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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디자이너, DDP와 함께 제작·전시·판매의 ‘새 가능성’ 찾다

등록 : 2022-05-19 15:31 수정 : 2022-05-20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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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문구와 패션 잡화를 다루는 디자인 회사 ‘썸무드디자인’의 김설 대표(왼쪽)와 폐자재 등을 디자인적 관점에서 다루는 디자인 스튜디오 ‘스튜디오 뉴탭-22’의 문지희(오른쪽)·최혜인 공동창업자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 모였다. 이들은 서울디자인재단의 청년 디자이너 육성 프로그램에 참가한 것이 디자이너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청년 디자이너 육성·지원’에 힘 쏟고 있는 서울디자인재단

디자인스토어·오픈큐레이팅·디자인페어 등 프로그램 ‘풍성’

“서울디자인재단의 ‘청년 디자이너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디자이너로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서울시 우수 디자인 입점 공모’를 통과해 DDP 1층 디자인스토어에 입점한 ‘썸무드디자인’의 문구들. 서울디자인재단 제공

지난 13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만난 세 명의 청년 디자이너가 한결같이 한 말이다. 이날 모인 디자이너 세 사람은 문구와 패션 잡화를 다루는 디자인 회사 ‘썸무드디자인’(SOME MOOD DESIGN)의 김설 대표와 폐자재 등을 디자인적 관점에서 다루는 디자인 스튜디오 ‘스튜디오 뉴탭-22’(Studio Newtab-22)의 문지희·최혜인 공동창업자다. 이들은 각각 다른 영역에서 서울디자인재단과 인연을 맺었지만, 모두 그 속에서 ‘청년 디자이너로서 더 넓은 가능성’을 찾아냈다고 한다.

사실 ‘청년 디자이너 육성 및 지원’ 사업은 서울디자인재단이 설립 때부터 힘을 쏟아온 영역이다. 서울시 산하기관으로 서울이 직면한 문제들을 디자인을 통해 해결하는 것을 비전으로 삼고 있는 재단은 설립 다음해인2010년부터 진행한 ‘서울 디자인 컨설턴트’사업 때부터 청년 디자이너의 역할을 중요시했다. 디자인 컨설턴트 사업은 중소기업과 디자인기업의 매칭을 통해 중소기업 제품의 디자인 개선을 돕던 사업에서 2013년부터 디자인 컨설팅을 통해 서울 지역 사회문제를 푸는 것을 목표로 한 사업으로 전환되면서 각 프로젝트당 한 명의 청년 디자이너를 참여시킬 정도로 청년 디자이너 육성에 관심을 보여왔다.

신진 전시기획자와 디자이너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오픈 큐레이팅’에 선정된 문지희·최혜인 공동창업자가 큐레이팅한 전시 ‘머티리얼 컬렉티브’의 모습. 서울디자인재단 제공


재단의 청년 디자이너 육성 사업은 이후 △신진 전시기획자와 디자이너를 발굴하고 소개하는 ‘오픈 큐레이팅’ 개최(2015년) △청년 디자이너들을 포함한 디자이너들의 제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디자인스토어’ 오픈(2015년) △국내 유일한 아시아 대표 온·오프라인 디자인 비즈니스 론칭쇼인 ‘DDP디자인 페어’ 개최(2019년) 등으로 계속 확산돼왔다.

현재까지 계속되는 이들 사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단이 DDP의 모든 영역을 활용해 청년 디자이너를 돕는 모습을 볼 수 있다.

2017년 론칭한 썸무드디자인의 김설 대표는 이 가운데 디자인스토어 입점을 통해 자신의 커리어를 좀더 다듬어갈 수 있었다고 말한다.

DDP 살림터 1층에 자리잡은 디자인스토어는 서울의 디자인과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는 상품 등을 개발·발굴해 합리적인 가격으로 시민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곳이다. 547㎡ 규모의 넓은 매장을 방문하면 현시대 가장 핫한 디자인 상품과 함께 성정기 작가의 ‘비욘드 DDP’와 같이 DDP를 상징하는 다양한 디자인 상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특히 디자인스토어는 2020년 리뉴얼을 통해 규모를 확장한 뒤 청년 디자이너 작품의 입점을 크게 늘려오고 있다.

