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등수 경쟁’ 아닌 ‘협력 형태’ 수업…수포자 아이도 해결 능력 높아져”

10년차 맞은 서울형 혁신학교 현장, “교사-학생 수평적 관계가 혁신교육의 장점 서서히 높여”

등록 : 2021-11-25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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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오전 노원구 수락중학교 2학년 수학 시간, 두 학생이 머리를 맞댄 채 수학 풀이 과정을 나누고 있다. 학생들은 ‘남에게 설명할 수 있을 때 내 실력도 향상한다’는 기본 인식을 공유한다. 자연스레 경쟁 너머 공존을 배운다.

“친구 좋아 수학 재밌다”는 수락중 수업

선생님 설명 뒤 모둠 만들어 함께 풀어

북서울중학교, “교사와 아이는 ‘도반’”

학부모 참관 높여 신뢰 관계 만들어

‘학생 자기주도 능력’ 기르는 혁신학교

2011년 23개→2020년 226개로 늘어

민주적 관계 형성·경험, 학생에 큰 도움


“유대관계 강한 아이, 학업 능력도 향상”

수락중학교 수학 수업 시간

“예, 수학 시간 재밌어요. 우리 반 애들이 되게 좋거든요. 착하고 따뜻하고…. 제 생각에는요, 우리 반이랑 우리 학교가 좀 ‘최고’ 같아요.(웃음)”

‘수학 수업이 좋은가?’ 질문에 노원구 수락중학교 2학년 김서연(14)양이 눈을 빛내며 답했다. 수학이 좋은 이유가 문제가 잘 풀려서도 아니고 점수가 잘 나와서도 아니었다. 김양이 꼽은 이유인 ‘친구들이 좋아서’를 들으면 고개를 갸웃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게 가능한 일일까? 하지만 이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을 잠깐이라도 참관한다면 “아하~” 하고 무릎을 칠 것이다.

초중고 전면등교 첫날인 지난 22일 월요일 오전 수락중 2학년 1반 3교시 수학 수업을 참관했다. 선생님이 약 15분 동안 도형의 개념을 설명했다. “자, 풀어보자!” 운을 떼자 아이들이 벌떡 일어나 서너 명씩 모여들었다. 교실이 단박에 시끌벅적해졌다.

이는 수락중이 수학 교실에 도입한 ‘모둠 협력 수업’의 모습이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엔 책상도 붙여 앉았다. 아이들은 머리를 가까이 맞댔고, 문제지 위에선 샤프펜슬이 쉼 없이 교차했다. 모임에서는 친구가 친구에게 설명해준다. 친구 설명을 재차 듣던 이유나(14)양에게 다가가 물었다. 복잡한가? “아니요. 재밌어요. 이게 저 혼자가 아니라 같이 해결하니까 그런가봐요.” 이양이 답했다.

수락중은 2012년 ‘서울형 혁신학교’로 지정된 뒤 이런 공개수업을 자주 했다. 혁신학교 운영 특성상 교사들은 참관으로 수업을 공유하고 연구모임 역시 활발히 진행해왔다. 물론 이는 교사들에게도 만만찮은 시도였다. 정혜진(42) 교사가 말했다. “하지만 중요하죠. 아이들 배움의 순간이 어떤 상호작용 속에서 어느 순간에 일어나는지 관찰하고 논하는 것이 수업연구회 주제거든요.”

정 교사가 말을 이었다. “더구나 수학은 ‘수포자’란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아이가 따분해해요. 이에 고민을 많이 하는데, 해결방법 가운데 하나가 ‘배움의 공동체 수업’이었어요. 등수 경쟁이 아니라 협력 과목으로 인식을 시키는 거죠. 아이들에게 먼저 좋은 관계를 만들자고 합니다. 수학적 사고의 힘은 소통하고 설명할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고.”

