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강북지역자활센터 수유리두부 사업 이해원 담당자(가운데)와 자활사업 참여 주민들이 제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강북구 제공
지난 10월 서울 강북구 현대백화점 미아점 6층에서는 백화점이 주관하는 2주간의 ‘로컬상회 시식 행사’가 열렸다. 행사 기간 중 ‘수유리두부’를 시식한 고객들은 한결같이 ‘맛있다’ ‘고소하다’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고객들의 수유리두부 구매 문의가 잇따르자 백화점은 현재 식품관 납품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 자활이라는 이름으로는 좀처럼 닿기 어려웠던 무대에 서울강북지역자활센터의 두부가 올라선 순간이었다.
이 장면을 이해하려면 ‘자활’이 무엇인지부터 짚을 필요가 있다. 자활은 단순한 공공 일자리가 아니다. 실직이나 사업 실패, 건강 악화 등으로 삶의 기반이 무너진 사람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지자체가 돕는 제도다. 참여자 상당수는 한 번 이상 실패를 경험했고 그 실패로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난 상태다. 자활사업은 이들이 다시 일을 배우고, 소득을 만들며, 궁극적으로는 자활 바깥으로 나감으로써 재기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다.
그래서 자활 현장은 늘 쉽지 않다. 의욕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현실이 반복되는데 이는 서울강북지역자활센터도 마찬가지였다. 자활사업은 자활 참여자들의 재기를 돕는 사업인 동시에 센터 스스로도 재도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강북지역자활센터는 이미 한 차례 두부 사업에 도전했다가 쓰라린 실패를 경험했다. 2010년부터 2017년까지 운영했던 ‘알콩달콩’ 사업이다. 당시 모델은 1~2명이 즉석두부 가게를 여는 개인 창업 중심 방식이었다. 동네 곳곳에 즉석두부 가게를 만들어 여러 사업 참여자들의 자립을 돕겠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이 구조는 취약했다. 개인이 포기하거나 마음을 바꾸면 그동안 쌓아온 기반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즉석에서 만든 두부를 가게를 방문한 소비자에게만 판매하는 방식이라 다른 판로는 없었다. 매장이 늘어도 각각이 개별화돼 공동 네트워크를 만들기 어려웠다. 지역의 대표 먹거리로 자리 잡기보다는 참여자가 서로 보이지 않는 경쟁 관계가 형성되기도 했다.
수유리두부 매장에 두부가 진열돼 있다. 강북구 제공
품질과 위생 관리 역시 부담이었다. 매장이 흩어져 있다보니 품질 기준을 통일하기 어려웠고, 먹을거리를 다룬다는 점에서 센터로서도 위생 관리에 늘 불안이 따랐다. 최대 다섯 곳까지 늘어났던 매장은 7년 만에 결국 모두 문을 닫았다. 참여자들도 흩어졌다. 남은 것은 ‘두부라는 아이템 자체는 가능성이 있지만, 이 방식으로는 지속될 수 없다’는 뼈아픈 교훈이었다.
이경주 강북지역자활센터장은 “당시에는 지역사회 유통 구조나 사업 방식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다”며 “해보면서 즉석 제조 모델로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개인 창업이 아니라 식품 제조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은 그 무렵 자리 잡았지만, 자활사업단을 새로 꾸려 재도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내부에서도 ‘실패한 두부 사업을 꼭 다시 해야 하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 적지 않았다.
수유리두부 사업 참여 주민이 손님의 두부 시식을 돕고 있다. 강북구 제공
우여곡절 끝에 2024년 4월 강북지역자활센터는 두부 사업 재도전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개인 창업 방식이 아니라 사업단 방식이었다. 수유리두부 사업단을 출범시켜 생산은 즉석두부가 아닌 포장두부를 선택했다. 생산과 함께 영업, 배송, 행정 등 조직을 꾸렸으며 식품 제조 방식으로 생산된 두부를 도소매 업체에 납품한다는 구상을 위주로 구조를 짰다.
