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강서구 가양동 주민, 공모사업 통해 ‘강서역사문화거리’ 만들어

겸재 흔적 깃든 미술관·소악루에서 역사상 첫 여성 ‘교장’ 양천향교까지…강서구는 들머리에 상징 조형물 설치

등록 : 2022-01-13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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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구가 지난해 12월 양천로47길 일대에 걷고 싶은 ‘강서역사문화거리’를 만들었다. 1 궁산 둘레길 입구에 있는 궁산땅굴 내부 모습.

일제 만든 땅굴에서 한 역사 교육

할머니 산신이 돌보는 ‘안심마을’

가양동 궁산 일대, 역사유적 보고

“마곡지구와 연계해서 발전시킬 것”

강서구 양천로47길 일대에 걷고 싶은 ‘강서역사문화거리’가 생겼다. 구는 지난해 12월 양천로47길 들머리에 있는 어울림공원에 강서역사문화거리를 상징하는 조형물, 역사문화 유적지를 소개하는 안내판을 설치했다. 강서역사문화거리는 가양1동 주민들이 지역에 있는 문화유산을 제대로 가꾸고 보존하기 위해 서울시 공모사업을 신청해 만든 것이다. 5일 마을 주민과 함께 강서역사문화거리를 둘러봤다.

강서역사문화거리 들머리에 세워진 조형물.

강서역사문화거리를 따라가면 궁산과 궁산 주변에 있는 소악루, 성황사, 양천고성지, 궁산땅굴, 겸재정선미술관, 양천향교, 하마비 등을 둘러볼 수 있다. 가양동 궁산 일대는 조선시대 양천현의 현아와 향교가 있을 만큼 행정의 중심지여서인지 역사·문화 유산이 곳곳에 있다.


겸재정선미술관 모습.

어울림공원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게 겸재정선미술관이다. 이곳은 진경산수화풍을 완성한 겸재를 기리고 ‘진경 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2009년 개관한 공립미술관이다. 겸재는 1740~1745년 지금의 강서구 일대인 양천현 현령을 지내면서 <양천팔경첩> <경교명승첩> <연강임술첩> 등 뛰어난 걸작을 남겼다. 겸재정선미술관에 가면 <동작진도>를 비롯해 <야객기려도> <한림독조도> 등 겸재의 향기가 묻어나는 많은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겸재정선미술관 후문을 나오면 바로 앞에 서울 도심에서 보기 힘든 땅굴 입구가 보이는데, 그 속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하게 만든다. 일제강점기인 태평양전쟁 당시 만들어진 궁산땅굴인데, 높이 2.7m, 폭 2.2m, 연장길이가 68m이다. 일제가 궁산땅굴에 무기와 탄약 등 군사물자를 저장하거나 당시 일본군 군용비행장이었던 김포비행장(김포공항)을 감시하고, 연합군의 공습 때는 부대 본부로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일제는 궁산땅굴을 만들기 위해 인근 지역 주민을 강제동원했다. 지하 전시관에서 땅굴 모습을 볼 수는 있으나, 낙석 위험으로 땅굴 안쪽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궁산땅굴을 나와 위로 조금만 걸어가면 궁산으로 오르는 둘레길이 나오는데, 중간쯤 소악루가 있다. 이곳에서는 시원하게 펼쳐진 한강과 맞은편 덕양산, 안산, 북한산까지 훤히 보인다. 겸재가 자주 소악루에 올라 산수를 담은 그림을 그린 곳으로 유명하다.

소악루는 1737년(영조 13년) 동복현감을 지낸 이유가 경관과 풍류를 즐기기 위해 가양동 궁산 기슭에 만든 누각이다. 소악루란 이름은 중국 동정호에 있는 악양루를 본떠 ‘작은 악양루’라는 의미로 붙여졌다. 소악루에서 바라보는 한강변 경치가 동정호의 절경에 견줄 만큼 뛰어나서인지 문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애초 건물은 불에 타 없어지고, 대신 강서구가 1994년 한강변을 조망하기 좋은 곳에 새로 소악루를 만들었다.

소악루를 지나 조금 걸어 올라가면 할머니 산신을 모신 성황사가 나온다. 윤두권 가양1동 주민자치회장은 “가양동이 큰 사건과 사고가 없는 ‘안심마을’인 이유가 성황사 할머니 산신 덕분”이라며 “월남전에 참전한 가양동 출신 병사 중에서 죽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했다. 산 반대쪽에는 할아버지 산신을 모시는 사당도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다.

강서구 가양1동 궁산 정상부에 있는 옛 양천고성지 터 모습.

성황사를 뒤로하고 궁산(74m) 정상부에 오르면, 옛 성터의 흔적이 남아 있는 양천고성지가 있다. 백제 22대 문주왕이 옹진(충남 공주)으로 천도하기 전인 475년 강 건너편 고구려군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쌓은 성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발굴 조사를 멈춰 아직 양천고성지의 명확한 성격은 규명되지 않았다. 궁산은 임진왜란 때 의병들의 집결지로, 권율 장군이 잠시 주둔하다 한강을 건너 행주산성에서 행주대첩의 승리를 거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서울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향교인 양천향교.

궁산을 내려오면 서울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양천향교가 보이는데, 서울시 기념물이다. 서울에 향교가 왜 있을까 머리를 갸웃하게 한다. 조선시대에는 한양에 성균관, 지방에 향교가 있었다. 세월이 흘러 옛 양천현이었던 강서구 일대가 서울시로 편입되면서 자연스럽게 서울에서 유일한 향교가 됐다. 양천향교의 특별한 점은 또 있는데, 2022년부터 여성인 안순복씨가 전교(교장)를 맡았다. 600년 향교 역사상 첫 여성 전교다.

양천향교는 1411년(태종 12년) 만들어진 것을 1981년 전면 복원했다. 양천향교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고 정문인 외삼문을 들어서면 교실인 명륜당, 그 아래 좌우로 유생들의 숙소인 동재와 서재가 있다. 명륜당 뒤쪽으로 돌아가면 내삼문이 있는데, 이곳을 지나면 가장 깊숙하고 높은 곳에 공자와 성인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이 있다. 양천향교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오성, 주희를 비롯한 송조사현, 최치원을 비롯한 우리나라 십팔현 등 모두 27명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양천향교는 옛 선비 정신을 되살려 예절교육, 다도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염종국 강서구 도시디자인과 도시디자인팀장은 “주민들의 노력으로 강서역사문화거리를 만든 만큼 바로 길 건너편에 있는 마곡지구의 서울식물원, 궁산과 궁산 주변 문화유적 시설을 연계해 강서구 대표 문화 관광지로 만들어가겠다”고 했다.

글·사진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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