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구 이에스지(ESG) 사업의 핵심 플랫폼이자 국내 최초 사회적경제 참여자들의 네트워크 공간인 ‘언더스탠드에비뉴’. 성동구 제공
“지구가 유일한 우리의 주주”라며 40년 전부터 해마다 매출액의 1%를 환경단체에 기부하고 모든 생산과정에서 친환경 원료와 재활용 자원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가 있다. 고쳐쓰기와 중고거래, 재생에너지와 재활용 포장지 사용, 동물복지 인증을 실천해왔으며 3년 전에는 회사의 지분 98%(약 4조2천억원)를 기후위기 관련 비영리재단에 기부하고 나머지 2% 의결권 주식마저 자신의 경영철학을 실현해줄 신탁사에 넘긴 이 기업은 미국의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다.
환경과 기후위기가 만들어낸 ‘지속 가능 발전’이라는 화두가 전 지구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유엔은 2015년 빈곤, 질병, 교육, 여성, 아동, 난민, 분쟁 등 인류의 보편적 문제와 기후변화, 에너지, 환경오염, 물, 생물 다양성 등 지구 환경 문제, 기술, 주거, 노사, 고용, 생산 소비, 사회구조, 법, 대내외 경제 등 경제·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국제사회에 제시했다. 국내에선 2021년 12월 국회에서 지속가능발전기본법이 의결됐고 이듬해 시행령이 공포됨에 따라 민관 모두 지속 가능 발전 실행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 속에 서울 자치구 중 선도적으로 지속 가능 발전 목표를 세워 두드러진 성과를 낸 곳이 성동구(구청장 정원오)다. 구는 2022년 성동형 이에스지(ESG, 환경·사회·지배구조) 정책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도시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필수요소인 경제(Economy)를 더한 E+ESG 지표를 82개 개발했다. 이후 매년 ESG 실천 공모사업을 추진해 2022년부터 올해까지 ESG 47개 사업을 지원했다. 구는 또 지난해 9월 ‘E+ESG 보고서’를 발간했다.
지난해 가을 성수동 전역에서 열린 ‘2024 크리에이티브×성수’ 중 ‘크래프트 성수’가 언더스탠드에비뉴 앞 일대에서 열렸다. 성동구 제공
‘성수동이여 플랫폼이 되자’라는 슬로건처럼 구는 2016년 성수동 서울숲 입구 자투리땅에 국내 최초로 기업, 비영리기관, 자치구 간 협력과 교류, 이벤트 공간인 ‘언더스탠드에비뉴’를 열어 해마다 사회적경제 참여자들 간의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ESG 핵심 플랫폼으로서 소외계층 자립, 신진 예술가와 디자이너 전시 기회 제공과 공연문화예술 공간 지원, 창업 지원 등 민관 협력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구 관계자는 “현재 성수역 이용객이 연 3천만 명을 넘어섰다. 최근 10년간 관련 산업이 문화콘텐츠기술(CT, Culture Technology) 산업이 300% 성장하고 13만 개의 일자리가 있는 서울 대표 복합 업무지구 클러스터가 됐다. 특히 성수동은 소셜벤처, 임팩트투자사, 지원기관 등 관련 생태계가 안정적으로 구축돼 있으며, 2014년 10여 개에 불과했던 소셜벤처가 10년간 약 500개로 증가한 혁신성장의 중심지가 됐다”고 밝혔다.
‘패션성수’가 성수이로 일대에서 개최된 모습. 성동구 제공
성동구는 단기간 폭발적 성장세를 보이는 지역 공동체의 지속 가능 발전을 위한 또 하나의 도전에 나섰다. 구는 19일 크래프톤,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 무신사, 현대글로비스, 쏘카, 삼표, 소풍벤처스, 트러스톤 등 50개 기업·자산운용사·유관기관 임원과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수동 ‘언더스탠드에비뉴’에서 ‘성수 타운매니지먼트 출범식’을 연다. ‘타운매니지먼트’는 지역 내 기업, 임대인, 임차인, 주민 등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해 도시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위생, 환경관리, 공동 프로모션, 지역 축제 및 커뮤니티 활동 등을 전개하는 민관 협력 지역 관리 모델이다.
