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곤증? 냉이에게 물어보세요

등록 : 2017-03-16 15:05
우수·경칩이 지나고,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이 벌써 목전에 다가왔습니다. 절기만 보면 이제 봄의 일주문을 지나 중문 앞에 서 있습니다.

엊그제는 ‘맹추네 농장’에서 겨우내 말라 있던 풀들을 태웠습니다. 순식간이었지만 그 열기는 살도 익힐 기세였습니다. 봄여름에 물이 올라 시퍼렇다가 가을이 되어 물은 가고 불만 남아 있던 풀들, 이제 그 불마저 모두 날려버리고 한 줌 재가 되었습니다.

풀을 태우는 데도 요령이 있습니다. 여기저기 불을 붙인다고 쉬이 타지 않습니다. 풀을 모아주지 않으면 타는 둥 마는 둥 꺼집니다. 상승하고 확대하려는 불은 역설적이게도 모아줘야 상승하고 확대하는 기운이 살아납니다. 하강하고 수렴하는 성질을 갖고 있는 물은 이와는 반대로 흩어져야만 잘 스미고 하강합니다.

물과 불은 이렇게 상반된 성질을 갖고 있지만, 물은 끊임없이 불을 만나고, 불은 물을 만나려 합니다. 그래야 생성의 근원으로서 본래 기능을 완수하기 때문입니다.

봄은 물이 불을 만나 상승하는 계절입니다. 그런 상승의 결실로 가장 일찍이 나타나는 생명 가운데 하나가 냉이(사진)입니다. 산중의 맹추네 밭에도 냉이가 부쩍 올라왔습니다. 볕이 바른 곳에는 냉이의 파란 이파리가 융단처럼 깔려 있습니다. 냉이의 잎 모양은 특별합니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선 잎이 뭉쳐야 하는데, 냉이 잎은 분수처럼 퍼지면서 올라옵니다. 땅속의 기운을 사방으로 퍼뜨리는 형상입니다.

땅속을 향하는 식물의 뿌리는 대개 아래쪽이 크고 굵습니다. 그런데 냉이 뿌리는 땅속으로 들어갈수록 좁고 가늘어지고, 위로 올라갈수록 굵고 넓어지는 역삼각형입니다. 상승의 기운을 드러내는 전형적인 형태입니다. 이른 봄 싹을 올리는 씀바귀, 고들빼기, 민들레도 마찬가지입니다.

냉이만을 보면 뿌리는 땅속 기운을 끌어올리고 잎은 기운을 사방으로 흩어주는데, 분수처럼 퍼진 잎은 상승 에너지를 키워줍니다. 물이 불을 만나 상승, 확대하려는 봄의 기운을 냉이는 가장 열정적으로 보여주는 셈입니다.

우수가 되면 얼어붙은 것들이 풀리기 시작해 경칩이 되면 땅속의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고 지면 위로 오르려 합니다. 지난해 처서에 땅속으로 스며든 생명이 경칩을 맞아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겁니다. 개구리만 뛰쳐나오는 게 아닙니다. 저수지나 하천에 물이 많아지고 나뭇가지엔 파랗게 물이 올라 꽃눈, 잎눈의 두터운 옷들을 벗어버리기 시작합니다. 버들강아지 피고, 매화 피고, 산수유꽃 피고, 살구와 앵두 꽃망울 터질 듯 부풀어오릅니다.


자연은 대우주이고 인간은 소우주입니다. 소우주인 인간은 대우주인 자연의 리듬을 따라야 합니다. 봄은 상승하고 확산하고 발산합니다. 사람도 기운이 오르고 활동성이 커지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봄이 오면 자주 춘곤증을 호소합니다. 그건 상승과 발산의 리듬을 타지 못한 데서 비롯된 증상입니다. 오르고 확산해야 하는데, 기운이 막히고 부족해 피곤하고 어지러워지는 것입니다.

냉이는 이른 봄, 기운 상승의 결정체입니다. 산업사회에서 인간은 자연의 리듬에서 벗어나 살아가기 쉽습니다. 특히 자연의 흐름이 극적으로 변하는 봄철, 쉽게 자연의 리듬을 잃어버립니다. 상승의 힘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위해 자연이 준비한 선물이 바로 냉이입니다. 자연의 흐름과 동행하는 것은 사람이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비밀이요 신비입니다. 그 신비의 기쁨을 이 봄 모두가 내면 가득히 만끽하길 바랍니다.

글 시중재

사진 신소영 <한겨레>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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