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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진행한 ‘초등 돌봄’ 효과…“아이가 책과 친해졌어요”

온종일돌봄 체계 만들어 가는 금천구 초등돌봄 ‘책마을’
7월부터 3곳에서 시범운영…책 읽는 아이 점점 늘어나

등록 : 2022-10-20 14:33
금천구는 7월부터 구 내 작은도서관을 활용한 초등돌봄 책마을을 시작했다. 책마을은 독서뿐만 아니라 책을 매개로 한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책마을 2호점 돌봄교사 김민영(가운데)·박다솜(오른쪽)씨와 김미경 렘넌트지역아동센터장이 12일 독산2동 주민센터 2층에 있는 꿈씨어린이 작은도서관(책마을 2호점)에서 책을 보며 활짝 웃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독서 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부모 반응도 좋아

아이들이 규칙·프로그램도 결정

경단녀·취준생 돌봄교사로 활동

“내년엔 구비 들여서라도 할 계획”


“규칙을 정했어요. 자신들이 정한 규칙에 따라 행동해야 해서 무질서하거나 마냥 제멋대로 놀기만 하지 않아요. 결국은 책을 읽죠.”

금천구 ‘책마을’ 2호점은 매달 아동자치회의를 한다. 아이들은 매번 상정된 안건을 투표로 결정하고 돌봄교사에게 건의할 내용도 정해 회의록에 적는다. 지난 8월31일에는 아이들이 지켜야 할 규칙을 정했고 4일에는 회장과 서기도 직접 뽑았다. 박다솜(34) 책마을 2호점 돌봄교사는 지난 12일 “요즘 아이들은 부모나 교사가 말해도 스스로 이해하지 않으면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며 “아이들이 약속하고 정한 것이니 책임도 져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아이들이 정한 규칙은 △막말하지 않는다 △돌봄 선생님 등 어른들에게 예의를 지켜서 말한다 △프로그램 참여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지만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을 때는 책을 읽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간식은 먹지 않아도 좋지만 집에 갈 때 가져간다 △폭력은 절대 쓰지 않는다 △책마을에 오고 갈 때 반드시 부모님께 연락한다 등 6가지이다. 김민영(25) 돌봄교사는 “대부분 아이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를 좋아하지만, 몇몇 아이는 프로그램도 싫고 책 읽기도 싫지만 그래도 내가 정한 규칙을 지켜야 하니 책은 읽겠다고 한다”며 “그러면서 책과 친숙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아동자치회의는 박 돌봄교사의 아이디어로 시작했다. “집에서 아이들에게 억지로 시키면 아무런 효과가 없었어요. 아이들 의견을 물어보고 그대로 하니 아이들이 잘 따르더라고요.” 박 돌봄교사는 “아이가 말을 듣지 않을 때 네가 이렇게 하기로 약속한 것이라고 알려주면 말을 잘 듣더라”며 “그런 경험을 살려 돌봄 아이들에게도 약속하고 규칙을 정하면 효과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초등학생들이 책을 읽는 모습. 금천구 제공

금천구 책마을은 지난 2월 교육부가 온종일 돌봄체계 구축을 위해 시작한 학교 안팎 방과후학교 돌봄 활성화 지원사업에 선정됐다. 올해 처음 하는 시범사업인 책마을은 도서관과 책을 매개로 한 금천형 초등돌봄센터이다. 금천구 내 ‘작은도서관’을 돌봄 공간으로 활용해 독서활동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책마을은 ‘책을 품은 마을’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아이들을 책으로 키우겠다는 금천구의 의지를 담았다. 김홍민 금천구 교육지원과 온종일돌봄팀장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도서관과 책을 이용한 아이 돌봄”이라고 소개했다.

금천구는 2021년 5월부터 10월까지 금천형마을돌봄 모델을 만들기 위해 연구용역을 실시했다. 구 내 초등학생 보호자 652명을 대상으로 초등 돌봄 실태조사를 한 결과, 방과후 돌봄 선택 시 34%가 접근성을 1순위로 꼽은 데 착안해 책마을을 만들었다.

“접근성이 좋은 공간을 활용한 돌봄을 원하는 학부모가 많았어요. 이동할 필요가 없는 학교 공간을 이용해 돌봄서비스를 하면 좋으나 여의치 않아 차선으로 떠오른 곳이 구 내 곳곳에 있는 작은도서관이었죠.” 김팀장은 “부모님들이 접근성이 좋고 안전한 곳을 선호했다”며 “도서관은 이미지가 좋고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생활하면 어떻게든 책과 가까워질 수 있겠다는 기대가 컸다”고 했다.