‘시티(CT)페어’ 참여 기업들이 간담회를 하고 있다. 성동구 제공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성수동은 소셜벤처부터 시작해, 로컬브랜드, 창작자, 패션 대기업, 문화 콘텐츠 기업까지 다양한 주체들이 이 공간을 함께 점유하고, 또 함께 살아가고 있다. 지난 10년간 성수동은 빠른 성장으로 월평균 약 30만 명이 방문하면서 환경, 위생, 젠트리피케이션 등 여러 지역 문제를 안고 있다. ‘누가 여기 있는가’를 넘어서 ‘어떻게 함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타운매니지먼트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타운매니지먼트 사업은 먼저 6월 중 성수동 소규모 브랜드를 대상으로 공익성을 담은 판매 행사를 개최해 시그니처 사업을 발굴하고, 연말까지 성수동 지역 제조업체, 전문 협력 기관들과 협의회를 구성해 공동관심사를 논의한다. 브랜드 론칭, 지역 기업과 문화예술을 연계한 축제도 연다. 8월에는 (가칭) 성동구 지역통합관리 조례를 제정해 공공 공간 활용, 각종 규제 완화 등 참여자 인센티브 근거를 마련하고, 연말까지 옥외광고물 자율관리 등 토지·건물 소유자, 임차권자, 시민단체, 전문가, 해당 지역 구의원 등 주민협의체를 구성해 운영할 계획이다.
‘2024 크리에이티브×성수’ 중 ‘시티(CT)페어’에서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시연하고 있다. 성동구 제공
“성동형 타운매니지먼트, 균형발전과 지역 주도 성장 모델”
“상생과 지속가능 공동체로”
“성수동 문화와 산업 세계화”
성수동에서 사회혁신가들이 함께 살며 교류할 수 있는 디웰하우스를 운영하는 루트임팩트 허재형 대표는 “사회혁신가들이 모여 성수동이 상생과 지속 가능성이라는 가치를 축적한 상징적인 도시 공간으로 성장했다”며 “타운매니지먼트를 통해 성수동이 지속 가능한 도시 공동체로 성장하는 데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최정민 SM엔터테인먼트 최고글로벌사업책임자(CGO)는 “SM의 성수동 이전은 성수동과 글로벌이 연결되는 계기”라며 “성수동이 문화와 산업, 지역과 세계를 연결하는 도시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성수동 패션 클러스터를 이끄는 무신사 박준모 대표는 “무신사의 성수동 이전은 과거 제조 중심의 성수동 산업구조가 유통, 브랜딩, 콘텐츠, 글로벌 확산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이번 출범식에선 성수동의 지역 정체성을 발현해가는 사람들을 위한 공동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 도만사가 ‘위메이크 성수’를 론칭한다. 또한 2015년부터 약 8천 회의 팝업을 기획 운영하는 스위트스팟이 성수동 팝업 생태계의 지속 가능 방안을 제시하고, 복합문화공간 엘시디시(LCDC) 서울을 운영하는 에스제이(SJ)그룹은 문화적 기여를 타운매니지먼트 전략으로 제시한다.
더로드메이커는 성수동 경수초·중 인근 오피스를 특색 있는 디자인과 조경으로 차별화된 비즈니스 클러스터로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무신사는 최근 성수동의 일부 자사 공간을 소상공인의 판로를 개척하기 위한 소담상회로 전환한 스토리를 전한다. 마지막으로 공간기반 콘텐츠 기술기업 테크캡슐은 크래프톤의 의뢰로 진행하고 있는 성수 지역 3D 스캐닝 기록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성수 타운매니지먼트’는 새로운 정부가 강조하는 지방 균형 발전과 지역 주도 성장 전략에 부합하는 선도적인 모델이 될 것”이라며 “지방정부, 주민, 기업이 함께하는 플랫폼으로서 진정한 거버넌스를 구현해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지속가능 도시로 성장시켜가겠다”고 말했다.
ESG가 정치 성향에 따라 불필요하거나 과도하다는 비판을 받거나 친환경을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환경에 기여하지 않는 ‘그린워싱’ 사례가 늘어나는 상황에서도, 공동체의 지속 가능한 공존을 위한 세계 경제 주체들의 실질적 행동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 11일(현지시각) 블룸버그는 미국 증권사 제프리스의 보고서를 인용해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노르웨이 국부펀드(NBIM, 약 2605조원)와 유럽 연기금이 여전히 ESG 전략에 전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내에선 ESG 평가 및 투자자문기관 서스틴베스트가 지난 10일 ESG 성과가 뛰어난 기업을 선별해 투자하는 전략이 연간 수익률 9% 가까운 우수한 성과를 냈다고 밝혔다. 더불어 사는 지속 가능한 지구촌을 꿈꾸며 행동하는 이들은 오늘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동구 기자 do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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