“통계 낼 수 없는” 즐거운 기억의 힘

이처럼 서울형 혁신학교란 학생의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을 기르기 위해 기존의 일방식 지식 제공 교육과정에서 벗어나 운영하는 공교육 학교를 말한다. 서울시교육청에서 2010년 11월 서울형 혁신학교 지정·운영 계획을 발표하며 ‘학생·교원·학부모·지역사회가 서로 소통하고 참여하며 협력하는 교육 문화 공동체로서 배움과 돌봄의 책임교육을 실현하고 전인교육을 추구하는 학교’라고 정의한 바 있다.

혁신학교는 운영 첫해인 2011년 초에 기존학교와 신설학교를 대상으로 23개 학교가 서울형 혁신학교로 지정됐으며 지난해에는 226개로 늘어났다. 그동안 논란과 부침이 있었지만, 운영 10년차를 맞은 올해 각 혁신학교 현장에선 “교사와 학생의 수평적 관계가 부른 긍정적 작용 등 혁신교육의 장점을 서서히 체감한다”고 입을 모았다.

2011년 서울형 혁신학교로 지정돼 올해 10년차를 맞은 북서울중학교도 마찬가지다. 북서울중은 2014년 ‘수업연구회’를 도입해 학부모들이 직접 자녀 담당 교과와 다른 수업까지 볼 수 있도록 하고, 연구회 참여를 희망하면 수업의 장단점과 개선방안을 교사와 논의하는 등 ‘교사-학생-학부모’ 사이 신뢰를 만들어가고 있다.

북서울중에서 사회 과목을 가르치는 이수영(51) 교사는 “그동안 교사와 아이가 ‘도반’처럼 동반자 관계가 됐다. 아이들은 자신을 위해 노력을 쏟는 ‘괜찮은 어른’들을 보고 사회화한다. 교사들은 아이들 순수함에서 배운다. 협력에서 배움의 본질이 드러난다”고 운을 뗐다.

이 교사는 “사회 과목 교과서에선 인간의 기본적 상호작용으로 ‘경쟁’을 꼽는데, 현실에선 인간이 ‘공동체’를 만들어 생존했다. 이를 혁신학교 교육이 보여준다. 교사와 아이들, 학부모가 연결하며 만든 크고 작은 공동체는 서로 얼굴을 자주 보게 한다. 자연스레 서로 민주적인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혁신학교의 장점이었다”고 요약했다.

종합하면, 혁신학교의 최종 목표는 결국 ‘학교에 갔더니 나를 믿고 지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경험으로 사회적 신뢰를 굳게 심어주는 일에 있었다는 것이다. 최정수(41) 수락중 교사는 “이것이 사실 모든 교육의 본질이자 기본학력 교육의 존재 이유 아니겠는가. 아이들을 정서적으로 지원하며 ‘내가 학교의 소중한 존재’임을 깨치게 하면, 인생에서 힘든 일이 닥쳐도 아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자기 길을 간다. 단기간 학업 성적을 끌어올리는 건 쉽지 않지만, 유대관계가 강한 아이들은 결국 학업 능력도 스스로 향상한다”고 설명했다.

“학력 논쟁…더 치열한 토론장 필요할 것”

한편 ‘혁신학교는 아이들 학력이 떨어진다’는 대표적 오해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이다. 교육부가 내놓은 2016년 고교 학업성취도 평가 자료가 구체적 발단이 됐다. 당시 기초학력 미달 평가를 받은 혁신고교 학생 비율이 전체 고교 평균보다 높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에 김찬기 서울시교육청 장학관은 “혁신학교를 보는 시각은 너무나 다양하다. 하지만 전통적인 학력프레임이나 투입 대비 산출이라는 경제적 프레임으로 혁신학교를 평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학교와 교실의 경험’은 계량적 데이터로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내년부터 혁신학교의 새로운 10년을 준비하며 혁신학교의 긍정성을 발전 시켜 나가려 노력 중이다. 특히 학력 논쟁에 대해 학교 안팎으로 더 치열한 토론장이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글·사진 전유안 기자 fingerwhal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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