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동화로 미취학 아동 옳고 그름 가르쳐요”
사람& 송파 지역공동체 ‘북적북적 로스쿨’ 공동대표 배인철 변호사
등록 : 2025-05-22 13:46
인터뷰 도중 배인철 변호사가 환하게 웃고 있다.
장난과 학폭 경계 가르치는 효과 기대
“전문지식 활용 의미 있는 지역 활동”
학교폭력 방지 새로운 예방 모델 될까 “미취학 아동에게 법을 가르친다고 하면 의아해할 수도 있지만, 법 이전의 옳고 그름을 가르치는 일은 이 시기에 무척 중요합니다.” 송파구 위례동에 거주하는 배인철 변호사(삼광파트너스 법률사무소 공동대표·35)는 최근 지역 어린이집의 협조를 받아 동화를 읽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아이들에 법을 가르치는 모임 ‘북적북적 로스쿨’을 시작했다. 이번 달 시작된 모임 활동은 송파구의 지역공동체 공모사업에 선정돼 위례동에서 10월까지 운영된다. 배 변호사는 서초동에서 일하며 짬을 내 경기도 한 지역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심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그는 교직원과 학생 대상 연수교육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지만 미취학 아동 대상 프로그램은 처음 시도하는 것이다. “학교폭력에 관심을 갖다보니 미취학 아동에게 옳고 그름을 미리 잘 가르치면 학교폭력을 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활동을 시작하게 됐죠.” 북적북적 로스쿨은 배 변호사가 뜻이 맞는 부모들과 함께 시작했다. 송파구가 지난 1월 추진한 지역공동체 공모사업에 응모해 지난 4월 사업이 확정됐다. “동화책을 읽다가 아이에게 ‘돌고래가 다른 돌고래의 모자를 몰래 들고 왔는데, 잘한 행동일까요?’라고 묻고 어떤 점이 잘못됐는지 함께 생각하고 의견을 나눠보는 식이에요.” 배 변호사는 아이들이 스스로 옳고 그름을 생각하고 판단하게 만드는 양심을 기르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도둑이 남의 집에 들어갔는데 아무도 못 봤다면 처벌받을까? 들키지 않으면 괜찮은 걸까? 이런 약간 미묘한 질문을 아이들에게 던지고 스스로 답하게 하는 거죠. 옳고 그름은 마음속 깊이 양심에서 비롯되니까요.” 그는 이런 점은 학교폭력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가벼운 장난이 특정한 수위나 경계를 넘어가게 되면 더는 장난이 아니라 학교폭력이 되는 거잖아요. 이 경계를 학생도 인식하지 못하고 저지르는 경우가 많거든요. 저학년으로 갈수록 이 경계에 대한 인식이 뚜렷하지 않으니 가능하면 어린 나이 때부터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경계를 가르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모든 어른이 양심을 형성하는 어린 시절의 계기가 있듯 배 변호사도 그런 ‘사건’이 생각난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 한자를 써서 내는 시험을 보는데 정확하게 생각나지 않길래 제가 좀 애매하게 썼어요. 그런데 채점하던 선생님이 저를 부르시더니 정확하게 알고 쓴 것이냐고 물으시더군요. 점수 욕심에 그렇다고 했더니 선생님께서 ‘문제 하나를 더 맞히고 덜 맞히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양심적으로 사는 게 너의 인생에서 훨씬 중요하단다’ 이런 취지로 말씀하시더군요. 결국 정확하게 모르고 쓴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죄송하다고 했죠. 제가 법조인이 된 것은 남을 위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에서도 비롯됐지만 어린 시절의 이 작은 사건도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작은 영향력이겠지만 어린 시절 그 선생님처럼 이제는 제가 아이들에게 옳고 그름을 가르칠 차례가 된 거죠.”
북적북적 로스쿨 첫 모임이 열린 지난 16일 위례동 한 어린이집에는 12명의 아이가 모여 배 변호사와 회원들이 읽어주는 동화를 듣고 진지하게 자신들의 생각을 나눴다. “원장 선생님은 이런 활동이 너무 좋다며 다른 어린이집 원장에게도 추천해주겠다고 하셨어요. 여건이 된다면 활동 지역을 넓혀볼 생각입니다.” 배 변호사는 모임을 3단계로 운영할 계획이다. 첫 단계는 ‘독서 토크’로 동화를 읽고 아이들과 토론하는 시간이고 두 번째 단계는 ‘법과 책임’을 주제로 그림 그리기, 세 번째 단계는 그림을 모아 전시회를 열어 마을 주민들과 공유하는 단계다. 모임 경험을 쌓아 언젠가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을 써보는 욕심도 갖고 있다. 부모들이 동화책을 읽어주며 옳고 그름에 대한 자녀 교육을 수월하게 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인터뷰 마지막에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변호사라고 해서 꼭 법정에서만 정의를 실현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가진 지식을 활용해 내가 사는 지역, 나와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작은 지역 활동도 충분히 의미 있는 것 같아요. 지역 활동도 모이고 모이면 사회 전체를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초등학생 범죄율과 학교폭력 피해율이 점점 증가하는 현실에서 배인철 변호사의 ‘북적북적 로스쿨’이 작지만 실질적인 대응책이자 학교폭력 예방 교육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글·사진 하변길 기자 seoul0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