성정기 작가의 작품 ‘비욘드 DDP’. 서울디자인재단 제공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만든 것 같은 문구와 패션잡화’를 주력 상품으로 삼는 썸무드디자인의 김설 대표도 지난해 11월 디자인스토어로부터 ‘서울시 우수 디자인 입점 공모’에 출품을 제안받았다. “신뢰할 수 있는 주체”로부터 제안을 받은 김 대표는 곧바로 10개 정도 제품을 출품했다. 출품된 제품들은 실제와 같이 전시된 상태로 심사위원 심사를 받아 통과한 뒤 디자인스토어에 입점할 수 있었다.

결과는 김 대표의 기대 이상이었다. 네이버쇼핑·텐바이텐 등 온라인 판매에 주력해온 김 대표에게 “오프라인에서 폭넓게 다양하게 보여줄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서울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DDP에 자리잡은 디자인스토어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관광객도 많이 찾는 곳이다. 김 대표는 이에 따라 “디자인스토어 입점을 통해 많은 이가 직접 매장을 찾아 썸무드디자인의 제품을 봄으로써 브랜드 인지도도 높이고 매출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서울디자인재단은 “DDP 디자인스토어리뉴얼 이후 2020년부터 현재까지 38개 청년 디자이너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며 “2021년 9월에는 비대면 온라인 구매가 가능하도록 홈페이지 등을 정비하는 등 디자이너들의 작품에 대한 접근성을 계속 높여가고 있다”고 말했다.

‘스튜디오 뉴탭-22’의 문지희·최혜인 공동창업자는 오픈 큐레이팅을 통해 “버려지는 쓰레기나 폐자재를 이용한 디자인에 대한 자신들의 디자인 아이디어”를 전시로 펼쳐놓을 수 있었다고 한다. 두 사람이 큐레이팅을 맡은 DDP 오픈 큐레이팅 vol.21 전시 ‘머티리얼 컬렉티브’(Material Collective)는 지난 2월 중순에서 5월 초까지 DDP 갤러리문에서 진행됐다.

뉴탭-22, “‘지속가능한 환경 디자인’ 한국에 소개할 수 있어 기뻐”

‘썸무드디자인’, 스토어 이용에 인지도 높아져

‘메이크메이크’, 해보고픈 디자인 해봐 즐거워

오픈 큐레이팅은 서울디자인재단이 젊은 전시기획자와 디자이너를 발굴하고 소개하기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서울디자인재단이 2015년부터 해마다 다른 주제를 제시해오고 있는데, 제시된 주제는 ‘밤에 여는 미술관’(2016년), ‘디자인의 사회적 역할’(2018년), ‘집과 디자인’(2020년) 등 다양하다. 제시된 주제에 관심을 가진 청년 디자이너들이 주로 응모하는데, 서울디자인재단은 이들 중 심사를 통해 해마다 2~4개 팀을 선정해왔다. 오픈 큐레이팅은 이런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모두 21차례나 전시를 이어오고 있다.

스튜디오 뉴탭-22는 2021년 주제인 ‘경계를 허무는 디자인’에 응모해 선정됐다. “플라스틱·목재·금속 등 많이 쓰이는 소재의 경계를 깨고 버려지는 소재를 탐구해서 새로운 제품을 만들자”는 두 사람의 제안이 평가받은 것이다.

문지희·최혜인 공동창업자는 이 오픈 큐레이팅 전시를 통해 우리 생활 속에서 버려진 재료, 자연 재료, 그리고 새로운 재료를 탐험해 예술과 디자인으로 승화시키는 실험을 진행했다. 전시에는 새로운 소재와 재료를 탐구하는 각기 다른 분야의 공예가, 제품·건축디자이너, 미디어 아티스트 등 다섯 팀이 참여했다. 두 공동창업자도 버려지는 조개껍데기로 만든 작품을 전시에 선보였다.

사실 두 사람의 조개껍데기 작품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2017년 영국 왕립예술대학원 석사과정 신입생으로 만난 두 사람은 2019년 졸업 뒤 ‘밀라노 디자인 페어’나 ‘더치 디자인 페어’에 함께 초청될 정도로 인지도를 쌓았다.

