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어르신상담센터가 지난 1일 집단 상담의 하나인 ‘나의 무대 나의 이야기’ 행사를 한국에니어드라마연구원 김주현 원장 주관으로 열고 있다. 노원구 제공
[가족의 달을 맞아 2023년 문을 연 노원구 노원어르신상담센터(센터장 박경아)가 진행한 성공적인 가족관계 상담 사례를 소개한다. 이 센터는 지방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직영으로 운영되며 심리상담 전문가가 배치된 곳이다. 편집자]
사례1 사별 이후 온전히 나에게 주어진 시간
결혼해 자녀를 낳고 키우며 안정적인 삶을 살았으나 성장한 자녀들이 결혼하며 떠나자 배우자와 둘만 남은 데 이어 병든 배우자를 십수 년 동안 간병하다 끝내 사별하게 되자 상실감과 슬픔이 너무 커서 심리상담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80대 어르신은 배우자를 간호한 세월 동안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본 적이 없었고 혼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했다. 어르신은 상담을 통해 지나간 인생 동안 얼마나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지 자신을 비로소 인정하기 시작했다. 진심으로 배우자를 대했기에 떠난 사람은 떠난 대로 잊고 남은 인생은 자신을 위해 잘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십수 년 만에 처음으로 혼자 외출하고 외식을 하기도 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비로소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동안 할 수 없었던 친구들도 만나고, 노인 일자리도 지원하며 혼자 남겨진 삶과 일상을 살아가는 힘을 내기 시작했다. 이 어르신은 상담센터에서 진행하는 ‘동년배 상담자 양성과정'에 참여해 다른 어르신들에게 센터를 알리고 상담으로 이끄는 입장으로 거듭났다.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자신의 주체성을 회복해간 변화의 과정이었다.
사례2 70대의 자신감 회복
평생 드센 배우자와 자녀의 강한 성격에 눌려 살던 70대 어르신은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극도로 꺼렸다. 첫 상담에서 그는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다”는 말을 반복하며 자신의 감정을 헤아리는 것은 물론 사소한 결정 하나도 스스로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상담사는 일상적인 선택부터 해보도록 권했다. 점심 메뉴 고르기, 산책 코스 정하기 등 소소한 선택부터 할 수 있도록 도왔다. 또한 배우자에게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대화법을 역할극처럼 풀어나갔다. 상담이 진행될수록 어르신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가족들에게 평생 뻥끗하지 않던 입을 열고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스스로 식사 메뉴를 정하거나 마트에서 직접 물건을 고르는 일에 자신감을 보였다.
상담사는 “움츠러들었던 그분 어깨가 펴졌고 표정이 살아나며 목소리도 또렷해졌다”고 할 정도였다. 생각 표현을 제대로 못한다며 답답해하던 배우자로부터도 말이 통하게 됐다며 인정받게 됐다. 어르신은 상담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고 자기 생각을 전달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했다.
사례3 부부 상담으로 회복된 대화
남편은 과묵하고 무심했으며 아내는 분노를 쌓아왔기에 서로 감정의 골이 깊었다. 아내는 늘 남편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꼈고 남편은 아내의 감정적 반응을 두려워하며 회피해왔다. 그 결과 서로 대화가 끊어지다시피 했다. 심지어 “저 인간은 원수”라는 생각도 있었다고 했다.
부부가 함께 내방해 얘기를 나눠본 결과 상담사는 남편이 평소 집안일에 손도 대지 않아왔으며 부인은 부탁조차 하지 않은 데 주목했다. 부인 입장에서는 짐짓 돕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남편에게 아예 얘기조차 꺼내지 않았던 터였다.
상담사의 제안에 따라 집안일을 부탁하자 남편이 선뜻 해내는 것을 보자 부인은 의외였다고 했다. 부탁받는 것으로 곧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느낌을 갖게 된 덕분이었다. 부부 관계에서도 변화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반복된 부탁과 도움의 선순환 덕분에 서로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연습도 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던 감정이 쌓여 있음을 서로 확인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법도 새로 배우기 시작했다. 부부 모두 “상담을 받고 나서 대화가 가능해져 관계도 조금씩 달라지는 중”이라고 말했다.
사례4 지나친 자식 사랑에서 벗어나기
가게를 함께 운영해온 부부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평생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 자녀에게는 사교육비며 결혼 비용이며 아낌없이 뒷바라지했지만 정작 두 사람은 외식 한번 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자녀들이 받은 특혜는 당연한 일이 돼 고맙다는 소리도 들어보지 못했다. 아내는 고된 육체노동과 말없이 참기만 하는 남편에게 답답함을 느꼈고 남편은 아내의 잔소리와 고됨에 지쳐 서로 감정이 메말라 있었다.
