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매립지에서 문화예술 일터로

‘서커스·환경·커뮤니티’… 사회적 기업 ‘라토후’의 몬트리올 생미셸 지역재생 프로젝트

등록 : 2016-10-14 17:18
1 쓰레기매립지에 들어선 사회적 기업 ‘라토후’는 지역주민들과 함께 키운 텃밭 채소를 카페 식재료로 활용한다. 2 교육서비스를 맡고 있는 사뮈엘 피뉴돌리 매니저가 생미셸 지역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3 100% 재활용 자재로 세운 라토후 건물 전경
공연장 문을 열자 840석 규모의 원형극장 무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사방이 탁 트인 무대에는 배우 여러 명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두 명이 마주 보고 차례로 널판에서 공중으로 오르고 내리는 모습은 널뛰기를 떠올리게 한다. 세계적 명성을 가진 ‘태양의 서커스’ 출신들이 만든 공연팀 ‘세븐 핑거스’가 연습하는 모습이다. 이 팀은 생미셸 환경복합단지(CESM) 공연장에서 가을 공연을 앞두고 있다 한다.

캐나다 퀘벡 주 몬트리올 시 생미셸 지역에 환경복합단지가 자리 잡은 데에는 흥미로운 사연이 있다. 도심에서 북쪽으로 10㎞ 떨어진 생미셸 지역은 5만5000여 명의 주민이 사는 몬트리올의 대표적인 낙후 지역이었다. 1960년대 후반까지 석회석 채석장이었던 탓에 마구 파헤쳐진 거대한 구덩이들은 몬트리올 시의 쓰레기로 가득 찼다. 1980년대 말쯤 이곳은 22만 평에 이르는, 축구장 90여 개 크기의 엄청난 쓰레기매립지가 되어버렸다. 악취와 오염물질이 지역을 뒤덮으면서 일자리도 사라지고, 아이들은 빗나갔지만 주민들은 지역을 떠나지 못했다. 지역주민의 40%가 저소득층으로 가난과 소외를 견디며 힘겹게 살아가기 때문이었다.

무용가의 제안으로 시작한 지역재생 사례

쓰레기매립지에서 환경복합단지로 변신은, 이 지역 출신 여성 무용가가 쓰레기매립지를 문화예술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면서 시작됐다. 지역주민들의 연이은 시위로 대책 마련에 골치를 앓던 몬트리올 시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시는 1988년에 이 매립지를 포함해 60만 평을 사들여, 단계별로 친환경공원으로 꾸미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계적인 공연예술업체 ‘태양의 서커스’가 이곳에 본사를 두기로 했다. 뒤를 이어 국립 서커스학교가 들어섰다. 서커스 전용극장도 지어지면서 이 지역의 재생을 위해 지역활동가들과 ‘태양의 서커스’, 국립 서커스학교가 중심이 되어 2004년 사회적 기업 ‘라토후’를 만들었다.

라토후는 ‘서커스, 환경, 커뮤니티’ 세 가지를 핵심 가치로 삼았다. 몬트리올을 서커스 예술의 도시로 만들고, 쓰레기매립지에 들어선 친환경공원과 건물을 활용해 생생한 환경교육을 펼쳐가려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미셸 지역주민들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일자리, 문화생활 등의 기회를 꾸준히 만들어가고 있다.


라토후는 서커스와 관련된 여러 가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지역재생을 위한 다양한 방법을 찾는다. 서커스 배우들을 비롯한 많은 예술가가 이곳을 작업 공간으로 삼으면서 쓰레기매립지 마을에도 문화가 싹트기 시작했다. 라토후는 이런 분위기를 지역 청년 지원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서비스 관련 일자리는 지역 청년들에게 먼저 준다. 교육서비스를 맡은 사뮈엘 피뉴돌리 매니저는 “어려운 가정 형편과 쓰레기매립지인 빈민 지역에 산다는 열등감으로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은 청년들에게 직업훈련은 모험과 같은 일이었다”고 말한다. 늘어나기 시작한 다양한 일자리는 지역 청년들에게 마치 서커스의 마법처럼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라토후의 지역 청년 직업교육은 다양한 유형으로 창의적인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라토후의 사회·직업 통합 프로그램인 ‘팔라’(FALLA)이다. 팔라에 참가한 청년들은 16주 동안 주 35시간의 직업교육을 받는다. 이 교육과정에 전문작가들이 참여해 목공, 조각, 몰딩 등을 가르친다. 팔라 프로그램은 팀을 이뤄 교육한다. 참가자들은 기술뿐만 아니라 협업도 함께 배운다. 자기에게 맞는 교육을 골라 진로를 탐색할 수 있다.

