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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삶, 준비된 마무리’ 위한 송파구의 특별한 공모전

등록 : 2020-12-24 14:27 수정 : 2021-01-2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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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 일깨운 웰다잉 공모전 진행

사진·수기·슬로건 부문, 전국 303개 팀 참여해 19개 팀 선정

송파구가 주최한 웰다잉 공모전에서 수상한 세 사람이 17일 송파구청 지하 1층에서 손하트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웰다잉 준비도 자가측정 프로그램’으로 자유주제 부문 장려상을 받은 이정민씨(왼쪽), 동아리 회원들의 수기로 자유주제 부문에서 우수상을 받은 송파북소리 회장 이명숙(가운데)씨와 회원 김향심씨.

“웰다잉, 체계적인 계획과 함께 전문적인 교육 필요”

삶과 죽음 바라보는 시선 제각각

행복한 삶 위해서도 웰다잉 필요

송파구 “인식 확산 계속해나갈 것”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존재이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이죠. 미리 생각하고 가족과 의논하며 나의 존엄한 죽음을 나답게 준비할 기회를 가지는 것은 중요합니다. 후회하거나 아쉬움이 남지 않는 삶을 위해 오늘 나의 죽음과 나의 삶을 함께 고민해봐야 합니다.”


송파구가 주최한 웰다잉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받은 이정민(43)씨는 지난 17일 “지금껏 살아오면서 당황스럽거나 괴로운 죽음을 지켜보기도 하고 진짜 아름다운 죽음도 지켜봤다”며 “사람들 마음속에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돼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송파구는 지난 9월16일부터 10월6일까지 ‘행복한 삶, 준비된 마무리’를 주제로 웰다잉 공모전을 개최했다. 시민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다시 생각하고 소중한 삶의 가치를 재조명해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웰다잉은 인간이 품위 있고 존엄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을 일컫는데, 이번 공모전에는 사진, 수기, 슬로건, 자유주제 부문에서 총 303개 팀이 참여해 19개 팀이 우수, 장려, 입선작으로 선정됐다.

이정민씨는 가족으로 구성된 ‘함께 좋은 우리팀’을 만들어 자유주제 부문에 웰다잉 준비도 자가측정 프로그램인 ‘나의 웰다잉 준비도’를 응모했다. 전직 간호사인 이씨는 “병원에 근무하면서 웰다잉에 대한 경험을 많이 해봤다”며 “웰다잉이 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웰다잉에 대해 함께 생각을 나눌 기회가 될 것 같아서 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했다.

“여전히 주위에는 웰다잉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부터 떠올려야 할지 막연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웰다잉 준비도를 스스로 점검해보면서 웰다잉과 관련된 내용을 하나씩 자신의 상황에 맞게 대입해 웰다잉에 대한 자신의 인식 정도를 확인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이 웰다잉 준비도 자가측정 프로그램은 개개인의 웰다잉에 대한 인식 정도를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호스피스, 버킷리스트 등 웰다잉 준비를 위해 필요한 개념에 대한 인식도를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이 과정에서 스스로 웰다잉을 위해 필요한 준비가 어떤 것인지 알고 웰다잉을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모든 질문에 답하고 나면 웰다잉 준비도를 수치(%)로 나타내 알 수 있게 만들었다.

웰다잉 준비도 자가측정 프로그램은 이씨와 남편, 그리고 중학교 1학년 아들 양성욱군 등 가족 3명이 함께 힘을 합쳐 만들었다. 이씨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족이 함께 토론하면서 내용을 구체화했다고 했다. 그는 “남편이 구체화하는 방법을 찾아주고, 컴퓨터를 잘 다루는 아들이 프로그램으로 만들었다”며 “아들이 죽음이라는 막연함에 대해 고민해보는 시간이 되길 개인적으로 바랐다”고 했다.

독서 동아리 송파북(BOOK)소리 회장인 이명숙(59)씨는 웰다잉에 대한 회원들의 생각을 정리한 ‘아름다운 마무리 웰다잉을 위하여’를 응모해 자유주제 부문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동아리 회원 14명의 ‘웰다잉 이야기’를 모았다.

“어렵고 무거운 주제이기는 하지만 죽음은 언젠가 우리 앞에 다가올 일이기에 남은 삶을 보람되고 풍요롭게 하며 준비된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주제를 선정했죠. 회원들이 모여 웰다잉에 대한 생각과 묘비명 써보기, 편지 쓰기 등 자유롭고 다양한 글쓰기와 토론을 통해 의견을 모았습니다.”

