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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편지 이후 홀몸 할머니의 세상이 달라졌다

신월1동 할머니들 손편지 수업 외로움 딛고 세상과 소통 나서

등록 : 2017-06-08 16:37
난달 17일 신월1동 마을사랑방에서 열린 손편지 수업에 참석한 안문자 할머니가 교사가 나눠준 시를 공책에 정성스럽게 옮겨 적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지난달 17일 오후 양천구 신월1동 마을사랑방에 할머니 대여섯분이 나타났다.

격주로 있는 손편지 수업을 듣기 위해서였다. 시작할 시간이 되었는데도 학생 몇이 보이지 않자 교사인 조아름(26) 손편지제작소 대표 대신 할머니들이 전화기를 들었다.

“오늘 수업하는데 왜 안 와? 응? 몸이 안 좋아!” 어제 경기도 파주로 교회 소풍을 따라갔던 할머니는 몸살이 났다고 했다. 반면 박순희(90) 할머니는 바로 나서겠다고 대답한 모양이다. “그 할머니 집이 바로 길 건너야. 금방 와.” 다들 집이 어딘지 안다고 했다. 그런데 김남분(77) 할머니가 “우리 집은 아무도 모르지. 조 선생만 알지”라고 놀리자 다른 할머니들이 “세월이 얼만데, 왜 안 가르쳐줘! 다른 사람은 다 아는데”라고 타박했다. 김 할머니는 “편지를 써서 줬더니 조 선생이 직접 찾아와 편지함에 답장을 넣어줘서 우리 집을 안다”고 설명했다.

5년 전에 신월1동으로 이사 온 김 할머니는 3년 전 남편과 사별했다. “이 마을에 친구는커녕 아는 사람도 하나 없었어요. 남편이 살아 있을 때는 말동무가 있어서 좋았는데, 떠난 뒤에는 진짜 허전해서 못 살겠더라고.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싶어 울기도 정말 많이 울었죠. ‘아니다. 하나밖에 없는 우리 딸 봐서라도 살아야지’ 했다가도 금세 우울해지고…. 지난해 여름 마을에 걸린 펼침막을 보고 마을사랑방에 왔어요. 여기 친구들은 보면 반갑게 인사하고, 서로 예뻐해줘요. 글을 쓰는 것도 재미가 있더라고. 이렇게 취미가 생기고 친구도 생기니 이제야 좀 살 만하네요.”

박 할머니가 숨을 헐떡이며 도착하자 수업이 시작됐다. 지난번 수업시간에 자녀에게 썼던 편지를 전달했는지 조 대표가 물었다. 배경순(79) 할머니는 “어버이날이라고 아들이랑 며느리가 올라왔는데, 내가 주는 걸 깜빡 잊어버렸다”고 했고, 자녀가 찾아오지 않아서 편지를 전해주지 못한 할머니도 있었다. 조 대표는 “자녀들 주소를 알려주시면 우표를 붙여 대신 보내드리겠다”고 말했다.

엄학순(83) 할머니는 둘째 딸과 막내딸에게 편지를 전달했다. “애들한테 편지를 쓴 건 평생 처음이야. 여기서 어떻게 쓰라고 가르쳐줬는데, 나한테 안 맞는 말은 빼고 ‘자식들 잘 기르느라 수고했다’ ‘내 딸로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썼어요. 며칠 전 내 생일에 왔을 때 편지를 줬더니 딸들이 ‘따로 보겠다’고 가져갔는데, 나중에 전화로 ‘엄마 나 감동 먹었어. 눈물 흘렸어’ 했어요. 좋기야 내가 더 좋지. ‘이런 자식들을 내가 길렀구나’ ‘아버지 없이 잘 컸구나’ 싶어 정말 감격했어요.”

엄 할머니는 마흔살 때 남편과 사별했다. 청소일을 하며 자녀 5명을 키웠고, 30년 전 막내딸이 시집간 뒤로 줄곧 홀로 살았다. “영감이 살아 있을 때 나 없으면 못 산다고 했는데, 나는 자식들 기르느라 고생을 많이 해서 다 잊어버렸다”고 웃었다.

