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처럼 순환하는 삶을 경작한다

도시농업 게릴라 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 땅과 사람, 사회를 살리는 세상 꿈꿔

등록 : 2017-03-16 15:02
우수인 지난달 18일 구산동 본부 농장에서 열린 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 총회 풍경. 텃밭김치요리 페스티벌을 열어 회원들이 기른 채소로 담근 김치와 장아찌 등도 선보였고, 함께한 회원 가족의 장기자랑 시간도 있었다.
서울아, 농사짓자

경칩(5일) 지나니 이랑에 이슬만 한 큰개불알꽃이 보라색 꽃을 팝콘처럼 터뜨리기 시작한다. 며칠 지나면 노란 양지꽃이 필 것이다. ‘노루뫼 농장’에선 경칩 행사로 비닐 덮은 양파밭 이랑에서 한 소쿠리 캔 냉이와 꽃다지·망초를 고추장에 무치고, 된장 넣고 끓이고, 겨우내 땅속에서 약성을 키운 돼지감자는 날것 그대로 접시에 담아 막걸리 안주로 내놨다.

어디쯤 오나 기다리던 봄이 이미 밥상 위에 성큼 올라와 있는 것이다. 이제 도시농부들이 용을 써야 할 때가 왔다. 우선 경칩을 전후해 밭에 석회를 뿌린 뒤 퇴비를 넣고 밭을 갈아야 한다. 올해는 모종을 직접 내기로 했다면, 씨고구마를 모종밭에 넣고, 토마토·가지·봄배추·오이·상추 등의 씨앗을 모종 포트에 넣어야 한다.

앞선 절기였던 우수(2월18일), 고양도시농업네트워크(고도넷)는 구산동 ‘본부 농장’에서 이미 새해 농사의 시작을 알렸다. 이름하여 총회를 겸한 텃밭김치요리 페스티벌. 열여섯 회원이 출품한 각종 김치와 장아찌가 품평을 기다리고, 회원들이 출시한 울금환, 도라지 차, 무말랭이 차, 비누 등 열댓 종의 가공품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생산물은 이웃과 나누고 소득에도 기여

가스통을 개조한 난로 위에서 뭇국이 끓고 있는 사이, 정면 스크린에는 지난 한 해를 돌아보는 영상이 지나갔다. 본부 농장을 포함한 11개 회원 농장에서 벌어진 각종 행사, 본부 차원에서 진행한 성인, 어린이, 청소년 그리고 전문가 대상의 각종 농부학교와 장터 등에서 벌어진 생채소처럼 싱그러운 얼굴과 활동들이 흘러간다. ‘벌써 1년이 지났나?’라는 아쉬움보다는 ‘그사이 이렇게 많은 웃음과 행복이 있었나?’라는 감개가 회원들 얼굴에 가득하다. 전체 회원 70명 가운데 40여 명이 참석했으니, 회원들의 몸이 얼마나 근질근질했는지 알 만했다.

안병덕 공동대표의 사회로, 2016년 결산보고와 올해 예산과 사업 설명을 끝으로 정기총회 공식 순서가 끝났다. 회원 모집이 목표에 미치지 못한 것이 아쉬운 점으로 지적됐지만, 올해는 시엠에스(CMS) 사업팀을 믿고 회원 배가에 매진하기로 했다.

이어 참석자들은 고도넷 본부가 준비한 울금청에 얇게 썬 사과·배를 넣어 울금과일차를 만들고는 요리 품평과 함께 본격적인 페스티벌로 들어갔다. 은여울 님이 준비한 각종 토종 반찬과 막걸리로 겨우내 쌓인 회포를 푸는 사이, 고교 교장을 역임한 이상홍 님의 색소폰 연주와 프로 가수 강구원 님의 공연이 이어졌다. ‘외양간·다솜’ 부부의 딸과 친구 3명의 율동은 이 작은 공동체의 엄마 아빠들을 뒤집어놓았다.


