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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공 함께 하며 노숙인을 ‘이웃’으로”

성동구 용답동 주민자치회 김학규 회장·박미선 간사·김은진 분과장

등록 : 2021-01-28 16:52 수정 : 2021-01-29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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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노숙인 시설이 목공 동아리 제안

관심 있는 주민 참여, 가구 제작 판매

행안부 주관 박람회 때 최우수상 받아

사회적협동조합 세워 지속 활동 계획

성동구 용답동 주민자치회는 2018년 지역 노숙인 재활시설 ‘비전트레이닝센터’의 제안으로 목공 동아리와 공 방 운영을 함께 해왔다. 지난해 동네 주민과 노숙인 목수들이 참여해 사회적협동조합 ‘우드어스’를 만들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지난 11일 서울새활용플라자 402호에서 용답동 주민자치회 위원이자 우드어스 조합원들이 취약계층에게 나눠줄 마스크함을 만드는 모습이다. 왼쪽부터 김은진 과장, 김학규 회장, 박미선 간사.

지난 11일 오후 성동구 서울새활용플라자 402호에서 박미선(50)씨와 김은진(45)씨가 홀몸 어르신들에게 나눠줄 마스크함을 만들고 있었다. 이들은 지난해 가구제작기능사 국가자격증을 땄다. 목공을 배운 지 3년 만이다. 박씨는 용답동 주민자치회 간사를, 김씨는 마을공동체 분과장을 맡고 있다. 김학규(72) 주민자치회장이 옆에서 작업을 지켜보고 있었다.

용답동 주민자치회는 지난해 12월 행정안전부가 주관하는 ‘제19회 전국주민자치회 박람회’에서 주민조직 네트워크 분야 최우수상을 받았다. 지역 노숙인 재활시설 ‘비전트레이닝센터’와 손잡고 목공방 사업을 벌여 노숙인에 대한 인식 개선과 주민들의 친환경 실천 활동으로 넓혀간 점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날 <서울&>과의 인터뷰에서 세 사람은 그간의 자치 활동과 지역 주민들의 변화를 얘기했다.

목공방 운영 제안은 2018년 재활시설에서 먼저 했다. 2004년 문을 연 비전트레이닝센터에는 약 200명이 살고 있다. 이들은 주민등록상 용답동 주민이지만, 센터가 둑을 가운데 두고 동네와 떨어져 있다 보니 주민들과 왕래는 거의 없었다. 노숙인 재활시설에 대해 막연하게 불안한 시선을 보내는 동네 주민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센터에는 건설 일을 하며 목공을 경험해본 노숙인이 여럿 있어 목공 동아리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었다. 센터의 양병주 팀장이 주민자치회에 참여하면서 목공방 활동을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주민자치회 위원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목공을 해보고 싶어 하는 동네 주민이 꽤 있어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였다.

주민 자치사업으로 진행되는 목공방 운영은 때를 잘 만나 순조롭게 진행됐다. 용답동에 들어선 ‘서울새활용플라자’ 입주 공모에 선정돼 공간을 마련했다. 운영비도 공모사업을 활용해 확보했다. 첫 사업은 주민참여예산으로 취약계층 가구를 위한 의자를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전통시장 상인들에겐 상품 진열대를, 주민 이용 시설 32곳엔 테이블·의자·선반·사물함 등을 만들어줬다.

성동구 전역에 소문이 나면서 주문이 늘고, 참여 주민과 노숙인 목수의 목공 실력도 늘었다. 3년 동안 목공 교육, 제작과 판매 등에 주민 100여 명, 노숙인 목수 10여 명이 참여했다. 2019년 용답동 축제 때 설치된 목공 체험 부스에는 200여 명이 다녀갔고, 지난해엔 온라인 목공 클래스도 열었다.

목공방 운영은 친환경 실천으로 이뤄진다. 용답동에는 자동차부품 도매상 수백 곳이 밀집해 있어 하루 1t 이상 폐팔레트가 나온다. 열병합 발전소로 보내져 소각 처리했던 폐팔레트를 체험교재로, 업사이클 가구로 재탄생시켰다. 버려진 가구도 최대한 다시 사용한다. 김은진씨는 길이가 140㎝ 넘는 버려진 선반을 주워 와 새로 단장해 집에서 컴퓨터대로 쓰고 있다. “장소, 공구, 사람이 있다 보니 웬만한 건 새로 활용할 수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목공을 함께 하며 주민들과 노숙인들의 마음의 거리가 좁혀졌다. 20년 이상 용답동 주민자치 활동에 참여해온 김 회장은 “처음엔 서먹해하던 주민들과 노숙인 목수들이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며 지낸다”고 했다. 목공으로 만든 가구를 필요한 이웃에게 주기도 하고, 주민자치회 활동에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어보면서 도움이 된다고 한다. 박씨 역시 “처음엔 낯을 가렸는데, 목공 일을 같이 하며 이웃 주민으로 대하게 됐다”고 했다. 주민 10명은 센터 후원자로도 나섰다. 김씨는 “목공방에 참여하는 노숙인들은 생활 태도와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는 계기였다고 한다”고 전했다.

2019년 목공방 참여자 사이에서 협동조합을 만들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처음에 동네 주민들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해외연수 지원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10명(동네 주민 5명, 노숙인 목수 3명, 센터 직원 2명)이 함께 이탈리아 협동조합 탐방에 나섰다. 영화 <위 캔 두 댓!>의 모델이기도 했던, 정신장애인이 주축이 되어 운영하는 ‘논첼로 협동조합’을 찾은 뒤 주민들 생각도 바뀌었다. 박씨는 “우리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목공 교육을 받은 뒤 지속적인 활동을 고민하는 동네 주민과 목공방 일자리사업에 참여하는 노숙인 목수의 관계도 1주일 연수 동안 좀더 가까워졌다.

지난해 8월, 조합원 12명이 모여 ‘우드어스(Wood Us)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었다. ‘목공으로 엮인 우리’라는 뜻이다. 용답동 주민자치회 위원들과 마을공동체분과 활동 참여자 9명, 노숙인 목수 3명이 참여했다. 김은진 분과장이 이사장을 맡았다. 모두 50만원씩 출자금을 똑같이 냈다. 지난해 연말 주민자치박람회 최우수상 수상으로 우드어스 사회적협동조합에 참여하고 싶다는 주민 문의가 늘었다. 월 1만원씩 내고 참여하는 회원을 50명 정도로 늘릴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한다. “목공방 운영이 용답동 주민들의 풀뿌리 자치사업으로 이어가고 있어 큰 보람을 느낀다”고 세 사람은 입을 모아 말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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