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열리는 신진 예술가 아트마켓 ‘브리즈 아트페어’는 미술품 구매의 투명성과 접근 가능성을 높이고 있
다. 사진은 2022년 행사. 에이컴퍼니 제공
“이 소녀들은 뭘 하는 거죠? 왜 수맥탐지기를 들고 있어요?” 전시장에서 작가에게 물었다.
“차가운 마음을 찾고 있어요. 차가운 마음을 찾으면 불덩이를 보내서 따뜻하게 해줘요. 그렇지 않으면 세상에 해로운 일이 생기니까요.”
노경화는 다정함이 세상을 구한다고 믿는 예술가다. 유기견 ‘꼴라’를 키우는 만욱 작가는 인간과 동물, 식물이 다 같은 우주의 구성원으로서 서로 존중하며 어울려 지내는 모습을 상상한다. 비인간종을 지배하려는 인간에 대한 쓴소리를 자신만의 시각언어로 밝고 재치 있게 이야기한다.
성병희는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처럼 개인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캔버스 위에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아픔이 있으니 외면하기보다는 받아들이자고 말한다. 허승희는 슬픔이나 쓸쓸함 같은 감정에 주목하고 차분하게 표현해 사람들을 위로하는 예술가다. 세월호 참사 이후 ‘상실의 시대’라는 작품을 내놓기도 했다. 노동식은 즐거움을 선사하는 설치미술가다. 그가 솜으로 만든 구름과 하늘, 바람을 넣어 만든 거대한 요술램프 지니를 보면 사람들은 동심으로 돌아간 듯 얼굴에 웃음을 띤다.
예쁜 것을 잘 그리는 사람이 예술가가 아니다. 말이나 글 대신 시각적 표현을 통해 사람들을 위로하고, 좋은 것을 제안하고, 무언가를 비판하거나 즐거움을 주기도 하는 사람들이 바로 나와 함께 일하는 미술작가들이다. 알수록 이들은 사회적기업가와도 비슷한 점이 많다. 세상의 어둡고 부족한 면을 보고 개선과 변화를 촉구한다. 당장 돈이 되지 않더라도 의미 있는 일을 하길 원한다. 내가 만난 여러 사회적기업가들이 그렇듯 뛰어난 재능과 개성으로 새로운 해법을 찾는 사람들이다.
사회적기업 에이컴퍼니를 시작한 지 13년이 됐다. 나는 늘 예술 분야에 관심이 있었다. 특히 미술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 대학 졸업 뒤 예술가로 활동할 수 없는 현실이 사회문제라고 생각했다. 미술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과 노력을 들이는데 사회에는 그들의 작품을 사주는 사람이 없고 일자리도 없었다. 몇 년간의 방황과 좌절 뒤에 붓을 놓고 전공과 상관없는 새로운 직업에 도전해야 하는 것이 재능 있는 미대 졸업생의 현실이었다.
우리가 미래의 고흐나 피카소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창업한 2011년 즈음에는 취업률로 평가해 여러 미술대학이 폐과되기도 했다. 예술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말에는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지만,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인식은 많이 부족하다. 예술가를 대우하고 예술품을 사는 일에는 인색하다. 왜 예술가는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지원하고 도와줘야 할 존재가 됐을까. 그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아보고 싶었다. 한 번에 풀리지는 않아도 나아질 수는 있지 않을까.
물론 미션과 열정만 있었을 뿐 리더십이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서는 준비가 부족했다. 좌충우돌을 피할 수 없었지만 내가 선택한 문제를 풀기 위해 상상했던 것을 시도하고, 크고 작은 실패와 성공을 경험한 시간은 값졌다.
매년 개최하는 신진 예술가 아트마켓 ‘브리즈 아트페어’는 올해가 10번째 행사다. 작품가격을 공개하고 흥정으로 할인하지 않으며 무이자 10개월 할부를 도입해 미술품 구매의 투명성과 접근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예술가들이 직접 현장에 나와 동료와 관람객을 만나며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되도록 기획했다. 처음에는 합정동의 카페 벽을 빌려 작품 15점을 팔았지만, 지난해와 지지난해에는 300점 이상 팔았다. 9회를 진행하는 동안 총 1420여 점의 작품을 판매했고, 구매자 4명 중 1명이 처음으로 작품을 사는 경험을 했다.
신진 예술가와 신진 컬렉터를 발굴하고 연결해 새로운 아트마켓을 만들겠다는 계획은 더디지만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지역의 작가를 지역의 파트너와 함께 선정해 소개하는 로컬트랙도 진행하고 있고, 내년부터는 글로벌 트랙도 열기 위해 준비 중이다. 예술 분야는 시장이 매우 작다. 단기간에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예술가들의 다양한 세계를 만나고 함께 성장하는 건 근사한 일이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