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17개 길이 실핏줄처럼 이어져…길의 유혹에 홀린다

서울로 7017 도심보행 관광길, 골목마다 이야기와 사람 냄새가 가득

등록 : 2017-05-18 15:34
서울로 7017로 이어진 길을 따라 남산 백범광장 가는 길의 한양성곽.
20일 개장을 앞두고 막바지 정리 공사가 한창인 ‘서울로 7017’ 만리동 방향의 끝, 중구청 청소 차고지가 만리동광장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손기정 선수가 부상으로 받아온 나무에서 종자를 받아 키운 대왕참나무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광장의 한쪽에는 노천극장이자 공공미술 작품인 ‘윤슬’이 반짝거렸다. 윤슬은 햇빛이나 달빛에 빛나는 잔물결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윤슬은 25m 폭에 4m 깊이의 광학렌즈 모양을 하고 있었다. “서울로 7017로 생겨나는 오르고 내리고, 올려보고 내려보는 행위의 경험을 증폭하고 시민들이 서울의 새로운 모습을 경험하며 예술적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설치했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윤슬의 지하 공간에서는 공연과 함께 분기별로 1~3회의 시민참여형 예술 프로그램이 열릴 예정이다.

10명의 유명 셰프들이 비빔밥 선보여

자동차의 길을 사람의 길로 바꾸면 많은 변화를 가져온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을 개발중심 도시에서 지속가능한 재생 도시로 전환하는 상징적 계기가 될 것”이라며 “서울 사대문 안을 20분 이내에 걸어다닐 수 있는 보행친화 도시로 조성해 환경 개선, 대기 질 개선, 에너지 절감, 지역경제 활성화, 시민 삶의 질 향상의 1석 5조 비전을 실천해나가겠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서울로 7017을 찾는 이들의 출출한 배를 달래줄 식음 시설 5곳도 개장 준비로 바빴다. 만리동광장에는 도토리풀빵을 파는 시설과 비빔밥의 옛 명칭에서 이름을 딴 ‘7017 서울화반’이 들어선다. 꼬마김밥과 길거리 토스트, 떡볶이, 전통차 등을 팔 장미김밥, 수국식빵, 목련다방은 공중 구간에서 만날 수 있다.

주목해야 할 건 7017 서울화반이다. 10명의 서울시 명예 요리장들이 한달씩 돌아가면서 자신의 이름을 건 비빔밥을 선보인다. 첫번째 셰프는 김훈이씨. 한식 최초로 <미쉐린 가이드>(미슐랭 가이드) 별을 획득한 뉴욕의 한식당 ‘단지’의 오너 셰프 김씨는 ‘연어가 들어간 비빔밥’을 선보일 예정이다. 김소희(오스트리아 김 코호트), 최은미(곳간), 권우중(권숙수)씨 등도 참여한다.

서울로 7017의 17은 ‘17개의 길’을 상징한다. 7개 통로는 17개의 길을 연결하고, 17개의 길은 서울의 실핏줄 같은 골목까지 이어진다. 서울로 7017에서 청파동 방향으로 2~3분 걸으면 빨간색 건물을 만나게 된다. 기무사령부 수송대가 사용했던 차고와 정비공장을 새로 단장해 2011년 3월 개관한 국립극단 백성희 장민호 극장이다.


이 극장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서울역이다. 옛 서울역과 강우규 의사 동상을 만나러 가는 길. 횡단보도를 건너고 계단을 올라 서울역사를 지나야 하는 수고는 20일부터는 하지 않아도 된다. 서울로 7017에서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바로 서울역 광장으로 내려서면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우규 의사 동상 앞에는 서울로 7017의 개장에 맞춰 ‘슈즈트리’ 설치가 한창이다. 슈즈트리는 길이 100m, 높이 17m에 이른다. 3만여켤레 신발이 쓰였다고 한다. “신발을 통해 우리가 도심 속에서 잃어버린 가치에 대해 같이 나누고 고민하고 싶었다.” 작품을 설치한 환경미술가 황지해씨의 설명이다.

