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 부는 토요일 밤, 탱고 한 곡 어때요?

서울은 아시아의 부에노스아이레스, 10여개 밀롱가에서 밤마다 탱고 파티

등록 : 2017-04-13 15:07 수정 : 2017-04-21 17:13
탱고 페스티벌의 그랜드 밀롱가 모습. 탱고 문화가 확산되면서 동호인들이 함께 모여 탱고를 즐기는 페스티벌이 늘고 있다. Geff(축제공작소) 제공
“딴. 딴. 따라, 따라라 란.딴. 따라….” 아코디언을 닮은 반도네온(탱고에 사용하는 손풍금의 하나)의 무거운 듯 애련한 음색에 스타카토 기법이 더해져 비장함이 흐른다.

가슴과 이마를 맞댄 채 포옹하는 듯한 ‘아브라소’ 자세의 탕게로(남성 탱고인)와 탕게라(여성 탱고인). 이들의 다리가 음악에 맞춰 느릿하게 미끄러지는 듯하더니 이내 모이고, 멈추고, 현란하게 허공을 가르기를 반복한다. 가슴과 이마를 서로에게 기댄 채 한 손은 서로 꼭 잡고, 또 다른 손으로는 파트너를 보호하고 의지하겠다는 듯 감싼 채 반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면서 보여주는 동작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밀롱가(탱고를 추는 장소)를 가득 채우던 반도네온 소리와 함께 무용수들의 동작도 멈췄다. 잠깐의 정적이 지나자, 밀롱가를 가득 메운 200여명의 탱고 동호인들의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2017년 탱고 엔수에뇨 칼리토스 &노엘리아 그랜드 밀롱가’란 긴 이름의 행사가 열린, 지난 8일 토요일 밤 서울 서초구 잠원동 카페 ‘엘땅고’의 한 풍경이다.

탱고를 추러 서울을 찾는 외국인 늘어

“서울은 ‘아시아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통해요. 서울에만 10여개가 넘는 밀롱가가 있어요. 밤마다 탱고 파티가 열리는 셈이지요. 여기 사람들 가운데 타이완, 일본, 홍콩에서 온 사람들도 상당수예요.” 남편 임기우(45)씨와 함께 밀롱가를 찾은 임윤정(40)씨의 설명이다.

환경 관련 시민단체에서 일하며 석사과정을 밟던 정윤씨가 탱고를 만난 건 2003년. 학업과 직장이 주는 스트레스에 힘겨워하던 정윤씨를 위한 선배의 제안이 계기가 되었다.


탱고의 매력에 빠져드는 건 순간이었다. 정윤씨는 영국 유학 기간에도 외로움이 진해지면 밀롱가를 찾았다. “탱고는 전 세계가 즐기는 춤이에요. 어느 도시나 밀롱가는 있어요. 음악에 몸을 맡기고 동작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다 보면 향수병도 잊히곤 하거든요.” 탱고가 요구하는 고도의 집중력은 스트레스 해소뿐 아니라 정신을 맑게 하는 효과가 있다는 설명이다.

19세기 후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근의 부두 ‘보카’에서 시작된 탱고는 출생부터 이민자들의 외로움과 향수를 달래기 위한 음악과 춤이었다. 유럽과 아프리카, 남미의 음악과 춤이 만나고, 이민자 특유의 고독과 애환이 문화로 융합되면서 비장미와 애절함을 담은 탱고가 태어난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1990년대 말 태권도 사범으로 아르헨티나에 정착한 공명규씨가 탱고를 소개하고 교육하면서 탱고 문화가 시작됐다고 한다. 동호인들은 밀롱가뿐 아니라 외국의 유명한 무용수를 초청해 공연을 여는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탱고 인구를 늘리고 있다.

2006년 탱고 동호회에서 만나 2008년 부부의 연을 맺은 임씨 부부가 꼽는 탱고의 첫 번째 매력은 교감이다. “1분 동안만 포옹하고 있어도 느낌이 달라진다고 해요. 춤추는 내내 아브라소 자세를 유지하다 보면 남자와 여자를 떠나 사람과 사람으로 교감이 느껴져요. 탱고 음악은 묘한 매력이 있어 음악과 동작에 집중하다 보면 몰랐던 내면을 보게 되기도 하고요.”

동호회 운영자로 활동하기도 한 남편 임씨는 “탱고가 소통하는 춤”이라고 강조했다. “파트너와의 소통, 함께 춤을 추는 다른 커플들과의 소통이 이뤄지지요. 신경 쓸 게 정말 많아요. 술도 마시지 않게 돼요. 신체 접촉이 많은데다 술에 취하면 일단 여성 파트너를 보호해야 하는 남성의 기본 임무를 못 하게 돼요.” 남성의 춤이라고도 하는 탱고에서 남성의 중요한 역할은 여성 파트너를 보호하는 것이라 한다.

