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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수리해 취약계층 임대’ 보람 커요”

‘어려운 이웃 위한 빈집의 변신’ 주도하는 정춘모 약수공가협동조합 이사장

등록 : 2021-04-15 16:01 수정 : 2021-04-19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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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목회활동 해온 ‘마당발 목사’

2018년 주민협의체 만들어 공가 수리

수익금은 청소년에 장학금으로 지급

“앞으로 중구 전체로 사업 확대해갈 것”

정춘모 약수공가협동조합 이사장이 7일 자신이 담임목사로 있는 중구 약수동 성신은혜교회 앞에서 공가협동조합의 운영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마을을 다니다 보니 비어 있는 집들이 보이더라고요. 집주인한테 장학금 주는 데 사용하겠다고 빌려달라고 했더니, 자기도 ‘학생들에게 장학금 주는 게 평생소원’이라며 선뜻 집을 빌려줬습니다.”

정춘모(73) 약수공가협동조합 이사장은 2018년부터 노후 주택 400여 가구가 모인 중구 약수동 동호터널 위쪽 비탈 일대에서 오랫동안 방치된 빈집을 수리해 취약계층에게 임대하는 사업을 꾸준히 펼치고 있다. 정 이사장은 7일 “취약계층 주거 문제를 해결해서 좋고, 주변 환경도 깨끗해지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도 도울 수 있어 일석삼조”라며 흐뭇해했다.

언제부터인지 하나둘 늘어나는 빈집은 동네 주민들의 골칫거리였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 늘어나면서 주변 환경도 따라서 안 좋게 바뀌더라고요. 이를 지켜보던 빈집 주인들과 주민이 문제 해결을 위해 2018년 주민협의체를 구성했습니다.”


정 이사장은 빈집 주인들과 만나 낡은 빈집을 수리해주는 대신 5년간 무상으로 빈집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정 이사장과 주민들은 수리를 마친 빈집을 주거 취약계층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임대(월세)하는 약수보금자리 임대주택사업을 시작했다. 월 임대료로 23만원을 받는데, 이는 주거 취약계층이 지자체에서 받는 주거 복지 비용이다.

하지만 한국해비타트와 빈집을 수리해 취약계층에게 임대한 임대료로 장학금 사업을 하겠다는 계획이 차질을 빚자 방향을 조금 바꾸었다. 정 이사장은 “2018년 주민협의체와 한국해비타트가 함께 사업을 진행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한국해비타트와 협의해 약수공가협동조합이 약수보금자리 임대주택사업을 이어받았다”고 했다.

정 이사장은 2019년 5월 주민 15명과 함께 공동으로 출자금을 모아 약수공가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약수공가협동조합은 지금까지 총 9곳의 빈집을 수리해 8곳을 취약계층에게 임대했다. 현재 3곳도 수리가 끝나는 대로 입주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이렇게 직접 협동조합을 만들어 공가 임대사업을 하지만 여전히 어려움이 많다. 우선 집주인이 빈집을 사용하도록 허락하더라도 수리비를 마련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수리비가 700만~800만원 정도 들어갑니다. 한꺼번에 낼 돈이 없어서 매달 받는 임대료에서 10만원씩 떼어 할부로 내고 있죠.” 이렇게 하면 매달 10만원씩 1년이면 120만원, 6년이 지나야 집수리 비용 700만원을 해결할 수 있다.

정 이사장은 “정작 빈집을 수리해 임대한 수익금으로 장학금을 적립하는 것은 무척 힘들다”고 했다. 정 이사장은 이런 문제도 곧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약수공가협동조합은 2021년 행정안전부 지정 마을기업으로 선정됐다. 마을기업은 지역 주민이나 단체가 지역 자원을 활용해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하며 소득과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운영하는 기업이다. 마을기업이 되면 국가와 지자체로부터 컨설팅, 판로 지원, 홍보 등에 필요한 사업비를 지원받는다.

게다가 올해는 일반 협동조합 형태를 사회적협동조합 형태로 전환할 계획이다. 이미 지난해 11월 보건복지부에 사회적협동조합 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이렇게 되면 비영리법인이 돼 기부단체로 지정받아 주택 수리 비용에 필요한 재원을 기부금으로 확보할 수 있다. 정 이사장은 “그동안 일반 협동조합이라서 기부금을 받을 수 없었는데, 사회적협동조합으로 바뀌면 기부금을 받아 집수리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게 돼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약수공가협동조합이 사회적협동조합이 되면 기존 700만~800만원씩 들던 집수리 자체 비용도 후원금 등으로 충당해 400만~500만원으로 대폭 낮출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케이에이치(KH)하우징, 중구마방협동조합 등 집수리하는 마을기업들과 협업해 비용을 더 낮출 수 있다고 했다. 정 이사장은 “사회적협동조합이 되면 절반 가까이 집수리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며 “그만큼 장학금 적립액을 더 늘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여기에 중구도 힘을 보태고 있다. 구는 지난달 18일 약수공가협동조합과 협약을 맺은 뒤 사업에 대한 지속적인 컨설팅, 서울시 공모사업 신청, 전문 주민 인력 양성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정 이사장은 이 지역에서 ‘마당발 목사’로 통한다. 성신은혜교회 담임목사이기도 한 정 이사장은 20여 년 전부터 이곳에서 교회를 열어 목회활동을 하고 있다. 그만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다르다.

“방치됐던 빈집이 어려운 이웃을 위한 따뜻한 주거 공간으로 바뀐 것에 보람을 느끼죠. 앞으로 중구 전역에서 빈집을 활용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정 이사장은 “지역 주거 환경 개선뿐만 아니라 홀몸노인 돌봄 사업이나 동네 인적 자원을 활용한 주민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사업 범위를 넓혀갈 계획”이라고 했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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