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권리 밖 주민’ 챙기는 사람들의 희망

개발 방식 두고 소유자 갈등, 국토부·서울시 해법 못 내
“‘쪽방’ 기준 모호하고 ‘최저주거기준’ 적용 대상 안 돼”

등록 : 2025-07-17 12:32 수정 : 2025-07-17 13:15
동자동 쪽방 주민들이 폭염 열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설치한 골목길 쿨링포그 근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눅눅한 냄새가 나고 창문도 에어컨도 없는 1평 공간에서 벌레와 함께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들. 서울에는 영등포구, 용산구, 중구 등 일부 자치구에 쪽방촌이 밀집해 있으며, 종로구 돈의동과 창신동 일대도 대표적인 쪽방 지역으로 꼽힌다. 이 가운데 동자동(용산구)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쪽방 밀집 지역이다.

동자동과 함께 갈월동, 남영동 일대 쪽방에는 2~4층 건물 65개 동이 있다. 이 중 서울시에 등록된 쪽방 건물은 63개 동으로 쪽방상담소 등에서 각종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주민 회원은 827명이다. 일부는 본인 뜻으로, 일부는 쪽방 지정 임의 해제로 대상에서 제외됐다.

막다른 골목 언덕 위 오래된 쪽방 건물.

쪽방 문제를 해결하고자 2021년 2월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용산구는 합동으로 ‘서울역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주택 및 도시재생사업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쪽방 및 일반주택 세입자를 위해 2026년까지 총 2410호 중 1250호를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해 쪽방 세입자들에게 공급하고 재정착을 지원하는 내용이었다. 특히 공공주택을 먼저 지어 쪽방 세입자들을 입주시킨 뒤 민간분양 주택을 건설하는 방식으로 주거권 운동 단체들의 환영을 받았다.

쪽방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수돗가와 화장실을 전익형 서울역쪽방상담소 실장이 둘러보고 있다.

그러나 개발 발표 직후부터 일부 토지·건물주들이 ‘민간개발’을 주장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쪽방 주민들이 회비를 내며 자발적으로 운영하는 주민단체인 ‘동자동사랑방’의 박승민 활동가는 “국토교통부는 지난 4년간 ‘옛날처럼 밀어붙이기식의 개발은 못한다’ ‘토지·건물주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며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고, 서울시는 국토교통부 소관이라며 책임을 미루는 사이 주민 중 140여 명이 비참한 환경에서 생을 마쳤다”고 했다. 그는 이어서 “정부는 비인간적인 주거환경에 대한 책임을 건물주에게 전가했고, 건물주들은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으며 임대사업으로 이익을 취한다”며 “2019년 주거급여제도가 시행되면서 매년 주거급여가 오르자 집주인들은 주거급여에 맞춰 방세를 올렸다”고 지적했다. 쪽방촌 주거 문제는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나서야 해결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와 학생이 쪽방 현장연구로 함께 내놓은 책 ‘동자동, 당신이 살 권리’(2023)는 “주택이 재산 증식 수단이라는 패러다임이 공고히 자리하는 한 쪽방 주민들의 주거권 보장 및 재정착 방안은 주변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주장욱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한다. “법령 어디에도 ‘쪽방’의 개념 정의가 없다. 지원 대상 선정을 위임받은 서울시는 명확한 기준 없이 5대 밀집지역(영등포, 용산, 중구, 돈의동, 창신동) 안의 거처들만 쪽방으로 인정했고, 길 건너에 있는 동일한 환경의 방이 쪽방에서 배제되거나 건물주가 요청했다는 이유로 다음날 ‘등록 쪽방’에서 해제돼 주민들이 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없던 사례가 있다”며 “권리 밖에 있는 주거취약자들을 위한 구체적인 쪽방 기준이 우선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주거기본법에서 정한 ‘최저주거기준’은 쪽방 사람들에겐 먼 나라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최저주거기준은 법률상 ‘주택’에만 적용되는데 ‘쪽방’은 주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거기본법 제17조(최저주거기준의 설정)는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민이 쾌적하고 살기 좋은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주거수준에 관한 지표로서 최저주거기준을 설정·공고하도록 하고 있다. 최저주거기준에는 주거면적, 용도별 방의 개수, 주택의 구조·설비·성능 및 환경요소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이 포함돼야 하고, 인구구조, 가구 특성 및 소득수준의 변화 등 사회적·경제적 여건의 변화에 따라 그 적정성이 유지돼야 한다고 돼 있다.

쪽방상담소로 들어온 구호품을 주민에게 보급하기 위해 운반하는 모습.