돋보기를 쓴 김주희 할머니가 글쓰기에 몰두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김 할머니는 외동딸한테 편지를 썼다고 했다. “막상 쓰려고 하니 뭘 써야 할지 생각이 안 나요.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은데 글 쓴 지 오래됐고 나이를 먹다 보니…. 생각나는 대로 ‘고맙다’ ‘사랑한다’ 대충 썼어요. 얼마 전에 딸을 만났을 때 ‘편지를 썼는데 깜빡하고 안 가져왔다. 다음에 주마’했더니 딸이 먼저 ‘우리 딸 사랑한다, 그런 거겠지 뭐’라며 시큰둥하게 대답하데요. 그래도 줘야죠.”


한창 자녀 얘기로 시끌벅적하더니 조 대표가 에드거 게스트의 시 ‘할 수 없다는 말’을 나눠주자 다들 갑자기 조용해졌다. 자신의 공책에 한자 한자 그대로 옮겨 적었다. 중간에 어디까지 썼는지 헷갈려 손을 들기도 했다. 다 쓴 뒤 제대로 옮겨 적었는지 조 대표가 확인하자 다들 낱말 한두개씩 빼먹었다. “나이 탓이야. 틀리는 게 정상이야”라며 서로 다독이기도 하고, “점을 왜 안 찍어. 따옴표, 쉼표, 마침표는 찍어야지”라며 충고하기도 했다.

조 대표는 “지난해 9월 손편지 수업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할머니들이 글 쓰는 것 자체를 힘겨워했다. 편지를 써보자고 하면 한두 문장도 제대로 못 쓰셨다. 최근 20~30년 동안 글 쓸 일이 없었다고 하시더라. 처음부터 편지 쓰기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할 수 없이 글씨 쓰기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배경순(왼쪽), 박채열 할머니가 이야기를 나누다 웃고 있다. 김진수 기자
좋은 시나 글을 옮겨 적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꺼내기 시작한 할머니들은 반년이 지나면서 한줄 두줄 자신의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 글씨는 삐뚤빼뚤하고, 맞춤법은 자주 틀렸지만, 감성은 소녀처럼 절절했다. ‘이 나이에 꿈을 쓸 생각 하니 한심하고/ 지난 세월을 생각하니 꿈만 같다/ 앞으로 살날은 적고 한심하다/ 늙어서 집도 없이 살고 있으니/ 집 있는 것이 제일 부럽다/ 내가 건강하고 자식에게 고생을 시키지 않고 가는 게 소원이다’ (박채열·91)

조 대표는 “할머니들이 반년 동안 꾸준히 글쓰기를 하다 보니 지금은 글씨도 잘 쓰시고 편지도 한 바닥 채우신다. 적극성도 좋아지셨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는 “처음에는 손이 뻣뻣해서 글쓰기가 힘들었는데, 계속 쓰다 보니 부드러워져. 글 쓰는 게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 글도 늘었어. 느는 재미로 계속 쓰지. 평소 말로 하던 내용이라도 편지로 받으면 느낌이 달라. 이제는 편지 쓸 일이 있으면 써야지”라고 말했다.

조 대표는 1년 전 수강생을 모집하기 위해 마을을 돌 때 놀이터에 외로이 앉아 있던 김 할머니를 지금도 기억한다. “그때와 견주면 지금은 엄청 밝아지셨다. 올해 들어서는 다른 어르신들 따라 노인대학도 나가신다. 사회적 관계가 생기면서 마음이 안정되신 것 같다”고 말했다. ‘인제 와서 인생 생각하면 무엇하는고. 남은 세월 재미있게 살면 되지. 지나간 인생 타령 하면 골치만 아프지. 나의 인생은 얼마나 남았을까? 지금이라도 재미있게 살면 되는 거야’라는 김 할머니의 편지처럼 신월1동 할머니들은 남은 세월 재미있게 살고 있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