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코로나 시대 여성 노동자, ‘재택 노동 가이드라인’ 필요해요”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코로나19 이후 여성 재택근무·가사·돌봄노동 실태 조사·분석

등록 : 2021-04-08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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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해고·실업 불안감 높아지고

임금 감소 등 고용형태 변화 경험 늘어

96%가 재택 중 가사노동 증가 경험

“긴급 돌봄 확대·재택 인식 개선 필요”

코로나 시대,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발표한 ‘성평등 생활사전 재택노동 편’에 따르면 여성 노동자들은 재택노동에 가장 부정적인 점으로 ‘가사·돌봄에 대한 부담 증가’(27.7%)를 꼽았으며, 재택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돌봄 서비스 확대’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의무 휴직으로 반년 쉬었다가, 다시 복직과 휴직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부부가 동시에 재택근무를 할 때 6살·4살 아이 돌봄이 제게 자연스레 쏠렸어요. 코로나19로 아이들 유아원 일정 맞추면서 재택근무 하는 일이 보통 일은 아니었지요. 결국 올해부터 추가 가계 지출로 육아 도우미 선생님을 부르고 있어요.”(김아무개씨·34·항공사 승무원)

“공연 행사가 대폭 줄어든 지난해 말부터 일감이 ‘제로’라고 보시면 됩니다. 비슷한 업종에 계신 분들은 거의 각자도생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계약 연장 협상 등에서 원치 않는 술자리 등을 강요받는 일이 불편했죠. 지금은 재택근무 하며 라탄공예 등을 틈틈이 배우고(웃음), 겸업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중입니다.”(이아무개씨·42·무대설치 예술가)

코로나19 팬데믹이 노동 환경에도 영향을 미친 지 1년, 서울시여성가족재단(대표이사 백미순)이 지난달 발표한 ‘성평등 생활사전 재택노동 편’ 결과가 주목받고 있다.


재단이 온라인 설문조사(3월8~16일) ‘코로나 시대의 일과 삶, 성평등 생활사전 재택노동 편’을 진행해 무작위 응답자들에게 △재택근무 이유, 재택근무의 긍정적·부정적인 면 △재택 생활 증가에 따른 긍정적·부정적인 면 △코로나 이전과 비교한 돌봄·가사노동 경험 등을 물었다. 그 결과 총 712명의 시민이 참여해 의견을 냈다.

설문 응답자들은 여성이 재택근무를 하게 된 이유로 △코로나19로 인해 직장에서 일괄적(전 직원/순번제 등)으로 재택근무 실시(72.5%) △업무 특성상 코로나 이전부터 실시(11.2%) △임산부·고위험군·자가격리 등 의무적 실시(7.7%)를 차례로 꼽았다.

지난해 5월 코로나19로 ‘첫 재택근무’에 들어갔던 한겨레 독자들의 ‘집 안 근무현장’ 모습.

“개인시간 늘었지만 일·생활 분리 어려워”

재택근무를 하면서 느낀 장점으로 △출퇴근 시간이 줄어 개인시간 증가(18.8%) △화장·옷차림 등 꾸밈노동 감소(18.6%) △코로나19 등 전염병 감염 위험 감소(17.2%) 순으로 응답했다. 응답자 12.4%는 ‘유연한 시간 관리로 일-생활 균형이 가능해졌다’고 답했다.

재택근무 단점으로 △일과 생활공간 분리의 어려움(27.6%)이 가장 높았으며 △업무시간과 휴게시간 관리의 어려움(19.6%) △업무에 집중하기 어려움(18.7%) 순으로 응답했다.

이 밖에 재택근무 장기화로 응답자 중 33.9%가 해고·실업에 대한 불안감을 느꼈다고 답했다. 또한 31.5%가 임금이 줄거나 고용형태가 변화했다고 답했다. 고용형태가 변화했다고 응답한 75명 가운데 67명은 비정규직화됐고, 일부는 사직(2명)하거나 사직권유(1명)를 받았다고 답했다.

코로나19 이후 응답자 96.0%가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났다고 응답했다. ‘집콕’생활의 긍정적인 면으로 △불필요한 인간관계에 대한 스트레스 감소(33.5%) △동거가족과 대면시간이 늘어 친밀감 증가(24.9%) △가사에 관한 관심으로 주거환경 개선(19.0%)을 꼽았다.

반면 부정적인 점으로 △가사·돌봄에 대한 부담 증가(27.7%) △외부·신체활동 축소로 인한 건강 악화(26.5%) △인간관계 단절로 인한 우울감 증가(20.2%) △층간소음, 좁은 집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 증가(19.7%)를 들었다. 응답자 중 46.3%가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돌봄·가사노동 시간이 1시간 미만 증가했다고 답했으며, 1~2시간 증가가 18.5%, 2~3시간 증가가 14.9%, 3시간 이상 증가는 16.3%로 나타났다. 응답자 96%가 가사노동 증가를 경험했다.

코로나19 이후 돌봄·가사노동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으로 △일과 돌봄·가사 병행으로 인한 스트레스 증가(37.2%) △돌봄·가사노동의 필요와 요구 증가(30.9%) △가족 또는 동거인 간 갈등(15.5%)을 차례로 꼽았다.

응답자들은 코로나 시대 일터와 집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돌봄·가사노동 비중이 커지면서 생기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긴급돌봄 등 돌봄서비스 대상과 인력, 시간 확대(151명) △재택노동도 일이라는 인식을 확산하자는 인식 개선 요구(79명) △집에서 일하기 어려운 사람을 위한 코워킹 스페이스 지원(76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 밖에도 코로나로 인한 우울감 등을 치유하기 위한 심리상담 프로그램 등 건강 서비스 지원에 대한 요구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성평등 생활사전 재택노동 편’에 의견을 제안한 712명의 연령대는 30대(41.2%)가 가장 많았고, 40대(32.6%), 20대(12.2%)가 그 뒤를 이었다. 노동형태별로는 임금근로자가 75.0%로 가장 많았고, 프리랜서가 19.9%, 자영업자가 3.7%로 뒤를 이었다.

이번 코로나 시대 여성의 재택노동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설문조사 참여자 중 75.0%가 임금노동자이지만, 재택근무가 장기화하면서 임금이 줄거나 고용형태가 변화했다는 응답이 31.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임금노동 응답자 중 42%가량이 임금 감소 등을 겪은 것이다. 여성 고용안정 지원을 위한 적극적인 대책이 요구되는 지점이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재택노동이 업무와 돌봄·가사노동 병행으로 과도한 노동이 되지 않으려면 일·생활 균형을 보장하기 위한 재택노동 가이드라인 마련과 코로나 블루(우울감)에 대응하는 심리상담 지원 등의 정책도 추진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5월 코로나19로 ‘첫 재택근무’에 들어갔던 한겨레 독자들의 ‘집 안 근무현장’ 모습.

글·사진 전유안 기자 fingerwhal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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