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떠나보낸 사람 위한 치유입니다”
관악구 등 자치구, 전문가와 협력해 ‘펫로스’ 프로그램 도입 시도
등록 : 2025-08-28 12:42 수정 : 2025-08-30 09:20
26일 관악구(구청장 박준희) 주최로 구청 지하 1층 일자리 카페에서 열린 펫로스 증후군 예방을 위한 ‘아름답게 이별할 준비’ 강좌 참석자들이 변성원 교수로부터 강의를 듣고 있다. 관악구 제공
누군가에 위로 그 자체인 반려동물
슬픔과 상실감 빠진 사람 위한 치유
전문가들, “지자체 더 큰 관심 필요” “펫로스란 반려동물을 떠나보내고 슬픔과 상실감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위한 치유입니다.” 26일 관악구(구청장 박준희) 지하 1층 일자리 카페에서는 13명이 경청하는 가운데 펫로스 증후군 예방을 위한 ‘아름답게 이별할 준비’라는 특별한 강좌가 열렸다. 이날 강의를 맡은 이는 변성원 안산대 간호학과 교수이자 한국동물교감치유학회장. 그는 2시간 동안 펫로스 증후군의 개념과 주요 증상, 이를 예방하기 위한 자기 관리 방법을 다양한 사례와 함께 들려줬고 참석자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경청했다. 펫로스 증후군은 반려동물을 잃은 보호자가 극심한 슬픔과 우울에 빠져 장기간 일상 회복에 어려움을 겪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를 ‘죽은 반려동물을 추모하는 행위’ 정도로 오해하는 이가 많다. 변 교수는 “펫로스의 본질은 떠난 동물을 기리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사람을 치유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펫로스 치유는 ‘동물교감 치유’의 한 분야라 할 수 있다. 동물교감 치유는 18세기 유럽에서 토끼와 닭 같은 농장동물을 활용해 정신질환자를 돕는 시도로 시작됐으며 20세기 초 영국에서는 재활 치료에 승마 프로그램을 활용하기도 했다. 1960년대 미국과 유럽에서 제도로 정착돼 병원, 요양시설, 학교, 교정시설 등에서 폭넓게 활용됐다. 치매 환자의 불안 완화, 학습장애 아동의 자존감 회복, 교도소 수감자의 사회성 증진까지 효과는 다양하게 입증됐다. 우리나라에서 동물교감 치유는 1994년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서 시작돼 2002년 치료도우미견센터 발족을 계기로 본격화됐다. 학문적 기반은 2007년 원광대 보건보완의학대학원에 ‘동물매개심리치료학과’가 개설되면서 마련됐다. 이어 2008년 한국동물매개심리치유학회가 창립되면서 제도적·학문적 토대를 점차 갖추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은 김옥진 원광대 반려동물산업학 교수가 선도했는데 최근에는 변성원 교수를 비롯해 간호학·사회복지학·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융합 연구를 시도하고 있다.
현장에서의 동물교감 치유 효과는 뚜렷하다. 학교 부적응 청소년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에서는 고개조차 들지 않고 무반응이던 아이가 치유견에 관심을 갖고 만져도 되는지 묻기도 하면서 외부 자극에 긍정 관심이 높아졌는데 이는 흔한 일이다. 장애인 시설에서는 개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던 성인이 강아지를 쓰다듬고 안으며 환하게 웃기도 한다. 요양시설의 노인들은 강아지를 꼭 껴안은 채 “사람에게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따뜻함을 느꼈다”는 말을 반복하며 감동하기도 한다. 변 교수는 “안아줄 사람이 없는 누군가에게 반려동물의 체온은 그 자체로 위로이자 회복의 에너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애도도 부족한데 반려동물 상실 치유까지 필요하냐는 반문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대상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누구라도 애착 대상을 잃으면 똑같은 고통을 겪게 마련이라고 지적한다. 서울 자치구 차원의 펫로스 프로그램은 아직 초기 단계다. 강서구(구청장 진교훈)는 9월17일 반려동물 장례 견학 프로그램을 진행해 갑작스러운 반려동물과의 이별에 슬기롭게 대처하고 올바른 추모 문화를 정착시킨다는 계획이다. 중랑구(구청장 류경기)는 8월부터 10월까지 진행 중인 ‘2025 중랑 반려문화 교실'의 프로그램 중 하나로 오는 9월29일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펫로스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강남구(구청장 조성명)는 2022년 4회기 펫로스 마음치유 모임을 개최하기도 했다. 이번 관악구 강좌는 펫로스 증후군 예방교육이라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첫 사례다. 관악구는 오는 11월에도 같은 특강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이날 특강에 참석한 한 참석자는 “후회 없는 이별을 위해 오늘 느낀 행복한 기분을 이웃과 반려견에게 표현하라는 제안이 기억에 남는다”며 “산책의 중요성과 다양한 놀이 방법 등 다양한 제안이 큰 도움이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변 교수는 “이미 발병한 환자를 다루는 정신보건센터 영역 못지않게 발병을 막는 예방 프로그램이 중요하다”며 “이번 특강은 시민들이 펫로스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 공공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일회성 특강으로는 효과가 제한적인 만큼 일정 기간 지속 가능한 프로그램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예산과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2024년 서울서베이에 따르면 서울 거주 전체 가구의 19.5%가 반려동물을 키우며 이 가운데 36%는 1인가구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 셋 중 하나가 1인가구인 셈이다. 반려동물은 특히 1인가구와 고령층에서 사실상 정서적 가족으로 받아들여진다. 전문가들은 “펫로스는 개인 차원이 아닌 공동체가 함께 다뤄야 할 과제”라며 지자체가 시설과 같은 하드웨어보다 시민 교육과 예방 프로그램 같은 소프트웨어에 더 투자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변길 기자 seoul0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