교육 수료식도 색다르다. 스페인 발렌시아의 불꽃축제에서와같이 대형 조형물을 만들어 축젯날 선보이고 불에 태우는 이벤트로 과정을 끝맺는다. 팔라 프로그램 수료식 축제에는 수천 명의 지역주민, 예술가, 사회단체들이 참가한다. 수료식이 소통의 광장이 된다고 한다.

멘토링 제도로 기술과 삶의 가치 함께 전수

라토후는 지방정부의 지원을 받는 다른 직업교육기관과 연계해 일자리를 만들기도 한다. 주로 일자리를 찾는 방법, 이력서 쓰기, 인턴활동 연계 등 지역 청년들의 자립에 도움이 되는 교육과 활동들이다.

라토후는 공연장 안내, 주차장 관리, 표 판매, 카페, 짐 보관 등의 고객서비스를 청년 직업교육과 연계한다. 주로 시간제로 일하는 지역 청년들은 고객 응대에 관련한 교육을 받는다. 라토후의 창의성은 여기서도 적용된다. 청년 직원과 고객서비스 전문가 간에는 멘토링 프로그램이 있다. 멘토링을 통해 청년들은 일에 대한 지식과 기술을 빨리 익히는 것뿐 아니라 인생 선배들과의 대화로 책임감을 배우고 앞으로 진로를 정하는 데도 강한 자극을 받는다. 일 경험과 고용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2004년부터 500여 명의 지역 청년들이 사회로 나갔다. 2015년에 발표된 연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육 참가자와 담당 매니저들 모두 만족도가 높아 라토후의 직업교육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라토후는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2004년 문을 연 이후 921회의 서커스 공연을 주관하고, 353개의 무료 공연과 행사를 선보였고, 71개의 전시회를 열었다. 라토후는 지역주민들과 지역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자주 초청한다. 지역주민만을 위한 무료 공연을 만들어 초청하기도 한다. 텃밭 가꾸기도 주민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이다. 공연장 앞 텃밭을 주민들과 공동으로 운영하며 친환경 채소를 재배한다. 채소는 라토후가 운영하는 카페의 식자재로 쓴다. 옥상에서도 주민들과 함께 도시농업을 시도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있다.

쓰레기매립지에서 문화예술 일터로 거듭난 생미셸 지역은, 시민사회가 움직이고 정부는 정책으로 응답하고 기업이 힘을 보탠 대표 사례로 꼽힌다. 지난달 9월 초 캐나다 사회적경제 우수사례 조사 연수단에 참여했던 한국의 사회적경제 관계자들은 라토후가 지역재생에 주민들의 참여를 어떤 방식으로 끌어내야 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평했다.

안산지역에 접목할 수 있는 사례

청년 사회적기업 해외탐방 지원 프로그램 ‘씨커스’ 팀으로 연수단에 참여한 남서현 씨는 “라토후는 문화예술을 통해 지역주민의 참여를 끌어냈는데, 세월호 참사의 피해가족과 안산 지역주민들의 심리적 문제 해결 방법과 맥이 닿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박향희 신나는조합 사무국장은 매립지의 토지와 라토후의 건물은 모두 법적으로 몬트리올 시의 소유지만, 라토후와 100년 계약에 임대료는 1달러라는 점을 지적하며 “마포구에 있는 석유비축기지도 성공적인 지역재생 프로젝트가 될 수 있도록 창의적인 접근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몬트리올(캐나다)/글 이현숙 기자 hslee@hani.co.kr

사진 손정화 라파엘인터내셔널, 라토후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