예의와 절도도 탱고의 중요한 덕목이다. 탱고는 3~5곡의 비슷한 분위기의 곡을 묶은 ‘탄다’를 기준으로 춤을 춘다. 곡과 곡 사이에는 아브라소 자세를 풀어야 하고 사적인 대화도 하지 않는 게 불문율이다. 춤을 출 때도 남성은 여성의 체중을 감당해야 하는 만큼 많은 땀을 흘리게 된다.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기 위해 땀에 젖은 상의를 갈아입을 정도로 상대를 배려해야 하는 춤이기도 하다.

여성들은 자율성과 창조성을 탱고의 매력으로 꼽는다. “여성이 팔로하는 게 기본이지만 하체를 이용해 꾸밈을 넣는 등의 동작은 온전하게 여성의 몫이에요. 작은 동작 하나로 춤을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어 창조하는 즐거움이 크죠.” 남편 박현수(40)씨와 함께 탱고를 추는 김은영(35)씨가 꼽는 탱고의 매력이다.

탱고를 통해 새롭게 맺게 되는 관계망도 탱고가 사람들을 흡입하는 힘이다. “지방에서는 지역 특색을 반영한 밀롱가를 자주 열어요. 논산의 딸기 밀롱가, 포항의 대게 밀롱가는 꽤 유명해요.” 이럴 때면 다른 지역의 동호인들도 함께 모여 즐기면서 우의를 다진다고 한다.

지난 8일 카페 엘땅고에서 아르헨티나에서 온 칼리토스와 노엘리아의 탱고를 관람하는 동호인들. 윤승일 기자
탱고로 관계 맺으며 삶에 윤기 더해

친한 친구들과 집에서 밀롱가를 열기도 한다. “거실에서 춘다고 ‘양말 밀롱가’라고 해요. 아이들도 함께 즐기는 거죠. 7살짜리 딸아이와 함께 탱고를 추기도 하는데요, 아이가 무척 즐거워합니다.”

외국 출장길에도 탱고 슈즈와 의상을 챙긴다는 박씨는 “밤에 술을 마시기보다 그 도시의 밀롱가를 찾는데, 외국인들도 한국에서 왔다면 반겨주기도 하고 새로운 문화도 배울 수 있어 좋다”고 했다. 박씨 부부는 신혼여행지인 그리스 아테네에서 밀롱가를 찾았을 때 한국인으로는 최초라며 환대해주고 축하해주던 현지인들의 따뜻함을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탱고는 기본적인 스텝만 익히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춤이다. 밀롱가에서 자유롭게 탱고를 즐기기까지 보통 남성은 6개월에서 1년, 여성은 3개월에서 6개월 정도가 필요하다. 남성은 리딩을 해야 하는 만큼 시간이 더 걸린다.

비용은 동호회의 경우 1회 1만원 안팎으로 부담이 적다. 탱고 의상은 점차 갖춰나가면 되고, 꼭 갖춰야 하는 탱고 슈즈는 10만원 선이면 살 수 있다.

취미로 시작한 탱고가 직업이 되는 경우도 가끔 있을 정도로 탱고의 매력은 치명적이라고 한다. 임씨 역시 얼마 전부터 탱고를 주제로 한 문화공연을 기획하는 일을 하고 있다. 2016년 남이섬 탱고 페스티벌과 국립극장에서 탱고, 로망 그리고 포옹을 주제로 연 ‘코리아 로맨틱 탱고 위크’ 등이 임씨가 기획에 참여한 행사다.

올해는 탱고 강습과 인문학을 결합한 새로운 강좌를 한겨레문화센터에서 6월에 열 계획이다.

“일단 시작해보세요.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탱고의 매력이 삶을 윤택하게 해줄 거예요.” 일상이 힘겨운 이들에게 주는 임씨의 격려다.

임씨 부부 추천 동호회와 아카데미

동호회

탱고 아딕시온 cafe.daum.net/adiccion

라틴속으로 cafe.daum.net/latindance

땅고 파밀리아 cafe.daum.net/TANGOFAMILIA

머큐리와 탱고음악 cafe.daum.net/mercurytango

탱고와인 cafe.naver.com/darbyryu

아카데미

또도땅고 cafe.daum.net/TODOTANGO

로열탱고 cafe.daum.net/ROYALTANGO

엘땅고 cafe.daum.net/elitangocafe

엘블린 cafe.daum.net/elbulin

탱고피플 cafe.daum.net/tango-people

윤승일 기자 nagneyoon@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