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축제 성공 딛고 ‘문화 광진’으로 간다

김기동 광진구청장, 문화 인프라 시설 개선, 팝아트 앞세워 문화를 지역 발전 원동력으로

등록 : 2016-11-17 15:25
광진나루아트센터의 로보트 태권브이 앞에 선 김기동 광진구청장. 로보트 태권브이는 팝아티스트 찰스장의 작품으로, 지난 5월25일 팝아트 그룹 전시회 ‘팝콘 시즌1‘의 설치조형물이다. 장수선 기자 grimlike@hani.co.kr

나이 칠십을 고희(古稀)가 아니라 종심(從心)이라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종심은 논어 위정(爲政) 4장에 나오는 종심소욕불유구(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에서 유래한 말이다. “일흔 살에는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내년이면 종심의 문턱을 넘는 김기동(69세) 광진구청장은 거침이 없었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설명은 분명했고, 일시는 물론이고 세세한 통계까지 또렷하게 기억했다.

두 차례나 선거를 치른 연임 구청장이면서도 “구청장은 정치인이 아니라 행정가여야 한다”는, 그래서 “선거운동 기간에 대중 유세조차 하지 않았다”는 김 구청장을 광진나루아트센터 1층 전시실에서 만났다. 광진나루아트센터는 ‘오래된 베드타운 광진구’를 문화 도시로 변화시키기 위한 광진구의 디딤돌이 되는 곳이다.

“문화가 산업이 되는 시대예요. 수준 있는 공연에는 광진구민뿐 아니라 동부권의 다른 구민도 찾아옵니다. 채산성도 더 높아지죠.” 광진구는 지난해 11월 광진구문화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은 지역 발전을 이끌 문화 콘텐츠 개발, 문화 공연과 전시 기획, 주요 문화시설 운영 등을 목적으로 한다. 김 구청장은 전문가를 영입하고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광진나루아트센터 시설도 개선했다.

광진구에 ‘몽마르트르 언덕’ 만든다

“그동안 우리 스스로 문화 기반시설을 활용하지 못했어요. 광진문화예술회관 나루아트센터만 봐도 건대입구역과 한강이 가까워 접근성이 뛰어나고 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지만, 공연을 기획한 경험이 전혀 없어요. 단순히 시설을 빌려주고 전시나 공연 일정만 관리해왔던 거죠.”

김 구청장은 문화재단이 빠른 시간 내에 수익구조를 맞추는 기관이 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또한 2010년 광진구청장으로 당선된 뒤 서울동화축제와 아트마켓 등을 열어오면서 산업으로서 문화의 힘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김 구청장이 문화행정에 많은 공을 기울이는 데는 기왕에 지역에 마련된 인프라를 제대로 활용해보자는 생각도 담겨 있다. 광진구에는 강남권의 강남·송파·서초, 강북권의 종로·중구·마포 다음으로 문화시설이 많다.


광진문화재단은 지난 5월25일부터 ‘팝아트팩토리’ 출범식을 연 뒤 한 달여 동안 광진나루아트센터 1층 전시실에서 ‘팝아트 그룹전시회 팝콘 시즌1’을 열었다. 문화 도시 광진구로 가는 본격적인 걸음을 뗀 셈이다. 팝아트와 콘텐츠의 합성어인 ‘팝콘전’은 일회성 행사에 머물지 않고, 한 달에 한 번 정기 전시회를 열어 작가를 발굴하고 대중성도 확보하고 있다.

팝콘전과 함께 화양동 롯데백화점 스타시티점부터 나루아트센터까지 1.5㎞ 거리를 ‘팝아트 거리’도 다시 꾸몄다. 팝아트를 도시디자인에까지 활용하는 광진구의 노력은, 팝아트를 매개로 전시형 예술을 수요자가 중심이 되는 참여형 예술로 바꾸는 작업이기도 하다.

지난달에는 나루아트센터 광장을 중심으로 ‘2016 제1회 뚝섬 팝아트 페스티벌’을 열었다. 팝아트 페스티벌은 팝아트는 물론 회화와 일러스트, 록과 힙합, 재즈까지 다양한 예술 장르가 어우러져 누구나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고 참여할 수 있는 지역 축제다.

