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의 삶을 바꾼 ‘걸어서 10분, 작은도서관’

기고/유종필 관악구청장

등록 : 2017-03-16 14:33
관악구는 지역 내 모든 도서관을 통합전산망으로 연결해 주민들에게 책을 배달하는 ‘지식 도시락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오늘의 나를 만들어준 것은 조국도 아니고 어머니도 아니고 동네 작은도서관”이라는 빌 게이츠의 말은 도서관의 접근성에 대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초등학교 도서관을 교문 근처로 옮기자 이용자가 두 배로 늘었다는 보도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복잡하고 시대는 빠르게 변하지만 인류가 발명한 것 중 책과 도서관만큼 현자들의 지식과 지혜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수단은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생활에 바쁜 사람들은 이 유용한 발명품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책과 도서관의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없을까 하는 고민 끝에 나온 정책이 관악구의 ‘걸어서 10분 거리 작은도서관’과 ‘지식 도시락 배달’ 사업이다.

도서관 건물을 많이 짓고 인력을 다수 채용하면 좋은데, 그럴 형편이 못 되는 것이 문제였다. 구청과 21개 동 청사를 비롯하여 체육센터와 폐매표소 건물을 활용하고, 폐컨테이너를 리모델링하는 방법으로 공간 문제를 해결했다. 인력 문제는 새마을문고 400여 회원들의 자원봉사가 결정적 몫을 했다. 동사무소마다 자리 잡고 있는 새마을문고를 모두 리모델링하여 도서관법상의 작은도서관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했다. 관악구 내 5개의 지하철역에도 무인 도서관 시스템을 갖추는 등 모두 43개의 작은도서관 네트워크를 완성했다.

모든 도서관을 통합전산망으로 연결하고,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앱을 이용해 신청하면 소형버스 3대를 이용하여 가까운 도서관으로 배달해준다. 이용자가 해마다 급증하여 지난해 1년 동안 40여만 권의 책이 배달되었다. 수직으로 쌓으면 관악산 12배 높이의 양이다. 구청 청사 1층에 있는 ‘용꿈꾸는 작은도서관’의 경우 130㎡의 좁은 공간이지만 하루에 1000여 명이 이용하고, 북 콘서트 같은 행사가 늘 열리는, 사랑받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가장 큰 성공 요인은 편리한 접근성에 있다.

이곳 근처에서 구두 수선을 하는 부부는 “과거에 도서관이 먼 곳에 있을 때는 먹고살기 바빠서 가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매월 20권 정도의 책을 대출해서 본다”고 말했다. 음료 배달하는 여성도 비슷한 말을 했다. 특히 지하철역에 있는 무인 도서관은 출퇴근길의 직장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길에서 만난 할머니는 “인근 도시로 시집간 딸이 책 빌려 보기가 편하다고 자주 온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전어 굽는 냄새가 집 나간 며느리를 부르듯이 책의 향기가 시집간 딸을 부른 셈이다. 이처럼 ‘걸어서 10분 거리 작은도서관’은 주민들의 삶을 바꾸고 있다.

‘어떤 도서관이 가장 좋은가?’라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집 가까운 도서관이 가장 좋다”라고 대답하곤 한다.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이 아무리 좋다 해도 관악구 주민들은 접근하기 어렵기 때문에 동네 작은도서관보다 효용이 떨어진다.

누구나 햇볕의 혜택을 보는 것처럼 지식의 혜택을 평등하게 보게 하는 것이 지식 복지이다. 그런 면에서 도서관은 가장 좋은 지식 복지이자 생산적 복지이다. 훗날 어떤 훌륭한 사람이 “오늘의 나를 만든 것은 관악구의 작은도서관이었다”라고 말할 날을 기대해본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