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국밥 한 그릇에서 피어난 노년의 봄날
등록 : 2025-04-24 13:35 수정 : 2025-04-24 14:57
노년의 새로운 활력의 기회가 되는 일자리를 위해서는 중앙정부가 가진 어르신 일자리 사업의 설계 권한을 지방정부로 이양할 필요가 있다. 지방정부는 지역 여건과 주민 목소리를 가장 가까이에서 접하고, 그에 맞는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곳이다. 사업 유형과 참여 조건을 유연하게 설계하고 사업기관을 직접 선정하고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단순한 인건비 지원을 넘어 교육, 공간, 홍보까지 통합 운영이 가능하도록 예산도 총액 지원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지방정부가 필요한 예산 항목을 자율적으로 편성하고 집행할 수 있도록 일자리 정책 예산 구조를 유연하게 풀어낼 필요가 있다. 현재처럼 항목별로 지정된 목적에만 쓰도록 제한할 경우 실제 현장의 다양한 요구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건비 중심의 구조를 넘어 참여 어르신 교육, 작업 공간 마련, 주민 홍보 등 일자리의 질을 높이는 데 필요한 요소들에 재정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어르신 일자리 정책은 중앙이 정한 틀을 따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이 중심이 되어 설계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 더 오래가고 더 깊이 닿는다. 그 전환의 시점이 지금이다. ‘할매정국밥집’은 어르신이 ‘돌봄의 대상’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남아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의 역할을 유도하는 작은 전환의 시작점이자, 지방정부가 일자리 정책의 능숙한 조타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행정 사례다. 예산보다 중요한 것은 의지이고, 매뉴얼보다 필요한 것은 사람에 대한 이해다. 국밥 한 그릇에서 시작된 노년의 봄날이, 더 많은 마을로 퍼져가길 바라며 성북구는 앞으로도 지방정부의 행정이 주민 삶의 온도를 따뜻하게 바꾸는 일에 집중하려 한다. 국밥집 벽에는 작은 안내문이 있다. “서비스 과정에서 미숙한 점이 있을 수도 있지만, 따듯한 마음으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르신 일자리는 우리가 그들에게 베푸는 시혜가 아니라 우리가 배워야 할 인내와 삶의 깊이가 그분들 안에 있음을 깨닫게 한다. 할매정 국밥 한 그릇의 따뜻함이 허기보다 마음을 먼저 데운다. 이승로 성북구청장
할매정국밥집 어르신들의 첫 월급날에 이승로 성북구청장(오른쪽 둘째)이 어르신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성북구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