“광진구에는 젊은 예술가나 작가가 많아요. 이런 젊은 작가들이 작품도 전시하고 판매도 할 수 있는, 몽마르트르 언덕과 같은 공간을 광진구에도 만들 수 있어요.” 문화를 산업화하려는 김 구청장의 구상에는 ‘청년과 일자리’라는 우리 시대의 화두가 담겨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김 구청장은 서울시가 뽑은, 서울을 대표하는 14개 브랜드 축제로 꼽힌 ‘서울동화축제’ 명칭에 ‘광진’이 아닌 ‘서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동화축제는 서울시가 주최해야 합니다. 서울시민이 다 함께 즐기는 축제니까요.”

김 구청장은 선거 기간에도 대중 유세를 하지 않았다. 그 탓에 민선 6기 선거에서 열세 지역으로 꼽히기도 했지만, 무난하게 당선됐다. “언론에서 가장 열세라고 보도했잖아요. 그러자 우리 구 워킹맘들이 나서더라구요. 다 그 덕이지요.”

김 구청장이 독특한 선거운동을 펼치는 데에는 그 자신이 확실한 철학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구정의 70% 이상이 서울시 행정입니다. 자치구에는 예산도 없어요. 어떻게 공약을 하겠어요. 또 조직을 만들면 신세를 지는 건데, 그 사람들이 청탁하면 어떻게 거절하죠? 아예 그 씨를 만들면 안 돼요.” 그러면서도 구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김 구청장이 가지고 있는 소통의 힘에서 나온다.

‘구민과 소통하는 희망 광진’은 민선 5기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광진구의 슬로건이다. 구민을 찾아가는 ‘현장 민원실’, 구청장실을 개방하는 ‘구청장과의 대화’, 365일 열려 있는 온라인 ‘열린 구청장실’ 등 구민과 소통하려는 노력은 선출직 구청장으로 임기를 시작한 첫날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있다.

5월이면 30만여 명의 시민이 찾는 서울동화축제는, 낙후한 어린이대공원을 염두에 두고 지역의 전문가와 대학과 소통하지 않았다면 시작하지 못했을 일이다. 동화축제의 성공은 어린이대공원에 안데르센공원을 유치하는 성과까지 낳았다. “사실 동화축제는 남이섬을 개발한 강우현 대표와 외부 전문가들의 공이지요.” 김 구청장은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자신은 지역의 요구와 잘 접목했을 뿐이라며 겸손해했다.

광진구의 구정 ‘정책자문위원회’ 역시 김 구청장의 든든한 후원자들이다. 사회 각 분야 전문가와 대학교수 54명의 자문위원들은 구정 방향부터 계획, 검증까지 전문 지식을 보태는 일을 하고 있다.

10월 유신 계기 교수 꿈 접고 행정관료로

행정고시에 합격해 관료의 길을 걸었고, 선출직에 도전해 연임에 성공한 김 구청장의 애초 꿈은 교수였다. 교수의 꿈을 접은 계기는 10월 유신이었다.

“선생들이 박정희의 유신헌법을 지지하잖아….” 하늘 같던 교수가 국회의원 금배지 한번 달아보겠다고 박정희의 유신체제를 찬양하는 모습은 한동안 학교에 나가지도 못할 만큼 충격을 주었다. 1970년대는 교수는 물론이고 언론인과 판검사까지 박정희 군부독재에 부역하는 시대였다. 교수의 꿈을 접었다. 자신도 부역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그 길을 걸을 수는 없었다. “한동안 유랑으로 세월을 보냈어요. 국회사무처에 근무하던 친구 권유로 행정고시를 봤지요.” 그렇게 1978년 관료의 길에 들어서 30여 년 그 길을 걸었다. 2005년 서울시 공무원교육원장을 끝으로 공무원을 그만두고 2010년 선출직 구청장으로 돌아왔다.

선거운동조차 제대로 안 했지만 광진구민들은 다시 김 구청장을 선택했다.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뜻이리라. “구를 가로지르는 지하철 2호선 지상 구간의 지하화, 구의역 역세권 개발, 자양1촉진지구 재정비촉진지구 개발 사업 등이 남아 있어요.” 김 구청장은 특히 지하철 지하화를 강조했다. 서울시가 지난 6월 비용편익 분석에서 경제성이 없다고 발표했지만, 광진구민들의 간절함을 모른 척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간자본이라도 끌어와야지요. 그게 1980년대 기준으로 만든 거잖아요. 지금은 기술도 좋은데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늦어도 한길을 걸어온 김 구청장이다. 해야 할 일을 남겨두고 떠나지 않겠다는 게 김 구청장의 다짐이다.

박용태 기자 gangto@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