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광장의 또 다른 이야기

우리 말과 글을 지켜온 이야기를 듣고 보는 ‘한글가온길’

등록 : 2017-03-23 15:24
한글이야기 10마당 벽화
광화문 세종로 전역에 ‘한글가온길’이 있다. ‘가온’은 ‘가운데’를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여기 우리 고유문자인 ‘한글’의 흔적을 더하니 ‘한글이 중심된 길’이란 뜻이 되었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과 한글을 지켜온 일제강점기의 조선어학회와 선조들, 그리고 주시경 선생의 이야기가 흐르는 약 2.5㎞의 길이다. 해를 넘겨가며 촛불을 들고 섰던 그 길은 이제 역사에 기록될 만큼 익숙한 길이지만 돌아서 걷다 보면 풍경은 새 모습으로 다가온다.

세종로가 그렇다. 길의 시작은 광화문광장이다.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뜻을 모으고 촛불을 들었던 평범한 시민들의 비범한 흔적 아래에는, 우리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한 선조들의 예사롭지 않은 흔적이 남아 있다. 그 흔적을 좇아 걸어보자. 봄날, 마음에 잔잔한 꽃향기가 밀려든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광화문광장
세종이야기 전시관에서 예술정원으로

광화문광장 밑에는 뭐가 있을까. ‘세종이야기’ 전시관이다. 전시관에서 만난 박세훈(41)씨는 “우연히 들어왔는데,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지금 알았다. 아이와 다시 와야겠다”고 했다.

세종대왕(재위 1418~1450)은 조선의 왕 중에서 서울(한양)이 고향인 첫 번째 왕이다. 경복궁에서 즉위하고, 정문을 ‘광화문’이라 이름 붙였다. 광화문광장의 전신인 육조거리의 형태도 세종 대에 재정비했다. 전시관에서는 이러한 세종의 이야기와 더불어 세계 언어학자들이 ‘최고의 문자’라 꼽는 한글 탄생 과정을 영상과 자료로 구성지게 설명한다.

세종문화회관 근처의 ‘세종로공원’ 한글글자마당에는 ‘조선어학회한말글수호기념탑’과 주요한의 ‘빗소리’ 시비가 보인다. 1만1172개의 글자로 만든 시민들의 한글 편지 조형물도 간이 쉼터가 돼준다. 세종문화회관 뒤뜰인 ‘세종예술의 정원’은 조선 시대 노비와 양반이 한글 편지를 주고받았던 옛 관청 터라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조선 시대 이야기꾼 ‘전기수’들이 활약했던 거리, 광화문 세종로는 골목을 타고 일제강점기로 굽이굽이 이어진다.

한글회관
‘말모이작전’ 조선어학회와 한글10마당

“아래와 같이, 이곳 방언을 규칙 없이 적어드립니다. 조선어사전 편집자에게 백분지 일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앞으로도 힘닿는 데까지 적어드리겠습니다. 힘내십시오.” 일제강점기, 길주 지방에 사는 이가 지역에서 쓰는 우리말을 몰래 적어 한글학회(조선어학회)로 보낸 기록이다. ‘말모이작전’이었다. 우리 말과 글이 금지된 시절, ‘조선어학회’ 학자들은 우리말을 지키려 목숨을 내놓고 사전 편찬에 들어갔다.


비밀리에 진행된 ‘말모이작전’은 전 국민이 함께한 우리말 모아내기 작업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기록한 우리말 편지가 조선어학회로 전달됐다. 그 과정에서 발각된 국어학자들은 고문과 굶주림으로 옥사하고, 남은 이들이 뜻을 이어갔다. 나라의 염원이 담겼던 원고는 훗날 서울역(경성역)에서 발견되어 1957년 ‘큰사전’의 길잡이가 됐다.

광복 후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꾼 조선어학회는 오늘도 우리말 연구와 교육에 매진한다. 한글회관을 찾아가면 주시경(1876~1914) 선생의 흉상을 만나게 된다. 주시경 선생이 실제로 걸었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한글회관 건너편에서,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글과 그림으로 들려주는 ‘한글10마당’ 벽화를 만나게 된다.

주시경 선생 동상
도렴녹지공원에서 주시경 집터까지

‘말과 글을 잃으면 민족도 멸망한다’는 말을 남긴 주시경 선생. 손수 만든 한글책 보따리를 들고 날마다 한글을 가르치러 다녀 ‘주보따리’라 불렸다고 한다. 선생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도렴녹지공원에 가면 보따리를 쥔 선생의 모습과 한글을 사랑했던 호머 헐버트 박사의 모습을 동상으로 만날 수 있다. 볕을 조금 쬐다가 서울지방경찰청 방향으로 10분 정도 오르면 선생의 옛 집터가 나온다.

평생 곤궁하게 외길을 걸은 그는 39세 젊은 나이로 눈을 감았고, 집은 헐려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섰다. 새문안로에 있는 ‘용비어천가’ 건물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한글 조형물이 있어 선생의 집터였음을 일러준다. 그 건물 1층 커피 가게의 젊은이들은 당당하게 우리말을 터뜨리며 웃고 있었고, 바람을 타고 들어온 꽃향기가 은은하게 공간을 채웠다. 선생의 혼이 터에 남아 있다면, 이 장면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길은 다시 경복궁 담장을 따라 광장으로 뻗어나간다.

‘한글가온길’ 답사 안내

①‘18개 한글 조형물을 찾아서’ 한글가온길 곳곳에 18개의 한글 조형물이 있다. 김밥집 옆에 윤동주의 시가, 가로등 위에 걸어가는 활자가, 오래된 벽돌 위에 한글 자모 벽돌이 살포시 놓인 식이다. 안상수, 강병인 등 한글 디자이너들이 만든 작품이다. 숨바꼭질하듯 하나하나 찾아가는 재미도 누려보자.

②‘문화해설사와 함께 걷는 길’ 답사일 기준 3~5일 전(50명 이상인 경우 2주 전)에 서울관광마케팅 사무국으로 신청하면, 문화관광해설사가 동행해 구석구석 설명해준다. 단 박물관 체험프로그램은 답사 후 개별적으로 가야 한다. (운영:매일 오전10시, 오후2시 출발 (연중무휴) / 예약:02-6925-077 / 약 2~3시간 소요)

‘훈민정음과 한글디자인' 특별전

국립한글박물관(관장 김철민)은 세종대왕 탄신 620주년을 기념해 5월28일까지 기획특별전 ‘훈민정음과 한글 디자인’을 연다. 국립한글박물관과 23팀의 디자이너가 한글의 창제 원리가 담겨 있는 책 <훈민정음>의 원형과 내용을 협업으로 풀어냈다. 1부 ‘쉽게 익혀 편히 쓰니’에서는 1443년 세종대왕이 백성들을 위해 스물여덟 개의 문자를 만들고 1446년 <훈민정음>을 편찬하기까지, 문자가 만들어진 원리와 과정을 소개한다. 2부 ‘전환이 무궁하니’에서는 <훈민정음>에 담긴 15세기의 한글 원형을 오늘날의 디자인으로 풀어낸 영상, 입체, 그래픽 작품 30여 점을 전시한다.

민병걸 작가의 ‘한글+ 색퍼즐’.

글·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