상담사는 상담 때마다 이들에게 외식을 포함해 다양한 둘만의 과제를 제안했다. 평생 자신들을 위해서는 돈을 써본 적 없던 부부는 외식이 처음엔 어색했지만 이내 맛있는 것을 먹는 즐거움을 누리면서 좋아하는 것을 조금씩 즐길 수 있게 됐다. 두 사람은 지나친 자식 사랑에서 벗어나 이제는 둘만의 벚꽃 나들이도 다니며 약간의 여유를 누리려고 애쓰고 있다.
상담 초기에는 “이 나이에 이렇게 살다 가지” 하며 인생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했던 두 사람은 이제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으며 손주들이 태어나는 것도 보고 아이들의 재롱도 보고 싶고 벚꽃 피는 것도 오래도록 보고 싶은 소망이 생겼다고 했다. 나아가 평생 모은 재산을 자식에게 무작정 물려줄 생각에서 벗어나 자신들을 위해 어떻게 쓸까에 대해서도 부부는 서로 상의하게 됐다.
사례5 일과 가족 균형을 잡으려는 용기
70대 남성 어르신은 번듯한 직장생활을 했지만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으로 구조조정을 겪으며 실직했다. 그때부터 생계를 위해 택시 운전을 했고 돈을 벌 욕심에 쉬지 않고 일해왔다. 그랬지만 정작 가족과의 관계는 점차 멀어졌다.
자녀는 독립하고 아내와도 대화가 줄어들면서 그는 점점 가족의 테두리 밖에서 살아가게 됐다. 혼자 식사하고 혼자 잠자리에 들며 익숙해진 고립 속에서 그는 “누구에게도 필요 없는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상담사는 그의 말 속에 깃든 상실감에 주목했다. 일중독처럼 자신을 몰아붙이는 생활은 사실 가족과 다시 가까워지고 싶은 내면의 욕구와 맞닿아 있었다. 상담을 통해 그는 가족에게 느끼는 미안함, 거리감, 두려움을 점차 말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몇 차례 상담을 거치며 그는 아내에게 먼저 식사를 제안했고 자녀에게도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기 시작했다. 관계는 단번에 회복되지 않았지만 가족도 그의 변화에 반응했다.
그는 상담사에게 말했다. “택시 몰 줄만 알았는데 택시를 멈추고 가족과 함께 쉴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과거에는 일밖에 몰랐지만 지금 그는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시간을 삶의 중심에 두고 있다. 상담은 그에게 ‘무가치함’이라는 벽을 넘어 다시 가족 안으로 돌아가는 길을 열어줬다. 야간 운행을 줄이고 낮에만 운전하며 자신만의 속도로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갔다. “가족과 저녁을 함께 먹는 게 이렇게 좋은 줄 몰랐다”라는 말은 상담이 그에게 가져다준 가장 큰 변화였다.
정리 하변길 기자 seoul01@hani.co.kr
“심리상담은 여생 재설계 출발점”
전국 지자체 유일 구청 직영 노원어르신상담센터 이렇게 운영된다
노원어르신상담센터에서 한 어르신이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 노원구 제공
“각자가 살아온 과거 사실은 달라질 수 없지만 심리상담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다시쓰면 미래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이 점은 똑같습니다.”
서울 노원어르신상담센터 박경아 센터장의 말이다. 박 센터장은 어르신을 위한 심리상담을 통해 고립으로 인한 소외감, 과거에 대한 슬픔과 억울함, 가족관계 갈등 등으로 생긴 우울감이나 불안감에 사로잡혔던 어르신들이 감정을 정리하고 자신 자신을 찾고 이해하며 인생을 새롭게 구성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심리상담이 소중한 여생에서 행복감을 되찾고 가족과 사회와의 관계도 재구성하도록 돕는 ‘여생 재설계’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고도 했다.
