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미래를 여는 역사 공간 ‘근현대사기념관’

2016년 3·1운동 발원지로, 독립정신과 민주주의 성지에 역사기념관 열어
광복 80주년 맞아 이준, 손병희, 여운형 등 선열 기리는 특별전 개최 예정

등록 : 2025-05-22 13:38
근현대사기념관 상설전시실에서 해설하고 있는 장원석 학예실장(오른쪽)과 신운용 안중근평화연구원 교수.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해 8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일제시대 때 선조들의 국적은 일본”이라고 한 것을 두고 같은 당 소속 홍준표 전 대구시장조차 “그걸 계속 주장하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은 전부 ‘내란’이고, 독립투사들은 모두 ‘내란행위’를 한 것이 된다”고 일침을 가했다.

지난 14일 아침 강북구 수유동 근현대사기념관으로 향하는 신운용 안중근평화연구원 교수의 표정은 무거웠다. 그는 “12·3 내란을 시민들이 생명을 걸고 몸으로 간신히 막았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요? 우리 사회에 바른 역사관이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곳을 다시 가는 이유입니다”라고 말했다.

근현대사기념관(관장 윤경로)은 우이신설선 4·19민주묘지역에 내려 4·19로를 따라 20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북한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장을 지낸 윤경로 관장은 이곳에 근현대사기념관이 들어선 배경에 대해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박겸수 전 강북구청장이 역사 문제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강북구는 3·1운동의 발원지인 봉황각과 순국선열 묘역, 그리고 국립4·19민주묘지가 있는 독립정신과 민주주의의 성지이므로 이곳에 그 뜻을 기리는 역사기념관이 있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고 했다. 2016년 5월 개관한 근현대사기념관은 ㈔민족문제연구소가 강북구(구청장 이순희)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다.

기념관은 2개 층이며 콘크리트와 유리 소재가 조화를 이룬 현대식 건물이다. 1층에는 상설전시실과 수장고가 있고, 2층에는 기획전시실과 교육실, 사무실 등이 있다. 상설전시실 입구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한 헌법 제1조 제1·2항이 붙어 있다. 건축 면적은 951.33㎡로 그리 크지 않지만 동학농민운동에서 4·19혁명까지 우리 근현대사의 전개 과정을 다양한 유물과 사진, 영상을 통해 응축적으로 보여준다.

장원석 실장이 상설전시실 입구에 있는 독립운동가 어록 모음을 설명하고 있다.

상설전시실은 세 구역으로 구성돼 있다. 전시실 A존은 동학농민운동, 의병전쟁, 3·1운동 등 항일 투쟁을 소개한다. ‘조정에 가득한 간신을 몰아내고 탐관오리를 쳐서 징계하고 나아가 왜를 몰아내고 이민족을 물리쳐서 국가를 만년반석 위에 확고히 세우고자’라는 내용을 담은 사발통문(1893)과 1904년 9월 일본군의 의병 학살 장면을 여러 장의 실제 사진과 함께 자세히 기사로 실은 프랑스 잡지 ‘LA VIE ILLUSTREE’(1904년 12월2일),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폭로한 헤이그 특사 이준, 이상설, 이위종의 만국평화회의보 인터뷰 기사(1907년 7월5일) 등을 볼 수 있다. 이 밖에 3·1독립선언서(1919), 대한민국 건국강령(1941),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1946) 등 유물들이 전시돼 있다.

근현대사기념관에서 발간한 상설전, 특별전 도록과 체험교육 교재.


전시실을 돌아보면서 신운용 교수는 “동학운동은 성리학 기반 신분제 폐지와 ‘인내천’(평등사상)을 천명하면서 ‘근대’의 출발점이 됐다”고 설명하고 “4·19, 5·18, 6·10, 촛불혁명, 빛의 혁명으로 이어지는 시민 저항의 역사는 바로 우리 몸에 동학의 정신이 이어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B존은 디지털 영상을 통해 소년기에 8·15 해방을 맞은 주인공이 청년이 돼 4·19혁명을 직접 겪은 뒤 체험 속에서 깨달은 자유와 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아버지에게 편지 형식으로 전한다.

C존에서는 해방 후 활발하게 간행된 ‘국제정세와 민족주의’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투쟁사’ ‘김구’ ‘여운형 선생 투쟁사’ 등 출판물과 ‘독립정신을 계승한 민족국가이며, 정치적으로는 국민주권이 보장된 민주공화국이고 사회경제적으로 균등을 지향한 평등국가’임을 규정한 대한민국 제헌헌법 전문이 실린 ‘관보’ 제1호(1948년 9월1일)도 볼 수 있다.

