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ayer’, Mixed Media on Paper, 53.5×76.5㎝
가을바람이 어느덧 소슬해져 봄 기지개 같은 3월의 흙 내음만큼이나 반갑다. 몸보다 앞서 달리는 시선에 맞춰 다리를 뻗는 탓에 내 보폭은 키에 비해 과한데, 그 덕에 애쓰지 않아도 숨이 저절로 찬다. 걷다 보면 자연스레 앞선 사람을 따라잡아 지나치기 마련이고 나를 제치고 가는 이를 만나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런데 몇 주 전, 역삼역을 향해 걷던 중에 불쑥, 기다란 대나무 봉이 눈높이에 밀치듯 들어왔다. 이게 뭐지? 고개를 슬쩍 돌려보아도 사람은 없고 계속 대나무였다. 깜짝 놀라 한참을 뒤돌아보니 눈이 동그래진 나를 보고 한 남자가 웃었다. 희끗희끗한 머리를 한 그는 노란 조끼를 입고 머리에는 하얀 안전모도 쓰고 있었다. 대나무 길이가 족히 7~8m는 돼 보이는데, 그걸 용케 혼자 어깨에 둘러메고 걷고 있었다.
오르막이 시작되는 구간이 되자 대나무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머릿속이 이런저런 생각들로 바빠졌다. 홍콩의 공사장에서 본 정글짐 같은 대나무 구조물이 떠오르며 혹시 우리나라도 이제 철제 대신 친환경으로 이런 대나무를? 하지만 그러기에는 대나무가 턱없이 비쌀 것도 같고, 그런 용도로라면 이렇게 하나씩 나를 리가 없을 텐데? 호기심에 그를 기다렸다. 다시 다가온 그에게 이게 무어냐 물으니 아하, 은행 터는 거 란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은행 터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알고 나니 비로소 나무 밑동에 가지런히 모아둔 은행들이 보였다. 이런 수고가 굳이 필요 없게 애초에 수나무만 심을순 없는지 궁금했다. 검색해보니, 은행나무를 가로수로 삼을 때 일찌감치 수나무만 골라 심은 일본과는 달리 우리는 암수 선별하는 기술을 얼마 전에야 도입했단다. 수나무로 교체하는 작업을 시작했다니 앞으로는 은행 밟을까봐 조심할 일이 줄겠다 싶어 반가웠다.
잠실 석촌호수에서 선배를 만나 그 이야기를 하니, 은행을 주워 사용하는 노인이 많다며 뜻밖에도 안타까워하는 게 아닌가. 은행도 냄새가 좀 날 뿐이지, 그 덕에 송충이도 없을뿐더러 그 냄새에 익숙해지면 집에서도 그걸 손질해 먹을 수가 있단다. 은행나무가 많은 아파트 단지에서 평생을 살았기 때문에 잘 안다며, 자라면서는 엄마가 은행을 주워 와 손질하고 말릴 때마다 질색했는데, 요즘은 자기가 그걸 한다며 웃었다. 그렇게 싫어했던 건데 은연중에 그 나이가 되면 따라하게 되는 일이 있더라고 말이다.
그 이야기에 여기저기서 본 광경이 떠올랐다. 어딜 가나 노인 고객이 많은 요즘, 커다란 목소리로 “그러니까”로 시작해서 “하시라고”로 끝나는 응대를 가끔 본다. 반복되는 안내를 효율적으로 하려다보니 소리는 크게, 말은 짧게, 핵심만 이야기하는 과정이겠구나 이해하면서도, 그걸 보고 있노라면 괜히 미리 서러웠다. 은연중에 나도 그 나이가 되면 겪을 일이라 여겨서였지 싶은데, 저게 내 말투는 아닌지 가끔 뜨끔하기도 했고, 어떤 날은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나설까 말까 움찔하다가도 ‘내가 뭐라고…’ 생각하며 황급히 마음의 거리를 두기도 했다. 박상률 시인의 시 ‘부모’는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마음이 자연스레 흘러나와 지어졌단다.
참고,
참고,
참고,
또
참고,
한 번 더
참고,
(전문, 박상률 시집 ‘그케 되았지라’ 수록)
반복되는 마지막 ‘참고’가 마침표가 아닌 쉼표인 이유는 이번에 참고 넘겨도 끝나지 않을 걸 알아서란다. 나이가 몇이 되어도 나는 ‘숨’차게 다닐 것만 같은데, 자식이 없는 나의 ‘참고,’는 어디를 향해야 할까…. 내 이마 중앙에 집중하여 자라는 흰머리를 보며 하릴없이 곱씹어본다. 참고, 참고, 또 참고,
글·그림 Jaye 지영 윤(‘나의 별로 가는 길’ 작가·화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