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질기게 두드리니 마음이 열렸다

돈암1동 주민센터 2층에서 보건복지지원팀 박도원 주무관이 서울&과 인터뷰하며 활짝 웃고 있다. 성북구 제공

지속 방문 덕분에 마음의 문 열어
6개월 만에 대청소와 방역 문 활짝
“여러 사람, 여러 기관 합심한 결과”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게 살아갈 힘”

“어르신은 바닥이 차다며 침대 한편을 두드리며 ‘여기 앉으라’고 하셨어요. 방바닥에는 방석을 직접 깔아주셨죠. 그 순간 마음을 열기 시작하셨다는 걸 알았어요.”

성북구 돈암1동 주민센터 긴급복지 담당인 박도원(37) 주무관은 어르신이 열어준 문을 지나 집 안으로 처음 들어간 날의 기억을 꺼내놨다. 거의 매일 문을 두드리다시피 했지만 문전박대당했다. 청각장애와 치매를 앓으며 사회로부터 스스로 고립돼 있던 조아무개(81) 어르신은 한 달여 자신의 집을 끈질기게 찾아온 박 주무관에게 닫힌 문을 열어 마침내 들어오라고 했다.

박 주무관이 이 어르신을 처음 만난 건 한겨울인 지난 2월. 주민센터로 발령받은 지 한 달쯤 지나서였다. 복지 대상자 정기 모니터링 중 연락이 닿지 않던 어르신의 안부가 궁금해 집을 찾아갔다. 차가운 겨울바람은 허술한 베란다 틈을 넘어 집 안으로 불고, 문 앞에 쌓여 있는 배달 음식과 밑반찬 등으로 위생 상태가 엉망이었다. 단박에 어르신이 ‘위험’에 처한 상태임을 직감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마음이었다. “처음엔 문도 안 열어주셨으니까요. 얼굴만 조금 내밀곤 ‘가라’고 소리치셨죠.”

그럼에도 그는 거의 매일 어르신을 찾았다. 정해진 방문 횟수도, 기간에 대한 지침도 없었지만 다른 대상자들을 돌보러 근처에 가면 꼭 조씨 댁을 들렀다. 문적박대당하거나 얼굴조차 못 보면 쪽지를 남기고 돌아오는 일을 반복했다.

이미 주민센터는 길음종합사회복지관과 민간단체 등과 협력해 밑반찬 배달과 모니터링을 하고 있었지만 박 주무관이 닫힌 문을 열고 어르신 댁에 들어가자 필요한 지원이 무엇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우선 청각장애로 초인종 소리조차 들을 수 없던 어르신 집에 돌봄에스오에스(SOS)로 복지관과 협력해 신호장치를 설치했다. 주 2일 밑반찬을 배달하던 복지관에 요청해 문고리 배달에 그치지 않고 식사 여부까지 모니터링해달라고 요청했다. 나아가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 배달도 추가했다. 병원 진료 동행과 장기요양등급 신청도 팀원들과 함께 추진했다.

박 주무관은 “팀 회의를 통해 어르신을 긴급복지 사례 대상자로 선정하고 관련 기관과 협력을 강화해 함께 돌봤다”고 했다. 나아가 “팀원들과도 서로 모니터링 상황을 공유하고 여건이 닿는 다른 팀원의 방문 지원을 받았으니 팀 전체가 어르신을 돌본 셈”이라며 여러 사람, 여러 기관이 합심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박 주무관에게만 열렸던 어르신의 문은 6개월 만에 다른 이에게도 활짝 열렸다. 저장 강박 탓에 발 디딜 틈 없는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7월17일 민간단체와 복지기관이 협력한 대청소와 방역이 이뤄졌다. 자원봉사센터는 장판·도배 교체를, 복지관에서는 침대와 매트리스 후원을, 서울형 긴급복지 지원으로 노후한 냉장고 교체를 도왔다. “6개월 만에 문이 열리니 모두가 나서서 도와주시더라고요. 민관의 협력은 복지 현장에서 정말 중요해요.”

박 주무관이 돌보는 긴급복지 대상자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조현병을 앓는 한 여성 어르신은 가족들을 포함해 사회와 단절 직전에서 약물 복용까지도 중단한 상태였다. “문을 열어주지 않아도 ‘저는 계속 올 거예요. 저는 도움을 드릴 수 있어요’라고 닫힌 문 너머 어르신께 소리치고 방문을 계속했죠. 그분도 어느 날 저를 들어오라고 하신 뒤 냉장고에서 음료수 하나를 꺼내주시더라고요.”

그는 어르신이 자신의 방문에 마음을 열자 가족들과 연락해 서로 안부를 주고받도록 끈질기게 설득했다. 또한 정신건강복지센터와 힘을 모아 병원 동행 지원을 통해 중단됐던 병원 진료도 다시 시작하도록 했다. “자꾸만 잊는 약 복용을 돕기 위해 약 달력 표시, 플라스틱 약통 사용, 스마트폰 알람 설정 등과 같은 방법들도 계속 도와드렸더니 이제는 약 복용을 잘하시게 됐어요.” 그 결과 이달부터는 어르신 혼자서도 병원에 다닐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되고 있다.

보일러 고장으로 한겨울에 냉방에서 지내던 64살 남성도 박 주무관이 손을 내민 대상 중 하나였다. 법적으로 노인이 아니다보니 주민센터의 돌봄서비스에서 누락된 채 사회적으로 고립된 경우였다. 일상돌봄서비스 기관에서 “보일러가 고장 난 것 같다”고 전해준 덕분에 현장 확인했더니 보일러 배관이 터진 상황이었다. 박 주무관은 반복적인 방문으로 신뢰를 쌓으면서 돌봄에스오에스로 보일러 수리를 지원하고 청소와 복지 연계도 이어갔다. 이 어르신도 박 주무관의 반복적인 방문에 생활의 의욕을 서서히 되찾아가고 있다. “직접 방문을 못하는 날에도 자신의 소소한 일상 이야기를 저에게 전해주기도 한다”며 사회적 고립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돈암1동 주민센터 복지 업무는 보건복지지원팀과 공공복지팀의 9명이 담당하고 있다. 공직 11년차인 박 주무관은 보건복지지원팀에 소속됐는데 사회복지사 3명, 간호사 1명, 팀장 1명 등 5명이 한 팀을 이루고 있다.

박 주무관의 근무 여건은 다른 자치구의 복지 담당자와 마찬가지로 그리 녹록지 않다. 관내 기초생활수급자만 500가구, 고독사 위험군 240명, 스마트 안부 확인 대상자도 120명에 이른다. 그는 “한정된 인력으로 수백 명의 위기가구를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라 ‘밀착 돌봄’을 위해서는 결국 담당자의 헌신과 ‘지속 가능한 구조와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며 “복지 공무원 누구나 헌신하는 마음은 있지만 헌신만으로는 지속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 주무관에게 복지 분야에서 일하게 된 배경에 대해 물었다. 그는 어릴 적 할아버지 손에 자란 기억을 꺼냈다. “부모님이 맞벌이했던 탓에 할아버지가 제게 주셨던 돌봄을 제가 다른 분께 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누군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어요. 저는 그걸 믿어요.” 오늘도 그는 누군가의 문을 조용히 두드린다.

하변길 기자 seoul0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