이명숙씨는 “평소 생각해보지 않았던 웰다잉에 대해 이번 기회에 생각해보고 좀더 준비된 시간을 갖자는 마음으로 응모하게 됐다”고 했다.

송파북소리는 평소 동아리 회원들이 모여 책을 읽기도 하고, 경로당이나 이웃 노인들을 찾아가서 책을 읽어주고 시를 낭송하는 봉사활동을 7년째 펼쳐오고 있다. 이씨는 “어른들을 만나면서 우리들의 노후도 한번씩 생각해봤는데, 웰다잉은 접하기 어렵고 생각하면 두려운 주제였다”며 “이번 공모전은 회원들이 웰다잉에 대해 생각해보는 뜻깊고 좋은 시간이 됐다”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나의 소중한 아들딸. 유치원 다녀오는 길가에 핀 꽃이 예쁘다며 꽃다발을 한 아름 선물해 주던 듬직한 아들, 고맙고 사랑해. 천국으로 이사 가서 우리 가족 꼭 다시 만나요.”


웰다잉 준비도 자가측정 프로그램으로 자유주제 부문 장려상을 받은 이정민씨가 직접 프로그램을 시연하고 있다.

이씨가 자녀들과 남편에게 쓴 유언장과 같은 편지다. 이씨는 “이런 편지를 쓰면서 웰다잉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며 “회원들과 내용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글을 읽고 또 읽었더니 그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했다.

이씨와 같은 송파북소리 회원인 김향심(54)씨는 가족과 함께 산소에 가면서 나눈 웰다잉 관련 대화를 원고에 실었다.

“남편은 ‘기나긴 여정 편안한 휴식’이라고 했고, 큰아이는 영화 장면처럼 할아버지가 환하게 웃으며 ‘임자 수고했소’라고 하는 말 한마디가 웰다잉의 모습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제망매가’처럼 삶과 죽음이 함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씨는 “남편과 아들 모두 웰다잉에 대한 생각이 제각각이었다”며 “죽음과 웰다잉에 대해 가르쳐주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정민씨는 웰다잉은 개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웰다잉을 이루기 어렵고, 사회의 책임과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호스피스 제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장기 기증 등과 같은 용어를 사람들에게 더 자주 노출해 익숙해지고 관심 갖기를 바랍니다.” 이씨는 “호스피스 병동에 간다고 하면 ‘죽으러 가냐’는 말을 하는 게 아닌, 다른 인식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며 “이는 개인이나 가족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니고,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면 좋겠다”고 했다.

이씨는 어릴 때부터 웰다잉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고 한다. “웰다잉이 너무 노인에게 국한된 개념처럼 느껴지고 실제로 그렇게 받아들이죠. 하지만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죽음에 대해 언제나 생각해야 합니다.” 이씨는 “우리 아이만 봐도 학교에서 자살 예방 교육만 받는 것 같다”며 “유년기에 가질 수 있는 죽음에 대한 사고를 정립해나가면 나중에 노년기에 정말 현실이 됐을 때 당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명숙씨도 국가나 개인 모두 “웰다잉에 대한 체계적인 계획을 세우고 전문적인 교육과 활동을 통해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하면 좋겠다”고 했다.

이날 만난 세 사람은 죽음이나 웰다잉에 대한 생각이 공모전을 통해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막연하고 두렵고, 왠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 준비하면 앞으로의 삶도 보람 있고, 후회 없이 삶을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이명숙)

“앞으로 남은 시간에 대해 생각하면서 살아야겠구나, 사랑하고 감사하며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김향심)

“조금 더 고민하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도 현실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이정민)

한현진 송파보건소 주무관은 “코로나19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올해 처음으로 웰다잉 공모전을 했는데, 다양한 주제로 웰다잉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돼 좋았다”며 “내년에도 웰다잉을 주제로 한 행사를 만들어 웰다잉에 대한 인식 확산에 앞장서겠다”고 했다. 한 주무관은 또한 “사람들이 평소 웰다잉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지 않고 살아가는데, 누구나 한 번은 맞는 죽음이라면 불행하기보다는 행복한 죽음을 맞을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는 데 보탬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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