하지만 사업 참여자 누구도 식품 제조 경험이 없었다. 두부를 즐겨 먹지 않던 50~60대 남성 참여자도 적지 않았다. 처음에는 콩을 갈아보는 것부터 시작했고, 실패한 두부가 쌓여도 다시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 나타났다. 수제두부 전문 제조업체인 하나식품 유동희 대표다. 그는 “퇴직자들이 다시 일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에 공감해 수유리두부 참여자 교육을 맡게 됐다”며 “원래 컨설팅은 한두 명을 대상으로 1회로 끝내는데 수유리두부만큼은 열 차례 정도 방문해 교육과 공정 점검까지 도와줬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자신이 사용하던 장비까지 들고 와 공정을 함께 만들었다. 이경주 센터장은 “그만큼 열정적으로 일을 추진한 데 대해 기술과 장비, 노하우가 현장으로 들어오면서 참여자들은 ‘상품으로서의 두부’를 처음 체감하기 시작했다. 사업단은 12명으로 시작해 현재 14명으로 늘었다. 작업장은 약 28평 규모다. 콩 불리기부터 여과, 비지 분리, 가열, 성형, 실링 포장, 살균과 냉각까지 전 공정을 갖춰 하루 최대 500모 정도 생산이 가능하게 됐다.
서울강북지역자활센터 수유리두부 사업 참여 주민이 전동 카트를 운행하고 있다. 카트에는 냉장고가 설치돼 있으며 이달부터 운행이 시작됐다. 강북구 제공
자활 참여 주민 재기를 돕는 자활센터의 재도전은 ‘닮은꼴’
실패 원인 분석해 구조 바꿔 재도전
“백화점 입점 검토만으로도 큰 의미”
냉장창고와 냉장탑차도 마련했다. 12월엔 냉장고가 설치된 최신 전통카트도 마련해 어디든 달려가 시식과 판매로 제품을 알릴 수 있도록 했다. 자활사업장이 ‘연습용 공간’이 아니라, 시장을 염두에 둔 본격 식품 제조업체가 된 것이다.
협력은 기술 전수에 그치지 않았다. 천주교서울대교구와 연계된 도시와 농촌의 연대를 도모하는 농산물 유통 조직인 ‘우리농’과 협력해 우리 농촌에서 재배한 국산 콩을 재료로 사용하게 됐다. 생산된 두부는 우리농에 납품하는 도농상생 순환 구조를 만들어 사회적경제의 확장 가능성도 보여주고 있다.
수유리두부는 2천원대로 품질 대비 가격경쟁력을 갖췄다. 일상에서 선택받는 가격대여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합리적인 가격대에도 불구하고 판로 개척은 넘어야 할 또 다른 벽이었다. 영업팀은 강북구 안의 소규모 마트를 직접 돌았다. 현재 40곳에 납품하고 있지만 모든 시도가 성과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일부 매장에서는 기존 납품업체의 견제로 거래가 무산되기도 했다. ‘수유리두부를 받으면 기존 두부는 입장이 곤란해진다’는 식의 입장이 점포에 전달돼 납품을 접어야 했던 사례도 있었다. 자활 생산품이 기존 유통 구조에 진입할 때 마주치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0월 현대백화점 미아점에서 열린 로컬상회 시식 행사는 다른 경로를 열었다. 소비자의 뜨거운 반응이 직접 확인됐고, 기존 거래 구조에 더해 새로운 경로가 생길 수 있을지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다만 최종 결정은 아직이다. 백화점 납품에는 해썹(HACCP)과 같은 인증이 필요하지만 큰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기에 출범 초기인 자활사업단으로서는 높은 장벽이어서다. 대신 백화점에서는 실사 점검을 통해 우회하는 방식을 추진하고 있지만 최종 결론이 어떻게 날지는 미지수다.
이경주 센터장은 “최종 결과는 예상할 수 없지만 백화점 납품 검토 단계까지 왔다는 것 자체는 의미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수유리두부의 의미는 개인 창업 모델의 한계를 인정하고 실패를 분석해 구조를 바꿔 다시 도전했다는 점에 있다. 이는 자활 참여자들이 겪는 재기의 과정과 닮았기 때문이다.
자활은 보호가 아니라 재도전의 기회를 만드는 제도다. 강북지역자활센터의 두부사업 재도전은 그 기회를 어떻게 설계할지에 대한 여러 시도 중 하나다. 수유리두부는 완성된 성공담이 아니다. 실패를 전제로 다시 판을 짜는 현재진행형 이야기다. 오늘 강북에서 만들어진 한 모의 두부는 자활사업 참여자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자활 현장에도 재도전의 가능성과 가치를 조용히 보여주고 있다.
하변길 기자 seoul0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