야외 전시물도 있다. 우리 민족의 독립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선열들의 뜻을 기릴 목적으로 시민들이 성금을 모아 2016년 8월15일 광복 71주년을 맞아 건립한 ‘독립민주기념비’, 강북구에 잠들어 있는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독립, 민주, 통일정신을 기리기 위해 강북구민들이 뜻을 모아 2018년 12월24일 건립한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 흉상’이 그것이다.

근현대사기념관 입구 전경.

2층에 있는 기획전시실에서는 강북구에 안장된 순국선열들의 주기에 맞춰 그분들의 업적과 뜻을 기리는 특별전을 주로 개최하고 있다. 장원석 학예실장은 “2022년 의암 손병희 선생 순국 100주기 특별전과 심산 김창숙 60주기 특별전을 열었고, 2023년에는 이준 열사 유해 봉환 60주기 특별전과 강북구에 거주했던 문익환 목사의 30주기 특별전을 개최했다. 이어 2024년에는 동학농민혁명, 청일전쟁 130주년 특별전과 어린이 역사동화 사할린 아리랑 전시를 선보였다”고 했다.

광복 80주년을 맞이한 올해는 이준, 손병희, 여운형, 이시영, 신익희, 이명룡, 유림, 서상일, 김창숙, 김병로, 김도연, 신숙, 신하균, 양일동 등 강북구에 잠들어 있는 독립·민주 선열들을 기리는 특별전을 개최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기획전시실 입구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신운용 교수(왼쪽부터), 윤경로 관장, 장원석 실장.

신운용 교수, “역사 공간들이 뉴라이트 사관에 의해 편집되고 있다”

“박물관들 운영 실태 점검해야”
“역사의식 없으면 내란 반복돼”

근현대사기념관은 이러한 특별전시와 더불어 세대별 다양한 교육, 체험학습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상설 교육 프로그램으로 초등학생 대상 ‘어린이 역사교실’과 중고등학생 대상 ‘청소년 역사교실’이 있으며, 일반인들을 위한 ‘독립민주시민학교’가 매년 주제를 달리해 열린다. 또한 3·1절, 4·19, 8·15 등의 역사적 기념일에는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참가하는 다채로운 역사 체험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근현대사기념관의 발전을 위한 바람을 묻자 윤경로 관장은 “강북구가 오래전부터 역사 문제를 중요하게 인식해 주요 사업으로 근현대사기념관을 적극 지원하고 있어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며 “강북구에 잠들어 계신 독립, 민주 선열들이 남긴 역사적 뜻을 생각하면 그에 걸맞은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현재 근현대사기념관을 비롯해 독립운동가를 선양하기 위해 건립된 현충 시설 대부분이 지방자치단체의 민간 위탁으로 운영되고 있다. 장원석 실장은 “서울시의 경우 지자체 조례에 의해 민간 위탁 기간이 3년으로 돼 있어 기념관이 중장기적 계획을 세우고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할 수 있도록 조례 개정 혹은 민간 위탁에 관한 법령 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행인 것은 개관 이래 지금까지 역사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진 전·현직 구청장들 덕분에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정치적 외풍 없이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기념관을 운영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강북구 관계자는 “기념관 사업 추진 방향에 대해서는 자율성을 보장해왔다”고 밝혔다.

근현대사기념관을 둘러본 뒤 신운용 교수와 함께 광화문에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에선 12·3 계엄 3일 뒤부터 두 달간 조선일보사와 함께 ‘나의 보물, 우리의 현대사’ 특별전이 열렸는데 지금은 국립청주박물관과 국가기록원,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함께 ‘광복 80주년 기념 공동기획전’을 열고 있었다.

역사박물관을 둘러본 신 교수는 “역사와 대화하며 미래를 열어야 할 역사 공간들이 뉴라이트 사관에 의해 소리 없이 편집되고있다”며 “우리 근현대사는 민주주의사(史)가 중심이 돼야 한다.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모호한 기획전과 상설전시로 무슨 역사와대화할 것이며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이어 그는 “독립기념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포함해 많은 근현대 역사박물관의 운영 실태와 콘텐츠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날 근현대사기념관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돌아본 소감을 묻자 신운용 교수는 “오랜 기간 누적돼온 독재와 비리, 무능 끝에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 정권을 넘겨받은 김대중 대통령은 디지털 기반 지식과 문화가 살길이라며 전자·통신, 문화콘텐츠 사업에 집중했고, 그 결과 세계가 부러워하는 ‘디지털·케이(K)-콘텐츠 강국’이 탄생했다. 산업화의 신화에 매몰돼 개발과 성장을 빌미로 생명·인권·자유·평등을 뒤로 미뤄도 된다는 망상이 국가철학이 되는 순간, 시민은 언제든 권력의 총구 앞에 설 수 있다는 사실을 역사는 경고하고 있다”고 답했다.

글·사진 이동구 기자 donggu@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