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엄마 유품 우산’ 수리 때 큰 보람 느꼈죠”

취약계층 자활과 자원 재활용 ‘두 마리 토끼’ 잡는 서초구 우산수리센터

등록 : 2021-11-18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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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고씨가 5일 서초구 양재동 우산수리센터에서 손님이 맡긴 우산을 수리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2003년 전국 최초 운영, 15만 개 수리

의미 있는 우산 고쳐줬을 때 가장 뿌듯

“잘 펴서 말린 뒤 보관해야 오래 사용”

취약계층에 일자리 제공 기능도 갖춰

“우산이 조금 망가졌는데 버리기에는 아까웠죠. 혹시 우산 수리하는 곳이 없나 알아봤더니, 서초구 우산수리센터에서 무료로 수리해준다고 해서 가지고 왔어요.”

안혜영(38)씨는 5일 우산 3개를 들고 서초구 양재동 양재종합사회복지관 지하 1층에 있는 우산수리센터를 찾아왔다. 두 개는 우산 살대가 망가졌고, 하나는 손잡이 끝끈이 떨어졌다. 안씨는 “지금까지는 우산 수리해주는 데가 있는 줄 모르고 조금만 망가져도 버렸다”며 “기분 좋게 사용하려고 산 것이라서 고쳐서 다시 쓸 수 있을 것 같아 가지고 왔다”고 했다.

안씨가 망가진 우산을 우산수리센터 직원에게 맡기자, 우산 수리 전문가인 윤진고씨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윤씨는 안씨에게 “조금만 기다리라”고 한 뒤 우산 3개를 뚝딱 수리했다. 윤씨가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우산을 수리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우산 수리 맥가이버’라며 감탄했다. 윤씨는 “쉬운 건 금방 고치고 어려운 건 5~10분 정도 걸린다”며 웃었다. “다 됐습니다. 가지고 가서 잘 쓰세요.” 윤씨의 말에 우산을 맡겼던 안씨가 “고맙다”고 인사하고 우산수리센터를 떠났다.


서초구는 2003년부터 전국 최초로 우산수리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산 15만 개를 수리했는데, 월평균 700여 개에 달한다. 지난해 여름 장마철에는 코로나19확산으로 운영시간을 줄였는데도 한 달 동안 1천 개 넘는 우산을 수리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장마철에는 한 사람이 보통 서너 개씩 우산 수리를 맡깁니다. 쉴새없이 100개 정도 수리하면 지쳐요.” 2009년부터 12년째 우산수리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윤씨는 “여름 장마철과 겨울에 눈이 오면 제일 바쁘다”고 했다.

“부품만 있으면 얼마든지 수리할 수 있지만, 부품이 없으면 수리하기 어려워요.” 윤씨는 수리를 부탁하는 우산 종류가 다양하다고 했다. 다행히 같은 종류의 폐우산이 있으면 간단하게 부품을 떼어 교환하면 된다. 하지만 우산 종류가 워낙 많아서 수리해야할 부분에 딱 맞는 부품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때는 직접 부품을 만들어서 수리하는 경우가 많다.

우산수리센터는 버리는 우산을 기증받아서 부품을 조달하고 있다. 윤씨는 동 주민센터마다 돌아가며 출장 수리도 하는데, 그럴 때 버리는 우산을 기증받아 온다. 요즘은 구민들이 동 주민센터 폐우산 수거함에 기증할 우산을 필요할 때마다 가져온다.

최근에는 광주광역시에 있는 광주공유센터와 협약을 맺어 폐우산 300개를 기증받았다. 광주공유센터는 폐우산 천만 활용하고 나머지 살대는 우산수리센터로 보내왔다. 윤씨는 “고쳐 쓸 수 있는 우산은 이곳에서 고치고 그렇지 않으면 기증해달라”고 당부했다.

“우산을 수리하는 것 자체는 힘들지 않지만, 수리를 맡긴 손님한테 항의받을 때가 제일 힘듭니다.” 윤씨는 “우산 수리를 제때 못해주면 ‘왜 못 고치느냐’고 언짢아하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는 더러 손님한테 거친 욕설도 들었다”며 “하지만 우산을 고쳐주면 대부분 고맙다는 말을 건네는데 그때가 가장 기분이 좋다”고 했다.

“엄마 유품이라며 천이 찢어진 우산을 수리해달라고 갖고 온 경우도 있어요. 똑같은 우산을 사와서 천만 떼어서 갈아준 적이 있죠. 너무 감사하다며 큰절하고 갔어요.”

우산 수리 보조 일을 하는 김민서씨는 “한 손님은 우산 하나를 가지고 와서 엄마손때가 묻은 유품인데 꼭 좀 고쳐달라고 사정했다”며 “부품이 없어 크기가 같은 우산을 구해서 수리해준 기억이 있다”고 했다. 김씨는 또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서 샀다는 우산을 고쳐달라고 가져오기도 했다”며 “의미 있는 우산을 고쳐주고 고맙다는 말을 들을 때 기분도 좋고 보람도 느낀다”고 했다.

“비 온 뒤 밖에 나가보면 버린 비닐우산이 많아요. 한 번 쓰고 버리는데 비닐이 환경을 오염시키잖아요.” 윤씨는 “비닐우산은 한 번 사용하고 버리는 것으로 인식돼 있다”며 “아무리 싼 우산이라도 꼭 챙기거나 아니면 환경을 위해서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 게 좋다”고 했다.

“우산은 한 번 사용하고 나면 그늘진 데서 잘 펴 말린 뒤 보관해야 합니다. 그러지않으면 우산 천에서 냄새가 나거나 살대가 녹스는 경우가 많죠.” 윤씨는 “우산 관리를 잘하면 오래가는데, 관리를 못하면 오래 못간다”며 “우산을 오래 사용하려면 꼭 말려서 사용하라”고 당부했다.

서초구 자활사업으로 시작한 우산수리센터는 근로 능력이 있으나 취업이 어려운 사회적 취약계층에 일자리를 제공해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는데, 윤씨를 비롯해 6명의 직원이 함께 근무한다. 또한 자원을 재활용해 환경을 살리는 데도 한몫한다. 임현정 서초구 사회복지과장은 “우산수리센터가 자원 재활용뿐만 아니라 저소득 주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자활효도사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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