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곳

분단의 상징물에서 문화창작공간으로

도봉구 평화문화진지

등록 : 2020-12-31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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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70년이나 지났지만, 한반도는 종전이 아닌 휴전 중이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서울에는 분단과 대결의 상징물들이 남아 있다. 이런 생경하고도 딱딱한 구조물에 문화의 숨결을 불어넣고자 하는 시도가 등장했다. 도봉구의 평화문화진지도 그 가운데 하나다.

평화문화진지는 1970년 수도 서울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250m에 이르는 대전차 방호시설이다. 2층부터 4층에 위치한, 위장을 위해 지어진 시민아파트는 노후화로 2004년 안전진단 E등급을 받아 철거됐다. 콘크리트 골조를 들어낸 1층 군사시설은 애꿎은 흉물로 남았다.

2014년 7월, 오랜 기간 방치된 대전차 방호시설은 민간과 행정의 협력으로 공간 재생이 이뤄졌다. 2016년 12월에는 서울시와 도봉구, 60보병사단 간 협약으로 시민 문화 향유시설로 새 단장이 시작됐다. 분단과 대결의 상징인 이곳이 평화와 창조의 문화 공간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2017년 10월31일 평화문화진지 개관식을 한 뒤 이곳은 더는 군사시설이 아니었다. 창포원에서부터 쭉 이어지는 잔디밭엔 군화신은 군인이 아니라 엄마 손을 잡은 아이들이 뛰놀았다.

현재 평화문화진지는 입주 작가들 작품과 지역 주민의 시도가 쌓여, 이름 그대로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시민동, 창작동, 문화동, 예술동, 평화동 총 5개 동이 있다. 시민동은 공연과 공연을 위한 연습실로, 창작동은 열린 전시 공간과 스튜디오로, 문화동은 공유공방으로 채워졌다.

평화문화진지의 지난 이야기는, 일직선의 진지를 걷던 군인들의 옛 발걸음을 따라가면 살필 수 있다. 방호시설을 연결하던 군사 통로는 회색빛 갤러리로 바뀌었다. 복도 사이사이 총구를 겨누던 틈으로는 이제 햇볕이 들어와 벽에 걸린 작품을 타고 내린다. 그런 날것의 흔적을 짚으며 분단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끝은 시나브로 평화의 이야기와 마주한다. 그리고 분단과 평화의 간극을 문화가 메워간다.

평화문화진지는 일직선 건물인데, 가운데가 터져 중정이 있는 독특한 구조이다. 중정은 중앙이 ‘ㅁ’ 자로 터진 공간을 말한다. 기존의 대전차가 들어가던 곳을 그대로 공간으로 남긴 것이다. 그런데 중정의 지붕만은 터지지 않고 이어졌다. 그 지점에 건축가 의도가 깔려 있다고 생각된다. 서울 도심에 길이 250m나 되는 건물이 흔치 않은 상태에서 ‘단절’시키고 싶지도 않았거니와, 지하군인 통로가 연결되듯 외부 5개 동도 하나로 ‘연결’하려는 것일 게다.


덕분에 지붕이 가려주고 옆으로 터진 훤한 중앙 광장은 시민 휴식처가 됐다. 지역 행사나 청소년들의 버스킹 무대로도 자주 쓰인다. 사람들은 이곳을 이제 중정 대신 평화 광장이라 부른다.

평화 광장 바로 맞은편엔 독일로부터 기증받은 베를린 장벽 석 점이 자리한다. 분단의 땅에 베를린 장벽을 세우며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도 세우고자 한 이동진 도봉구청장의 글귀가 눈에 띈다.

“독일 베를린시로부터 기증받은 3점의 장벽을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곳 도봉구에 세운다. 우리들 사이에는 너무 많은 장벽이 존재한다. 남과 북, 동과 서, 좌와 우, 그리고 빈과 부 사이에 높고 두꺼운 장벽이 가로놓여 있다. 장벽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로 인해 갈라졌던 것들이 더 크게 하나 됨을 의미한다. 부디 우리를 갈라놓고 있는 수많은 장벽이 낮고 낮아져서 갈라진 이들이 서로를 마주 보고 손잡을 날이 속히 오기를 소망한다.”

눈 오는 날, 평화문화진지가 하얀 설원으로 변했다. 분단도 잠시 덮인 듯하다. 평화문화진지는 지금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거듭 외치는 중이다. 하루빨리 장벽들이 낮아지고 낮아져, 사라지는 그날을 소망한다고.

정동훈 도봉구 홍보전산과 언론팀 주무관

사진 도봉구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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