남대문교회 옆 스퀘어가든.
걸어야 만날 수 있는 비밀의 정원

2011년 복원 공사로 1925년 건립 당시의 모습을 되찾은 옛 서울역사 앞도 나무를 자르고 세우느라 어수선했다. 한국철도 100년을 기념하는 동판 위까지 공사 자재가 쌓여 있었다. 새로운 전시 ‘시간 여행자의 시계’전을 준비하는 공사였다. 서울의 관문이었던 옛 서울역사는 2004년 역의 기능을 다한 뒤 복합문화공간 ‘문화역서울284’로 쓰이고 있다.

서울역 광장 맞은편. 드라마 <미생>의 무대였던 서울스퀘어다. 거대한 건물이 숨겨놓은 숲을 찾아가는 길은 서울로 7017과 연결되는 대우재단빌딩 통로를 이용하면 편하다. 서울스퀘어와 메트로타워를 대문으로 삼은 채 가파른 남산 비탈에 기대어 선 남대문교회 옆에서 작은 숲 스퀘어가든을 만날 수 있다.

대우그룹이 일대의 땅을 사들이려고 했지만 남대문교회의 땅만큼은 사들이지 못해 숲으로 남아 있다. 작은 숲은 인근 빌딩에서 일하는 수많은 ‘미생’들을 위로하는 작은 쉼터가 되고 있다. 길은 밀레니엄 서울 힐튼 호텔 주차장을 지나 남산 소월길로 이어진다.

2009년 시작한 남산 성곽 복원 공사로 옛 모습을 찾아가는 성곽을 따라 오른다. 백범광장으로 이어지는 소월로 주변 성곽은 2012년 복원됐다. 성곽을 따라 난 길을 걷는 이들의 표정이 오월의 햇살만큼이나 밝다.

일제 강점기 남산에는 일본의 신사가 있었다. 신사참배를 가기 위해 억지로 올라야 했던 길을 이제 백범 김구 선생이 지킨다. 동상은 1969년 건립됐다고 한다. 복원한 구릉 위 성곽에 기대면 멀리 인왕산과 북악산, 북한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백범광장을 나서서 더 오르면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박정희 정권 때 어린이회관으로 지어졌으나 한때 국립도서관이기도 했던 서울시교육청 탐구학습관을 만날 수 있다. 과학 체험학습을 할 수 있어 아이를 동반한 나들이라면 한번쯤 들러볼 만하다.

탐구학습관 옆 계단이 ‘삼순이 계단’이다. 2005년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마지막 장면을 여기서 찍은 탓에 얻은 이름이다. 중앙 난간을 사이에 두고 입맞춤을 하는 드라마의 장면을 따라 하는 연인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이다.

남산의 명물인 ‘삼순이 계단’. 서울로 7017은 17개의 길을 잇고, 17개의 길은 서울의 실핏줄 같은 골목길까지 연결한다.
영화와 드라마 촬영 장소도 곳곳에

계단을 내려서면 옥상이 눈높이에 맞춰지는 회현 제2시범아파트가 나온다. 1970년 준공된 아파트다. 애초 이름은 회현 제2시민아파트지만 보통 회현 시범아파트라고 한다.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 당시 김현옥 서울시장이 이 아파트는 절대 무너지지 않도록 시범을 보여야 한다며 ‘회현 제2시범아파트’라 해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근 50여년 제자리를 지키느라 낡은 모습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에 가끔 등장한다.

아파트를 지나 내려서면 길은 골목을 지나 회현역으로, 남산순환로를 따르면 남산 성곽을 따라 남대문으로 이어진다. 어느 길이나 결국 서울로 7017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남대문 앞에는 도심 보행길과 서울한양도성 순성길 안내판이 ‘이 길도 걸어보라’며 유혹한다. 서울로 7017은 17개의 길을 연결한다. 17개의 길은 수없이 많은 걷는 길들을 잇는다.

글·사진 윤승일 기자 nagneyoon@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