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을 병풍 삼아 소담히 들어앉은 한옥 풍경.
전에 함께 방송했던 네덜란드 출신 화예작가 행크 뮬더씨는 우리나라의 매력이 어딜 가든 산이 있는 풍경이라고 말하곤 했다. 사방이 평지인 유럽에서 나고 자란 아티스트의 눈에 구릉이 많은 우리 지형이 그렇게나 특별했나보다. 날 때부터 보아왔고 공기처럼 당연하게 생각해온 동네 뒷산의 존재가 그리 대단한 건지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러고 보면 서울은 세계 어디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참 아름다운 도시이다. 큰 강이 중심부를 흐르고 굵은 산자락이 에워싼 도시. 그 산에서 뻗어 나온 아담한 구릉들이 마치 실핏줄처럼 전신으로 펼쳐지고, 그 사이사이 마을이 자리하여 수백 년 역사를 살아낸 도시가 바로 우리의 수도 서울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파트 일색인 주거문화랄까. 많은 인구가 오밀조밀 모여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기는 하겠지만, 공동주택이라도 조금 더 예쁘게 지을 수는 없을까? 한강을 따라 간선도로를 달릴 때마다 마치 방파제처럼 강 옆을 메운 아파트 행렬을 보면서 좀 더 아름답게 도시를 설계하면 좋을 거란 생각을 항상 해왔다.
워낙 집 구경, 동네 구경 다니기를 좋아하는 터라 그래서 은평 한옥마을은 처음 생길 때부터 관심의 대상이었다. ‘춥고 불편한 한옥’을 벗어나 미래형, 도시형 한옥을 표방하며 널찍한 골목에 복층형 한옥을 뽑아낸 곳이 은평 한옥마을이다. 잡지에 소개된 내부 모습을 봐도 수납공간이며 동선이 흔히 알던 구식 한옥과 다르다. 한옥의 아름다움에 실용성을 더했고 게다가 북한산이 든든히 뒤를 받쳐주고 있으니 이보다 더 자연 친화적일 수가 없다. 산은 산대로, 220살 먹은 느티나무는 나무대로 제 자리를 지키고 섰고, 그 틈을 비켜가며 사람 사는 집이 겸손하게 들어앉았다.
마을이 조성된 지 십 년이 훌쩍 지났지만 자연 소재로 지은 한옥은 낡을수록 더 멋이 난다. 집들이 한결같이 큰 편이어서 선뜻 살아볼 엄두가 나진 않지만, 하늘을 향해 고운 선을 그리는 기와지붕이며, 담벼락 아래 살랑이는 봄꽃들이 여기 와서 함께 살자고 자꾸만 마음을 간지럽힌다. 돌과 흙과 나무로 지은 한옥의 색상이며 질감이 어느 하나 튀는 것 없이 자연의 일부처럼 조화롭고, 한갓진 골목길은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이런 곳에 살면 매일 온종일 집에만 있어도 좋을 것 같다.
마을 끝에서 북한산 둘레길 8구간을 따라 조금만 걸어가면 ‘진관사’에 다다르는데, 양지바른 산비탈에 얌전히 자리한 사찰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도시를 떠나 꽤 멀리 왔나보다 착각이 들 정도로 고즈넉하다. 고려 현종 때 지은 천년 고찰 ‘진관사’는 그 역사만큼이나 볼거리가 많다.
일장기 위에 먹물로 덧칠해 태극 문양과 4괘를 그려 항일의지를 드러낸 백초월 스님의 태극기가 2009년 진관사에서 발견돼 보물로 지정됐고, 조선조 세종대왕은 성삼문, 신숙주, 박팽년 같은 학자들을 위해 이곳에 독서당을 지어줬다는데, 그 설명이 재미있다. 세종이 집현전 학자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를 장려했더니 이들이 처음에는 집에서 책을 읽었으나 학문에만 전념할 수 없다는 폐단이 발생해 절에서 책을 읽게 했다는 것이다. 하긴 그건 내가 잘 안다. 집에서는 세탁기 돌려야지 청소기 돌려야지, 집안 살림이 눈에 밟혀 책이 눈에 안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 옛날 학문에 도가 튼 선비들도 공부하려면 집 밖으로 나갔어야 한다는 사실에 괜히 웃음이 나온다. 다음에 또 올 때는 나도 책 한 권 끼고 올라와 양지바른 곳에 앉아 얼마간이라도 읽다 내려오고 싶다.
진관사 가는 길엔 가문 봄에 고맙게도 제법 힘찬 물소리를 내며 흐르는 계곡이 있고, 그 옆으로 성미 급한 홍매화랑 산수유가 먼저 꽃망울을 터뜨렸다. 아무래도 북쪽으로 치우친 산이라 기온이 낮은 겐지 진달래는 한 열흘은 더 있어야 피어날 기세고, 향로봉으로 향하는 길바닥엔 연한 봄 쑥이 잔디처럼 깔렸다. 따사로운 햇살이 온몸으로 스며드는 순간,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다는 게 감사하고 행복했다. 바야흐로 서울이 화사해지는 계절, 천지가 꽃인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글·사진 강현정 작가(전 방송인) sabbuni@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