하지만 2020년 귀국해보니 국내 상황은 달랐다고 한다. 무엇보다 버려지는 물품을 이용해 예술작품을 만든다는 개념이 아직 확산돼 있지 않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DDP 오픈 큐레이팅 전시를 하면서, ‘지속가능한 환경에 대한 디자인’을 한국에 소개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더 나아가 “오픈 큐레이팅 전시가 일반인의 접근성이 좋은 DDP에서 진행되다보니 시민들도 많이 찾아주시는 등 큰 홍보가 됐다”고 평가한다.

서울디자인재단은 ‘디자인스토어’ ‘오픈큐레이팅’과 함께 ‘DDP 디자인 페어’도 젊은 디자이너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설명한다.

2019년 시작한 DDP 디자인 페어는 국내 유일한 아시아 대표 온·오프라인 디자인 비즈니스 론칭쇼다. 일반적으로 페어 혹은 박람회라고 하면 기존 제품의 판로 개척을 중요시하지만, DDP 디자인 페어는 세상에 없던 새로운 디자인 제품을 선보이는 게 주 임무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DDP 디자인 페어는 청년 디자이너와 소상공인을 만나게 해주고 이 그룹이 새로운 디자인 제품을 제작하도록 개발단계에서부터 지원한다. 디자이너의 디자인 ‘가능성’이 소상공인의 제조기술을 통해 ‘현실’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2021년과 2020년 DDP 디자인 페어에서 연속해서 ‘베스트디자인어워드 서울시장상’을 받은 신봉건 메이크메이크 대표는 “그동안 주문을 받아서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해보고 싶은 디자인을 해보고 싶다는 바람이 컸다”며 “이런 바람이 DDP 디자인 페어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국내 유일한 아시아 대표 온·오프라인 디자인 비즈니스 론칭쇼인 ‘DDP 디자인 페어’에 출품된 신봉건 디자이너의 조명기구. ‘베스트디자인어워드 서울시장상’을 받은 이 작품은 신 디자이너와 조명제작업체인 황덕기술단(대표 김희규)의 협업으로 만들어졌다. 서울디자인재단 제공

신 디자이너는 DDP 디자인 페어에 선정된 뒤 자신이 구상한 조명 디자인을 조명제작·수입업체인 황덕기술단(대표 김희규)이 구현해내는 방식으로 테이블 조명기구를 개발했다. 서울시장상을 받은 이 조명기구는 신봉건 디자이너의 감각적인 디자인 작업에, 세계적 조명 회사들과 여러 차례 작업을 진행한 황덕기술단의 경험이 어우러져 시너지를 낸 대표적인 케이스로 꼽힌다.

그러나 신 디자이너가 DDP 디자인 페어에서 얻은 것은 멋진 제품을 만들었다는 뿌듯함뿐만이 아니다. 그는 “최근 디자인 업무 협의차 만난 한 업체가 ‘디자인 페어 수상 작가 아니냐’고 먼저 알아봐줘 반가웠다”며 주변의 변화된 시선을 경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디자인재단은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성과’에 머물지 않고 청년 디자이너를 위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꾸준히 준비중이다. 우선 올해는 ‘서울라이트 신진작가 발굴사업’을 준비 중이다. 이 사업은 차세대 신진 ‘미디어 아티스트’의 작품을 찾아내 전시 기회를 제공하는 등 미디어 아티스트들의 성장 플랫폼 역할을 하는 것이 목표다.

세계 최대 3차원 비정형 건축물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전경. 서울디자인재단은 DDP의 모든 기능을 활용해 청년 디자이너 육성·지원에 나서고 있다. 서울디자인재단 제공

첫해인 올해는 하반기에 ‘디자인+기술’을 주제로 2023년에 DDP에서 작품전시를 진행할 작가 다섯 팀을 공모로 선정할 예정이다. 올해는 ‘프로젝션 맵핑과 음향’ 부문 3개팀과 ‘투명 OLED 기반 3D 그래픽아트·디자인’ 2개 팀을 선정할 계획인데 선정된 작가에게는 작품 제작 지원과 함께 DDP 내 상설 미디어 전시공간에서 전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또 선정자는 해마다 12월에 DDP 외벽 전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대형 영상쇼 ‘서울라이트’의 작가 후보군으로도 등록된다.

청년 디자이너가 변해나가듯 서울디자인재단의 청년 디자이너 지원 프로그램도 이렇게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해가고 있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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