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구는 지난 4월 불암산 힐링타운에서 상반기 거리예술제를 열었다. 대형인형 퍼레이드와 서커스, 무용극, 공중 공연 등 다양한 장르의 거리예술로 구민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노원구 제공
흔히 좋은 산에 오르면 그 여운이 이틀은 간다고 말하곤 한다. 경험상 콘서트나 전시회 등 좋은 문화를 경험하면 그 여운은 일주일도 넘게 지속되는 것 같다.
내가 문화에 눈뜬 것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의전행정관으로 5년간 일하며 각종 행사 기획을 담당하던 때였다. 전국 각지의 문화행사를 보러 다니다보니 안목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도 일부러 시간을 내 진주 유등축제, 대구 치맥 페스티벌, 원주 댄싱 카니발 등 다른 지역의 축제들을 둘러보곤 한다.
여러 축제와 지역 문화행사들을 벤치마킹하면서 유심히 살피다보니 문화에 대해 크게 느낀 점이 있다. 첫째, 문화는 치유 능력이 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은 자신의 책 <영혼의 미술관>에서 “예술의 핵심은 예술이 우리를 도와 더 나은 삶, 더 나은 자아로 이끌어준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좋은 문화 경험은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게 색다른 감각을 상기시켜 활력을 북돋워주는 동시에 삶을 고양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둘째, 문화는 일부를 위한 것이 아닌 모두를 위한 복지이다. 노원구도 전체 예산의 60%가 복지 예산이다. 복지 수요가 많은 구로 알려졌지만 실제 복지 대상자는 전체 주민의 일부다. 20%의 주민을 위해 60%가 넘는 예산을 쓴다면 나머지 주민들에게는 무엇으로 그들이 낸 세금을 돌려주어야 할까. 보편적 복지의 해답은 바로 모두의 삶을 풍족하게 하는 문화에 있다.
많은 지자체에서 이와 같은 이유로 문화 사업을 펼치지만 모든 문화행사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 사정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두 가지로 보인다.
먼저, 실패하는 지역 문화행사는 빈약하고 조악한 경우가 많다. 문화 예산 규모가 작고 인프라가 지나치게 중앙으로 편중된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지자체가 아무리 열과 성을 다해 준비한다고 한들 주민들 성에 차지 않을 수밖에 없다.
지자체의 문화 인프라 구축과 문화 예산을 증가하고 투자하는 것을 사치나 낭비로 보아서는 안 된다. 공연장, 전시관, 음향시설 등 인프라를 구축해 놓아야만 수준 높은 문화행사를 기획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를 향유함으로써 주민들이 얻는 효용은 경제적인 논리를 뛰어넘는다.
다음으로, 주민들이 문화를 즐길 여력이 없기 때문인 경우도 있다. 먹고살기에도 바쁜데 문화행사를 하니 어디로 몇 시까지 모이라는 일방적 통보만으로는 구민들의 이목을 끌 수 없다.
주민들의 일상으로 찾아가는 방식으로 문화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국민의 문화 수준이 높기로 유명한 프랑스는 ‘집 가까이 있는 문화’ 정책을 실시해 찾아가는 공공 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리도 이제는 주민들이 숨 쉬듯 자연스럽게 일상 속에서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찾아가는 방식의 문화 사업을 해야 한다.
서울시에서 문화 지수가 가장 낮았던 노원구는 ‘내일이 기대되는 문화도시’라는 구정 목표하에 변화를 모색 중이다. 전체 예산 중 문화 예산을 2.1%에서 5%까지 늘리기 위해 의회를 설득하고 주민들의 공감을 끌어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우승한 음악가들의 공연과 ‘한국 근현대 명화전’ ‘영국 테이트 미술관전’ 등 수준 높은 전시를 주민들에게 선보이고, 주민들이 자주 찾는 산책로와 집 앞 공원으로 찾아가는 거리예술제를 주기적으로 개최하면서 구민들의 문화 접근성과 형평성을 높이는 사업을 중점적으로 펼쳐왔다.
축제의 계절답게 전국 곳곳에서 문화행사가 열리고 있다. 노원구도 전 구민이 참여하는 ‘탈축제’를 시작으로 하천 산책로를 따라 조명 예술을 전시하는 ‘노원달빛산책’, 지역 구석구석을 찾아가는 ‘거리예술제’가 한 달 내내 이어질 예정이다.
문화 경험을 공유하며 쌓는 유대감, 순간적이지만 강렬한 일체감, 구민들의 얼굴에 떠오를 행복감으로 마음이 설렌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 다양한 색으로 물들어갈 자연처럼 구민들의 마음도 문화와 예술이 주는 감동으로 물드는 10월이 되길 소원해본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