고도넷은 김재광·안병덕·김명원·김희수 등 도시농업 게릴라들이 2011년에 결성했다. 생태순환농업으로 내 주변부터 땅도 살리고 사람도 살리고, 사회도 살려보자는 데 의기투합했다. 화학비료·농약·비닐을 쓰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 음식 찌꺼기나 농업 부산물 등을 퇴비로 만들어 땅으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생산에 그치지 않고 장터를 조성해 농작물과 가공품을 이웃과 나누고 소득도 올리기로 했다. 수준별 농부학교를 세워 이런 삶을 이웃들에게 확산시키는 일도 하기로 했다.

결성 첫해 6개 농장이 결합해 ‘풍신난 도시농부 장터’를 열고, 도시농부 학교를 운영했다. 이듬해 봄 씨앗나눔 잔치를 열었고, 2013년엔 도시농업 전문가 양성 과정을 출범시켰으며, 도시장터 마르쉐에도 진출했다. 2014년엔 어린이 농부학교를, 2015년엔 고양 청소년 농부학교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소설가 김한수 님이 이끄는 어린이·청소년 농부학교는 2015년 경기도농림진흥재단이 주최한 경기도 도시텃밭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고양시는 도시농업축제를 열어 고도넷을 지원했다. 지난해 회원 농장은 11개로 늘었다. 숙원이던 본부 농장과 비닐하우스 교육동도 마련해, 교육과 실습을 함께 할 수 있게 됐다.

그사이 축적된 생태농업 기술로 소출도 많이 늘렸으며, 차와 효소·청·발효주 등 각종 가공 상품을 개발했고, 다양한 시장에도 진출해 적지만 의미 있는 소득도 올렸다. ‘가좌 농장’에선 달걀 펀드를 출범시켜, 건강한 닭과 달걀을 자급할 수 있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김재광(노루뫼 농장), 김명원(가좌 농장), 안병덕(벽제 농장), 김한수(자유 농장), 이상린(찬우물 농장) 등은 이제 생태순환 농사를 전업으로 삼게 됐다.

이 과정에서 도시농부들은 소농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라는 믿음을 재확인했다. 가장 중요한 건 일자리 문제. 기술의 고도화와 함께 일자리는 지속해서 줄고 있다. 급격한 노령화와 세계 최고의 노인 취업률은 그나마 부족한 청년의 일자리를 없애고, 노동시장에서의 공급 과잉은 일자리의 질을 급격히 떨어뜨렸다. 그렇다고 노인 빈곤율이 세계 최고인 현실에서 노인의 취업을 억제할 수도 없다.

이에 대한 탈출구를 완주로컬푸드는 보여줬다. 전주 시민에게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해온 완주로컬푸드의 2500여 회원 농가의 연간 평균소득은 1200만원에 이른다. 회원들은 대부분 장·노년층으로 500~1000평을 경작하는 소농이다. 노령연금을 포함하면 2인 가구의 월소득은 150만원 정도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농촌에선 자립할 수 있는 규모다. 완주 노인들의 자존감과 행복감은 전국 최고 수준이다.

도농 화합형 노년층 일자리 창출에 적합

현재 휴경지는 1억2000만~1억5000만 평이다. 가구당 500~1000평씩 배분할 경우 20만~30만 가구에게 돌아가는 규모다. 게다가 휴경지는 고령으로 농사를 포기하는 농가가 늘면서 가파르게 늘고 있다. 도회지 주변 농촌의 부재지주(농지에 살고 있지 않은 땅임자) 경작지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훨씬 더 커질 것이다. 정부가 농산물의 생산과 유통을 지원하고, 적절한 농지정책을 편다면 도농 화합형 일자리를 대거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이다. 노년층의 국가 복지정책이나 자녀에 대한 의존도도 현저히 낮출 수 있다.

고도넷 농부들의 꿈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청장년기엔 도시의 산업 전선에서 일하고, 장·노년이 되어선 도시 인근 농촌에서 생태농업을 하다가, 손을 놓을 때쯤 퇴직한 자식들이 그 자리로 돌아오고! 자연의 순환처럼 우리네 삶의 순환도 완성되는 그런 꿈이다.

글·사진 곽병찬, 김재광 농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