도서관을 활용한 책마을은 접근성과 안전성 이외에도 비용 절감 효과도 있다. 김팀장은 “아이 돌봄을 위해 우리동네키움센터 같은 곳을 만들려면 몇억이 넘는 비용이 들지만, 책마을은 이미 있는 작은도서관을 활용하기 때문에 새로 공간을 만드는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 이점이 있다”며 “도서관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초등학생들이 책을 읽는 모습. 금천구 제공

금천구에는 주민센터마다 작은도서관 10곳이 있는데, 우선 3곳에서 책마을을 운영한다. 7월26일부터 청개구리 작은도서관(독산3동 주민센터 3층)에 책마을 1호점, 꿈씨어린이 작은도서관(독산2동 주민센터 2층)에 책마을 2호점, 8월10일부터는 꿈꾸는 작은도서관(시흥3동 동네방네 마을이음센터2층)에 책마을 3호점을 운영해오고 있다. 책마을 1호점은 문성초, 2호점은 독산초, 3호점은 금산초와 가까워 학생들의 이동거리가 짧은 게 장점이다.

책마을은 7월부터 12월까지 운영한다. 프로그램 체험비, 간식비 등 이용료는 무료다. 우리동네키움센터는 토요일 돌봄을 하지 않지만 책마을은 토요일 돌봄도 운영한다. 학기 중에는 평일 오전 11시부터 저녁 7시까지,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낮 2시까지 운영한다. 방학 때는 평일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토요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운영한다. 책마을은 정기돌봄과 일시돌봄 두 가지 기능을 모두 한다. “엄마가 갑자기 야근해야 하는 상황이나 다른 급한 볼일이 생겼을 때 돌봄을 신청할 수 있죠.” 책마을을 위탁 운영하는 렘넌트지역아동센터 김미경 센터장은 “책마을은 아이 돌봄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며 “그만큼 부모들의 선택지가 넓어지고 부담을 줄일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책마을은 아이들이 책과 친해질 수 있도록 독서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오후의 책장, 역사로 배우는 과학교실, 사서와 함께 책 친구가 되어 낭독, 나도 작가 그림책 만들기, 고전 읽고 독서 토론, 책과 함께 아동 요리, 영어 리딩, 책 읽고 종이접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초등학생들이 책을 읽는 모습. 금천구 제공

책마을 2호점에서는 공작, 컬러링(색칠하기), 보드게임, 독서활동 등 독서를 매개로 한 다양한 자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독서활동인 독서나무와 독서마인드맵 프로그램은 주 1회 운영한다. 독서나무는 아이들이 책을 자유롭게 읽고 책 속 대사나 그림의 내용이나 느낌 등 소개하고 싶은 글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활동이다. 메모지(포스트잇) 10장에 글을 적어서 자신이 그린 나무 그림에 붙여 모으는 활동이다. 박 돌봄교사는 “다른 아이들도 함께 보면서 서로 이야기하며 생각도 공유하고 책 소개도 할 수 있어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했다. 독서마인드맵은 책을 읽고 왜 이 책을 읽게 됐는지 독서마인드맵 도안에 감상평이나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는 글을 쓰는 활동이다.

공작 프로그램은 해당 공작물과 관련한 책을 먼저 읽은 뒤 만들기 활동을 한다. 다른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로 프로그램과 관련한 책을 읽은 뒤 활동을 시작한다.

책마을은 정해진 프로그램도 있지만 날마다 아이들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하는 경우가 많다. “활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죠. 초등학생이라서 놀러 온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이런 것 하면 어때요’라며 자기들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막 얘기해요.” 김돌봄교사는 “아이들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하면 반응도 좋다”고 했다.

“우리 아이들과 9년 동안 함께 놀아준 그대로 여기서 하고 있어 재밌죠. 일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박 돌봄교사는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가 있다. 결혼한 뒤 아이를 키우느라 경력 단절을 겪었다. 박 돌봄교사는 “결혼하고 9년 동안 일을 못하다 책마을 덕분에 일하게 됐다”며 “그동안 아이를 키운 경험이 책마을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매개로 한 초등돌봄 책마을에 참여한 아이들이 꿈씨어린이 작은도서관(책마을 2호점)에서 프 로그램 활동을 하는 모습. 금천구 제공

“사회복지사가 꿈이었는데 제대로 시작한 것 같아요.” 김 돌봄교사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딴 취준생이었다. 그는 “아직 사회 초년생이라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게 무척 많지만 아이들과 함께 바쁘게 사는 게 좋다”고 했다.

“도서관과 책마을 아이 돌봄이 서로 윈윈하는 구조죠.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책과 친해져 도서관을 이용하는 아이가 꾸준히 늘고 있어요.” 김홍민 팀장은 “책마을은 아이들도 좋아하고 부모들 반응도 좋아 내년에도 구비 예산을 들여서라도 계속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