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모시고 서울숲으로 가족 소풍 떠나요

서울, 이곳 l 성동구

등록 : 2025-05-08 14:37
서울숲 공원 입구

유리병에 꽂아둔 양파를 보면 엄마가 생각난다. 화초를 좋아하셨던 엄마는 양파든 고구마든 싹이 올라오는 채소를 물에 꽂아두고 화초처럼 키우셨다.

시장에 제철인 두릅을 보면서 아빠를 생각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한 상자씩 사서 보내드리곤 했는데, 그러고 보니 두릅을 안 산 지 6년이나 지났다. 어버이날이 다가와서 그런가, 아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영향인가.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한 5월이다. 양파 싹이 튼실해질수록 양파 알맹이는 힘을 잃어가는 것처럼 부모님은 제 살을 깎아 자식들을 키우셨다. 우리 아빠는 양관식보다 더 다정한 분이셨는데, 난 금명이처럼 싹싹하지 못했다. 내 자식 어린이날은 제날짜에 챙기면서 어버이날은 며칠 당겨 주말에 식사하는 거로 대신하곤 했다. 못한 것만 생각난다.

2공원에 있는 꽃사슴 방사장

지금 서울숲에선 튤립이 주인공이다. 올해는 변덕스러운 날씨 덕에 튤립을 좀 더 오래 볼 수 있게 되었다. 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은 꽃보다 더 예쁘다. 나는 꽃을 보면서 찡그리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보라색, 살구색, 노란색에 빨간 무늬, 흰색에 자줏빛 무늬. 처음 보는 색색의 튤립이 무리 지어 피었고, 사람들은 튤립밭으로 쏙 들어가 최대한 꽃 가까이 몸을 낮추고 사진을 남긴다. 이렇게 여리여리한 꽃이 1630년대 네덜란드 사람들에겐 투기 광풍을 일으킨 욕망의 화신이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 내가 정신없이 좇고 있는 그 무언가도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파동처럼 시간이 지나면 꺼져버릴 거품은 아닐는지.

바쁜 척했지만 항상 덜 중요한 일로 부모님을 기다리게 했다. 어차피 부모님에겐 내가 넘버원인 걸 믿고 당연히 기다려주실 거라 방심하고 있었다. 아빠와의 마지막 통화가 화요일이었다. 보고 싶다고 전화하셨다. 나는 목요일에 가겠다 했지만 그날 일이 생겨 못 갔다. 그리고 아빠는 금요일에 돌아가셨다. 부모님은 기다려주시지 않는다. 그걸 너무 늦게 알았다.

1공원 거울연못

서울숲은 다섯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거울연못이랑 튤립밭, 메타세쿼이아 길 등 아기자기한 공간이 많은 1공원은 서울숲의 대표 얼굴이다. 사진 찍으면 예쁘게 나올 배경이 이곳에 가장 많다. 2공원은 생태숲이다. 꽃사슴방사장이 있어 인기다. 보행가교 위에서는 생태숲을 내려다볼 수 있는데 내가 갔을 때는 족제비가 나타나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야생동물이 서식하는 2공원도 틀림없이 좋아할 것이다. 3공원에는 곤충박물관과 나비정원, 꿀벌 정원이 있고, 4공원은 습지생태원이다. 다양한 수생식물과 조류관찰대가 이곳에 있다.


마지막 다섯 번째 구역은 한강수변공원이다. 2공원 생태숲 위를 가로지르는 보행가교를 따라 쭉 걸으면 한강까지 이어지는데, 전망대처럼 아래를 내려다보며 걷는 묘미가 있다. 숲을 지나 강으로 장면이 전환될 때의 감격이란. 온몸으로 강바람을 마주하는 순간 서울이 얼마나 아름다운 도시인지 실감하게 될 것이다. 서울숲은 워낙 다양한 여러 개의 얼굴을 갖고 있어서, 강이든 숲이든 이 넓은 공간 어느 한 자락은 내 마음에 쏙 드는 공간을 만날 수 있다. 나는 그저 나무가 드리워진 그늘에 자리 잡고 앉은 것만으로도 좋았다. 무엇보다 날씨가 한몫했겠지만, 서울숲에 있는 동안 따사롭고 여유로웠다.

1공원 바닥분수

봄이 무르익은 서울숲엔 해사한 웃음이 넘쳐난다. 쏟아지는 햇살과 솟구치는 물방울이 만나 무지개를 만들고, 아이들은 물을 피하려는 건지 맞으려는 건지 바닥분수 사이를 뛰어다니며 까르르 웃는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얼굴도 봄꽃처럼 활짝 피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행복이 우리 편이다.

되돌릴 수 있다면, 나는 어버이날 부모님을 모시고 점잖은 한정식집보다 오히려 서울숲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싶다. 용돈보다, 홍삼보다, 넉넉한 시간을 부모님께 선물하고 싶다. 그늘에 돗자리 넓게 펴고 앉아 아이들 웃음소리를 충분히 들려드리고 싶다. 그걸 제일 좋아하실 테니까.

날이 따뜻해지면 튤립이야 지겠지만 상관없다. 왜냐하면 다음 주자, 수국이 대기 중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정보를 더하자면, 당분간 서울숲 주차장을 별도의 안내가 있을 때까지 무료로 임시 개방한다고 한다. 봄이 절정인 서울숲에서 가족과 함께 숲이 주는 여유와 휴식을 누려보길 추천한다.

글·사진 강현정 작가(전 방송인) sabbuni@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