노원어르신심리상담센터에는 매일같이 어르신들이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 병든 배우자를 돌보다 지친 이, 자녀와의 관계에서 마음의 문을 닫은 이, 오랜 은둔 끝에 말을 잃어버린 이들 등 사연은 다양하다. 스스로 내방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식들의 성화에 떠밀려, 때로는 학대예방경찰관(APO, Anti-abuse Police Officer)을 통해 오기도 한다. 상담이 진행될수록 어르신들은 굳게 닫았던 마음을 조금씩 열어간다. 어르신 심리상담은 내담자들의 인생에 적지 않은 변화를 일으키며 인생 후반부에도 변화를 만들고 자신이 원하는 삶에 한층 다가설 수 있도록 돕는 등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상담센터는 65살 이상 노원구 거주 어르신을 대상으로 주 1회씩 10회차 상담을 기본으로 삼고 있으며 내방 상담을 원칙으로 하지만 가정까지 찾아가거나(찾아가는 상담), 집 가까운 곳 방문(권역상담) 방식으로 1:1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1:1 상담 외에도 집단상담, 전화상담 등 여러 가지 형태로도 진행된다. 모든 상담은 무료다. 상담센터는 지난해 11월 연극치유 기반의 심리극 ‘나의 무대 나의 이야기’를 해당 분야 외부 전문가와 함께 구청 소강당에서 진행해 참석자들의 깊은 공감을 끌어냈다. 또한 올해 1월 미술 심리 프로그램을 진행해 그림을 매개로 감정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시간도 마련하는 등 미술치료, 원예치료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상담센터는 심리상담에 머무르지 않고 외부의 APO, 치매안심센터, 노인맞춤돌봄기관 등과 협력하며 주거, 의료, 경제 등 실질적 도움이 시급한 어르신들에게는 복지서비스를 연계해 제공한다.
노원어르신상담센터는 2023년 7월 구립수락노인종합복지관이 신축되면서 4층에 둥지를 텄다. 오승록 구청장의 의지에 따라 전국지자체 중 최초로 직영으로 운영되며 사회복지사 중심의 다른 지자체 어르신상담센터와 달리 심리상담 전문가들이 배치된 유일한 곳이다. 7명의 상담사 중 5명이 심리상담사, 2명이 사회복지사다. 이들은 지난해 내방상담, 찾아가는 상담, 권역상담 등 총 377명의 어르신을 1:1 상담했는데 이 중 여성이 281명(75%)으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남성은 96명(25%)에 그쳤다. 연령별로는 70대가 186명(50%)으로 가장 많았으며, 80대가 112명(30%), 60대가 71명(18%), 90대 이상도 8명(2%)에 이르렀다.
박경아 센터장은 “지자체는 물론 민간에서도 어르신 심리 전문 상담기관은 무척 부족하다”며 “초고령사회의 문턱에 들어선 지금 어르신들의 마음을 돌보는 공공 서비스가 본격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변길 기자 seoul01@hani.co.kr
“노년기 심리상담은 사회적 과제…전문가 양성 시급”
[인터뷰] 정미경 한국상담심리학회 고령화사회와 심리상담 TFT 위원(아주대 겸임교수)
노인 심리상담이 어떤 의미에서 중요한가?
“노년기는 신체적·사회적 변화가 집중되는 시기로, 외로움, 고립, 경제적 어려움, 건강 문제 등 다양한 심리적 도전에 직면한다. 이런 어려움이 방치되면 우울, 불안, 심지어 자살 위험까지 초래할 수 있다. 심리상담은 단순한 문제 해결을 넘어서 자신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고 스트레스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며 자존감을 회복해 남은 생애를 풍요롭게 살아가도록 돕는다. 누구나 의미 있는 인생의 마침표를 원한다. ‘성장’과 ‘희망’은 노년기에도 여전히 가능한 가치다. 심리상담은 이를 실현하는 중요한 도구다.”
노인 심리상담은 어느 정도 활성화돼 있나?
“지역별 노인복지관, 정신건강복지센터, 보건소, 노인상담센터 등 공공 부문에서 주로 이뤄지고 있고 사설 상담센터나 기관에서는 상담 비용 부담과 전문 인력 부족 등으로 활발하지 않다. 정부와 지자체는 노년기 심리 문제를 단순한 노화가 아니라 ‘지원이 필요한 사회적 과제’로 인식하고 심리상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상담 인력을 양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전문성 갖춘 인력 부족 원인과 해결책은?
“심리상담 인력은 아동·청소년 분야에는 많지만 노년기에 특화된 전문가는 매우 부족하다. 상담사 처우나 경력 개발 기회도 열악한 탓이다. 민간에 맡겨져 있는 자격증을 국가가 관리하는 공인자격증 제도로 바꿔야 하고 인력 양성, 체계적인 교육, 지속적 관리 등을 통해 심리상담 서비스 질을 높여야 한다. 감정 소모가 크고 상당한 스트레스를 동반하기에 적절한 처우와 안정적 고용도 보장돼야 한다. 대학이나 교육기관에서 노인 심리 전문상담 인력을 양성해 노인복지관과 상담센터 등 현장에 배치하는 정책적 노력도 필요하다.”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누구나 의미 있는 인생의 마침표를 원한다. ‘성장’과 ‘희망’은 노년기에도 여전히 가능한 가치다. 심리상담은 이를 실현하는 중요한 도구다.” 하변길 기자 seoul0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