이런 상황 속에도 동자동 쪽방촌 사람들의 마지막 거처를 돌보는 이들이 있다. 서울시가 온누리복지재단에 위탁 운영하는 ‘서울역쪽방상담소’다. 유호연 서울역쪽방상담소장은 “쪽방 주민을 위한 종합생활지원센터로서 생활편의시설은 물론 주거환경, 안전, 건강 문제 등 긴급하고 일상적인 부분에서 전반적으로 챙기고 직접 하지 못하는 일은 주민센터나 구와 협업해 주민들 안전과 생활지원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담소는 폭염, 한파 쉼터는 물론 샤워실과 세탁실을 갖추고 있으며 일자리를 알선하고 간호사들이 배치돼 질병과 의료 지원을 하고, 교양교육과 취미·여가, 나들이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동자동 서울역쪽방상담소 앞에서 유호연 소장(오른쪽)과 전익형 실장이 자리를 함께했다.

쪽방상담소 “전반적 생활지원”, 주민들 “공공주택 입주가 답”

개발 이익 공유 확립하고
‘주거권’ 사각지대 없애야

또 수시로 집집이 방문해 전기, 가스, 소방 점검을 하고 있다. 특화사업으로 주변 식당들과 협약을 맺고 주민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또 ‘온기창고’를 운영해 후원 물품을 체계적으로 배분하고 있다. 유 소장은 “2023년부터는 한미약품 후원으로 쪽방 주민들에게 목욕탕 이용권을 제공하고 있다. 어르신이 많이 거주하는 점을 고려해 구강관리센터도 운영 중”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전담간호사들이 기저질환자 50명에 대해 주 2회 이상 방문해 집중적으로 건강을 챙긴다.

지난 7월11일 낮 폭염 속에서 모인 동자동사랑방 주민들이 열악한 환경과 재정착을 위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 예산으로 서울역쪽방상담소는 관리 건물 63개 중 15개 건물에 복도 공용에어컨 54대를 설치하고 전기료도 지원한다. 나머지는 에어컨 설치가 어려운 구조이거나 건물주가 설치에 동의하지 않은 곳이다. 골목길 열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4곳에 쿨링포그도 운영 중이다. 유호연 소장은 “용산구와 남영동 주민센터와 협업해 쪽방 지원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동자동 쪽방에 살면서 지금이 쪽방 지원의 르네상스’라며 쪽방촌 돌봄을 칭찬하는 주민분이 많다. 언론에는 이런 내용이 잘 보도되지 않지만”이라고 했다.

용산구(구청장 박희영)는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서울역 쪽방촌 구역 내 건물 65곳 전체를 대상으로 기둥, 보와 내력벽 균열 및 변형 여부, 내·외부 타일·석재 박리, 지반 침하, 옹벽·축대 안전 상태를 점검했다. 구 관계자는 “조사 결과 당장 대피해야 할 만큼 위험한 건물은 없었다”며 “지속적으로 건물 안전 여부를 점검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언론과 시민단체의 관심이 크지만 무엇보다 주민들의 자립의지가 강하다. 쪽방 주민자치 단체인 ‘동자동사랑방’과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는 공동밥상, 마을장례, 병원 동행, 법률상담, 주민 교육을 하고, 몇십만원의 소액대출이 가능한 마을은행도 운영하고 있다. 마을은행의 현재 출자금은 4억5천만원으로 교통비, 치과 치료, 티브이(TV) 수리, 병원비, 배우자의 산소 관리, 손주 돌비용, 조의금으로 쓰도록 대부분 신용불량자인 주민들에게 긴급한 돈을 빌려준다. 이자율은 2%, 연체이자율 4%다. 놀라운 건 이들의 대출 상환율이 94%에 이른다는 점이다.

박승민 동자동사랑방 활동가는 “돈 떼먹고 달아난 사람은 거의 없다. 쪽방 주민은 서로 처지를 잘 이해한다. 이해를 바탕으로 주민협동회를 통해 신뢰의 공동체로 변화하고 주민 스스로 자활 의지와 자부심도 크다”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서 “모든 국민의 기본적 삶의 조건이 보장되는 나라, 두터운 사회안전망으로 위험한 도전이 가능한 나라여야 혁신도 새로운 성장도 가능하다” “통제하고 관리하는 정부가 아니라, 지원하고 격려하는 정부가 되겠다”며 “규칙을 어겨 이익을 얻고 규칙을 지켜 피해를 입는 것은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주거취약자의 비참한 삶을 외면하고 천문학적 개발이익만 좇는 사회 분위기 속에 공공주택 입주라는 희망고문으로 지쳐가는 쪽방 사람들, 그리고 이들을 끝까지 돌보는 이들이 함께 숨 쉬는 ‘동자동 쪽방’의 운명이 대한민국 복지 수준을 결정한다.

글·사진 이동구 기자 donggu@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