지 무려 20년 넘는 세월 동안이었다. 이승준 선생은 당시 열한 명의 남매에다 친척들까지 더해 무척 큰 대가족을 부양해야 했음에도 자금 전달을 멈추지 않았다.


13명의 쿠바 무명 영웅을 찾아낸 숨은 공로자

엘리자베스씨가 한국 땅을 밟은 것은 운명적인 이끌림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배웠던 한국어 덕분에 그는 쿠바에서 한국인 여행객을 상대로 민박집 일을 도우며 한국어 실력을 키웠다. 그러던 중 쿠바를 방문해 독립유공자 후손 실태조사를 하러 온 한 대학교수를 우연히 만나 자신의 고조부가 독립유공자였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됐다.

그는 그 교수를 도와 쿠바 전역을 돌며 잊혀가던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을 도왔다. “쿠바 이름만 쓰다보니 저처럼 후손들이 자기 할아버지가 독립유공자인지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었어요. 집집이 방문해 옛날 사진과 서류를 대조하며 교수님이 가져왔던 13명의 독립유공자 후손을 모두 찾아냈을 때의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후 그는 특별 귀화를 통해 이중 국적을 얻었고, 쿠바를 방문했던 한국인 남성과 결혼해 2016년 한국으로 거주를 옮기게 됐다.

“한국에서 초기 정착은 쉽지 않았습니다. 문화적 차이도 있었고 한동안 여행업에 종사하던 남편의 일이 코로나19 탓에 끊기는 바람에 힘든 시기도 겪었고요.” 아이 둘을 낳아 키우느라 그동안 여유가 없던 그의 눈에 올해 2월 구청의 청년 창업 지원 프로그램이 들어왔다. 경력 단절로 인해 잘할 수 있을까 우려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남편과 상의해 과감한 도전을 결정했다. 그가 오픈한 식당 이름인 데사유노는 스페인어로 ‘아침 식사’를 의미한다. 그는 이곳에서 쿠바 가정식 메뉴인 ‘쿠바니토’를 포함해 쿠바 사람들이 즐겨 먹는 각종 스페인 음식을 선보인다.

‘나눔 정신’과 ‘엄마 마음’을 잇다

엘리자베스씨가 개업 6개월 만에 선뜻 수익의 1%를 기탁하기로 한 결정은 그의 가문에 흐르는 ‘나눔의 디엔에이(DNA)’에서 기인한다. 100년 전 쿠바의 한인들은 끼니마다 쌀 한 숟가락을 아껴 모은 ‘성미’(誠米)를 독립자금으로 보냈다. 이승준 고조부의 나눔 정신을 본받아서다. “나눔 1% 캠페인 정보를 알게 되자마자 바로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금액의 크기를 떠나서, 100년 전 세대들이 겪었던 고통과 그들이 보여준 헌신을 조금이나마 따라가고 싶었습니다.”

그는 한국에 들어온 다른 쿠바 한인 후손들에게도 든든한 버팀목이다. 낯선 한국 땅에 도착한 후손들에게 입을 옷과 생필품을 나누고, 그들이 국적을 취득하고 정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아끼지 않는 등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력자 노릇을 해왔다.

“증조할머니로부터는 주변 사람들을 따뜻하게 챙기고 배불리 먹이려는 한국인 특유의 ‘엄마 마음'을 그대로 이어받았나봅니다. 그전에는 해본 적 없는 식당일인데 식당을 찾는 단골들과 인연을 쌓고 손님들이 맛있게 잘 먹었다고 얘기해주면 큰 보람을 느끼니 말입니다.”

그에게 창업 지원 기간이 끝난 뒤 계획을 물었더니 자신만의 식당을 차리는 것이라고 주저함 없이 말했다. 한국 내 쿠바인들과 한국인들이 함께 어우러져 음악과 음식을 나누는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조국의 해방을 기다리며 성금을 보낸 나눔의 마음과 주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라는 엄마 마음을 동시에 물려받은 그는 고국의 품 안에서 숭고한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글·사진 하변길 기자 seoul0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