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와 일자리의 시대, 우리는 무얼 할까?

기고 ㅣ 전지혜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등록 : 2021-01-14 18:01 수정 : 2021-03-12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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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복지관 등에서 제공하는 ‘슬기로운 집콕 생활’(비대면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 이미지.

지난해 이맘때쯤 ‘코로나19’라는 난생처음 듣는 단어가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1년간 일상의 많은 것이 변했다. 비대면 교육과 회의, 재택근무, 온라인 쇼핑이 일상화되고, 마스크 패션이 타인에 대한 예의이자 자신을 지키는 방역의 보루가 되었다.

누군가는 코로나가 4차 산업혁명 이후의 삶을 앞당겼다고도 하고, 일각에서는 변화의 물결 속에서 생계와 안전을 위협받는 이들을 위한 대응이 시급하다고도 한다. 특히 중증장애인은 현 상황에 더 어려움을 겪는다. 중복 장애인은 마스크 한 장을 사는 일도 어렵고, 뇌병변 장애인은 마스크를 쓰는 방법도 비장애인과는 다른데, 이들을 위한 안내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시점에 의미 있는 사업이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4개월 동안 서울시에서 진행됐다. 무직자인 서울 시민을 대상으로 ‘코로나 극복 희망일자리사업’의 하나로 ‘코로나19 대응 장애유형별 매뉴얼 만들기 사업’을 한 것이다.

장애인 10명, 비장애인 20명이 참여했는데, 필자는 외부 전문가로서 사업 전체를 총괄했다. 사실 시작부터 이 사업이 제대로 된 성과를 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했다. 매뉴얼을 만든 경험도 없고, 장애인을 접한 경험도 적은 분들, 그리고 장애인 당사자들이 함께 일하면서, 4개월 만에 장애유형별 안내자료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참여자 평균 나이가 49살이었음을 고려할 때 영상물로 매뉴얼을 제작하는 것 자체가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참여자 역량이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면서 나타나는 갈등이 문제였다. 장애인과 왜 함께 일해야 하는지 모르고 왔다는 참여자가 있는가 하면, 갈등이 생기면서 사업 참여를 그만두겠다는 분도 있었고, 참고 그래도 해보겠다는 의견을 주면서 힘들어하는 분도 있었다. 사업 진행의 물리적 환경적 요인을 넘어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한다는 것의 어려움’이 가장 큰 장벽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갈등이 성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는 우여곡절이 꽤 있었지만, 사업이 끝나갈 무렵 비장애인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 효과가 눈에 띄게 나타났다. 도무지 계속하기 힘들다던 분이 내년에도 이런 사업 있으면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고, 이제야 장애인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뭔지 조금 알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관심이 없던 장애인 문제에 관심이 생겼고 사회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4개월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자연스럽게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있었다.

장애 인식 개선 성과 외에 본 사업의 성과가 무엇이었는가를 묻는다면, ‘코로나 개인별 대응 매뉴얼 제작 성과와 일자리 사업으로서 경제적 지원 효과’라 하겠다. 우선, 제작된 콘텐츠의 내용 면에서 보면, 딱딱한 형식을 탈피해 코로나19 상황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담아냈다.


슬기로운 집콕 생활을 이야기하거나, 장애인과 비장애인 시민들이 함께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를 다루었다. 큐아르코드(정보무늬), 수어, 자막 등을 영상에 포함해 시각·청각 장애인의 접근성도 높였다. 결과물은 32개의 큐아르코드로 만들어 포스터로 제작했고, 서울시 장애인권익옹호기관 누리집에도 공유했다(saapd.or.kr). 또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참여하는 공공일자리였기에, 참여자들이 가치 있는 사회적 활동을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과정 자체도 의미 있는 성과였다. 물론 어려운 상황에서 참여자에게 경제적 보탬이 될 수 있었다는 점도 좋았다.

이러한 성과는 코로나 19 이후 우리에게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한 시사점을 던진다. 이미 현실이 된 노동 소외와 인간 소외의 시대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할 수 있는 공공 일자리를 늘리면 어떨까 한다.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면서, 노동과 일자리의 의미를 바꾸어 갔으면 한다. 의미 있는 사회적 활동 자체가 노동이 될 수 있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은 덤으로 따라올 것이다. 서울시의 작은 시도에서 이미 성과는 입증됐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개인과 지자체와 정부 차원에서도 생각해보길 바란다.

전지혜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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