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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세 그릇 먹었습니다”…3천원 김치찌개, 4년간 5만 청년 이용

이문수 신부가 운영하는 성북구 정릉동 청년밥상 ‘문간’ 운영 4주년 맞아

등록 : 2021-12-30 16:22 수정 : 2021-12-31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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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구 정릉동에 있는 청년밥상 ‘문간'은 누구든 3천원짜리 김치찌개로 부담 없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식당이다. 2017년 12월 문을 연 뒤 4년 동안 5만 명 이상의 청년이 다녀갔다. 식당 입구 왼쪽 벽에 붙어 있는 300여 개의 포스트잇. 감사 인사, 응원 글 등 내용이 다양하다.

든든한 한 끼와 쉴 수 있는 공간 제공

‘유퀴즈’ 방송 뒤 관심·후원 크게 늘어

신촌 2호점 열고, 내년 대학로점 계획

“숫자보다 지속가능한 운영이 더 중요”

문간 식당에서 손님들이 식사하는 모습.

“신부님, 죄송합니다. 또 세 그릇 먹었습니다.”

“ㅎㅎ 듣던 중 행복한 이야기입니다.”


“신부님, 오늘은 한 그릇‘만’ 먹었습니다!”

“왜요? 많이 드시지….”

청년밥상 ‘문간’ 식당 문 왼쪽 벽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의 글귀에 식당지기 이문수 신부(글라렛선교수도회)가 댓글을 달았다. 색색깔의 포스트잇 300여 개가 빼곡하게 벽을 뒤덮고 있다. 감사 인사뿐만 아니라 서로를 응원하는 말, 이루고 싶은 꿈, 자신과의 약속 등 글귀 내용도 다양하다.

문간은 청년들이 주머니가 가벼워도 걱정 없이 찾아와 든든한 한 끼를 먹으며 편히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4년 전 이맘때 성북구 정릉시장의 2층짜리 건물 위층에 자리 잡았다. 그동안 청년 5만 명 정도가 찾았다. 메뉴는 김치찌개 딱 하나만 있고 바깥에 간판은 따로 걸지 않았다. 주위 가게들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한 마음에서다.

이 신부는 식당 운영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돈보다 마음이 모여서’라고 한다. 기부하겠다며 돼지저금통을 들고 온 꼬마 손님, 손님들의 밥값을 모두 계산하고 떠난 50대 손님, 응원하러 지방에서 와준 손님들을 마주했다. 청년들은 처음엔 “어떻게 모르는 사람들의 밥값을 대신 내줄 수 있을까요”라고 의아해했다. 이제는 “전 직장도 다니니 조금 더 내도 될 것 같아요”라며 더 많은 금액을 식사비로 내고 가는 청년도 많아졌다.

문간 입구 오른쪽 벽엔 문간 설립 취지문 액자가 걸려 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들어서면 오른쪽엔 식당, 왼쪽은 북카페이다. 한 층 더 옥상으로 올라가면 정릉천과 북한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신부가 청년들에게 선사하고 싶은 정경이다. 올해는 조경 전문회사 후원으로 옥상이 루프톱 공간으로 꾸며졌다. 얼마 전 핼러윈 이벤트도 열었다.

이 신부는 매일 아침 ‘제게 도움이 필요한 청년들을 보내주세요’라고 기도한다. 힘든 청년들의 손을 잡고 일으켜 걸을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서다. 점점 더 많은 청년이 그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밥을 대접하고, 만약 경제적인 요인이 클 경우 문간에서 일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3. 올해 한 조경회사의 후원으로 옥상을 루프톱 공간으로 꾸몄다. 4·5. 지난 6월 이화여대 인근에 문을 연 2호점.

문간은 지난해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 이 신부는 문간의 지점을 더 내야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더 많은 청년이 멀리 걸음 하지 않고도 밥 한 끼 먹을 수 있게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조합원 신부들, 운영위원들과 공식적인 결론을 내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3월에 방향을 결정하고 연초에 들어왔던 ‘신촌에 있는 공간 무상 제공 제안’(성안나재단)을 검토해보기로 했다. 절묘한 타이밍에 예능프로그램 <유퀴즈온더블럭> 출연 제안이 들어왔다. 4월에 이 신부가 방송에 나갔다. 관심과 후원이 크게 늘었다. 6월에 이화여대 인근에 2호점을 냈다.

2호점은 1호점보다 전체 손님은 적지만 이용자의 90% 이상이 청년이라는 점이 고무적이다. 사실 여대생들이 김치찌개 식당을 잘 찾을까 고민이 많았다. 그는 “역시 필요한 청년들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며 “청년들이 잘 이용해줘 다행이다”라고 했다. 내년엔 종로구 대학로에 3호점을 낼 계획이다. 대학로는 청년예술인이 많은 곳이며 청년 문화공간으로 상징성이 있는 지역이다.

문간의 대차대조표는 늘 적자 상태다. 주방장, 아르바이트생 등 월 300만원 정도 인건비가 든다. 이 신부는 청년을 위한 식당의 적자는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건비를 줄여 적자를 메우려 하지 않는다. 이 신부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수도권에 150개의 문간을 만들겠다”고 말하고 있다. 도움받을 수 있는 청년이 늘 거라는 기대에서다. 그는 “자기 다짐이자 주변에 도와달라는 목소리이기도 하다”고 했다.

문간의 확장을 위해선 일정 정도의 규모가 돼야 한다는 전문가들 조언이 있다. 기업의 사회공헌활동과 연계해보라고 권하기도 한다. 현재 문간의 라면은 지역 기업인 삼양식품이 후원한다. 쌀과 김치 후원은 고정적이지 않다. 이 신부는 “카카오와의 협업, 씨제이 스팸 후원 등을 기다리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숫자만큼이나 운영의 지속성도 중요하다. 누군가가 빠지더라도 운영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체계를 갖춰가야 한다. 그는 “제가 없으면 (문간 운영이) 안 되는 건 제 잘못”이라며 “저의 그림자를 지우고 싶다”고 했다. 장기적으로 청년들이 직접 문간을 운영하길 이 신부는 기대한다. 청년들이 운영 주체가 되는 것이다.

문간은 전문가 조언을 얻어 레시피를 만들어 시스템화하는 것 등을 구상하고 준비하고 있다. 현재 2호점에선 주방장, 아르바이트 청년 2명, 자원봉사자가 일한다. 주방장이 점장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청년들에게 양질의 아르바이트 자리를 제공하는 것도 문간의 모토”라며 “요리사를 꿈꾸는 청년들이 경험할 수 있는 괜찮은 아르바이트 자리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청년밥상 ‘문간'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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