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밤에 아이 아플 때 갈 병원 있어 ‘든든’

강남구, 자치구 첫 ‘소아 야간·휴일 1차 의료기관’ 직접 지원

등록 : 2023-06-08 15:25 수정 : 2023-06-08 16:50
강남구가 지난 5월부터 사각 시간대 아이들 진료를 위해 지역 권역별 의원 3곳을 ‘소아(18살 이하) 야간·휴일 진료기관’으로 지정하고 자체 예산으로 직접 지원에 나섰다. 세곡달빛의원도 지정 진료기관 가운데 하나다. 5월31일 밤 9시 세곡달빛의원 대기실.

소아 환자의 사각 시간대 진료 위해

권역 의원 3곳 지정해 5월부터 운영

1인당 3만5천 수가 지원, 전액 구비

사전 수요조사·조례 제정·공모 추진

“지역사회 진료체계 구축 선도할 것”

동네 병원은 대부분 평일 저녁 7~8시에 문을 닫고 휴일엔 진료하지 않는다. 늦은 밤이나 ‘빨간 날’에 아이가 갑자기 아프면 어떻게 하나 불안을 느끼는 부모가 적잖다. 강남구가 최근 의원 3곳을 야간·휴일 진료기관으로 지정하고 사각 시간대 아이들 진료를 위해 지원에 나섰다. 자치구 자체 예산으로 소아 야간·휴일 1차 의료기관을 직접 지원하는 첫 시도다.

구는 지난달 4일 세곡동(세곡달빛의원)·논현동(다나아의원)·압구정동(보통의의원) 세 권역에 있는 의료기관과 협약을 맺고 18살 이하 소아 환자 진료 수가 지원을 시작했다. 구는 지정 의원에 야간과 휴일 진료에 대해 건당 3만5천원을 지급한다. 지정 의원은 최장으로 평일에는 밤 11시까지, 휴일에는 밤 10시30분까지 운영하는데 의원마다 운영시간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지난달 31일 저녁 8시30분 세곡달빛의원 대기실에는 10여 명의 접수환자가 진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병원을 찾는 환자가 늘어났다. 금세 30여 명의 접수환자로 병원 입구 좌석까지 꽉 찼다. 15개월 된 이현준군은 새벽에 열이 났다. 엄마가 해열제를 먹였는데, 저녁쯤 다시 열이 올랐다. 김영근 원장이 아이의 목과 코안을 들여다보고 기도에 있는 이물질을 제거해줬다. 김 원장은 앞으로 증상이 어떻게 진행될 수 있는지 찬찬히 설명하고 5일치 약을 처방해줬다.

이군의 진료를 마치자 이번에는 이마가 찢어진 12개월 아들을 안고 한 아빠가 급히 진료실로 들어왔다. 아빠 옷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당황하고 놀란 낯빛의 엄마는 진료실 밖에서 초조해하며 기다렸다. 김 원장이 상처 부위를 소독한 뒤 거즈를 붙여주며 “24시간 안에 봉합해야 하니, 가능한 한 빨리 응급실로 가는 게 좋겠다”며 의뢰서를 써줬다. 1차 의료기관에서 의뢰서를 받아 응급실에 가면 예진 없이 바로 치료받을 수 있다.

진료를 마친 아이는 아빠 품에 안겨 대기실로 나왔다. 안도하는 부모의 모습에서 늦은 시간 응급처치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왜 필요한지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감기로 열이 있는 김동현(13)군과 의원을 찾은 엄마 박숙희(가명)씨는 “밤에 갈 수 있는 동네 병원이 있어 아이 키우는 엄마로서 안심된다”고 했다.

김영근 원장이 15개월 된 아이를 진료하고 있다.

세곡달빛의원은 2016년 개원 이후 보건복지부의 달빛어린이병원으로 지정돼 연중무휴로 운영했으나 코로나19를 겪으며 휴일 운영시간을 줄였다. 낮은 수가로 병원 경영에 어려움을 겪다 올해 야간과 휴일 운영 중단을 고민하고 있었다. 이규창 경영지원 본부장은 “이번에 강남구의 지원 사업에 참여하며 야간과 휴일 진료를 유지하기로 정했다”며 “6월부터 의사 1명이 추가돼 3명이 교대로 근무한다”고 전했다. 그는 “구 지원사업을 진행해보면서 휴일 운영시간을 밤 9시에서 11시까지 늘리는 것도 검토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야간과 휴일 진료 환자 가운데 소아 비율은 60~70%다.

이날 지정기관 모니터링을 위해 병원을 찾은 송정희 강남구 건강관리과 팀장은 “한 달 운영해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1.5배 정도 이용자가 많아 깜짝 놀랐다”며 “꼭 필요했던 사업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송 팀장은 젊은층이 많아 소아 비율이 높은 편이고, 특히 다둥이 가구가 많은 지역 특성도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했다.

사업 추진에 앞서 구는 어린이집, 유치원 부모 약 400명을 대상으로 수요조사를 했다. 모바일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6%가 지정 운영에 찬성했다. 법률자문과 조례제정을 진행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야간진료 수가 중복지원 관련 법률자문을 받아 법적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다. 송 팀장은 “주민들의 높은 찬성률에 힘입어 6개월 짧은 기간에 속도감 있게 추진할 수 있었다”며 “경증 소아 환자의 응급실 이용을 줄이고 보육자의 의료비 부담을 줄여주는 등의 효과도 있는 공익적인 지원 사업이기에 문제가 없는 거로 판단됐다”고 전했다.

세곡달빛의원 외관.

구는 지난 4월 ‘강남구 소아 야간·휴일 1차 의료기관 지정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공포하는 한편, 외부 자문위원 6명으로 구성한 심의위원회에서 공모 참여기관 3곳을 검토해 지정했다. 이들 기관은 소아 진료 건수와 공간, 의사 2명 이상, 협약 약국 운영 등 평가에서 80점 이상을 받았다. 심의위원회는 응급실 수가를 참조해 지원 수가를 의결했다. 송 팀장은 “최근 소아응급진료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사업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구의회에서도 조례가 신속하게 통과됐고, 진료기관 지정도 빠르게 진행했다”고 전했다.

올해 사업 추진에는 약 5억원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강남구는 중앙정부와 서울시의 관련 지원사업 추진 경과를 보면서 내년에는 협약에 따라 수가를 조정할 예정이다. 송 팀장은 “예상(월 1600건 정도)보다 이용자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이며 필요한 예산은 추경으로 확보할 계획”이라며 “예산 수반 사업이니만큼 모니터링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데이터를 참고해 잘 관리해나갈 방침이다”라고 했다.

그동안 강남구는 신생아 예방접종의 민간위탁 사업을 가장 앞서 추진해 확산시키는 등 지역사회 의료체계 구축에 선도적 역할을 해왔다. 조성명 강남구청장은 “아이들 건강을 돌보는 지역 진료체계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강남구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