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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종주 외국 산악인, 강북구민 되다

명예 강북구민 된 남북 백두대간 완주 첫 외국인 로저 셰퍼드

등록 : 2020-12-03 14:49 수정 : 2020-12-04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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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홍보로 10월 명예구민증 받아

근현대사기념관 사진전 개최로 인연

9월 구민 대상 비대면 인문학 강연도

“자원봉사, 자매결연에도 힘 보탤 것”

지난 10월6일 로저 셰퍼드(오른쪽 둘째)가 강북구 명예구민증 수여를 기념으로 박겸수 강북구청장(넷째) 등과 북한산 등반을 했다.

로저 셰퍼드(54)는 뉴질랜드인이다. 지난 10월 명예 강북구민이 됐다. 그 기념으로 북한산 백운대 등반을 한 뒤 박겸수 강북구청장과 식사했다. 박 구청장이 “맑은 날 백운대에서 송악산을 볼 수 있으니 동이 트기 전에 다시 삼각산에 오르자”고 제안했다. 12시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북한산 정상에 올랐다. 손에 잡힐 듯 길게 누워 있는 송악산의 아련한 모습에 마스크를 쓴 일행은 모두 “와” 하고 작은 탄성을 질렀다. 그는 “아주 특별한 이틀이었다”고 했다. 외국인으로 첫 명예 강북구민이 된 그를 전자우편으로 인터뷰했다. 현재 그는 전남 구례군에서 살고 있다.

셰퍼드는 남북 백두대간을 종주한 첫 외국인으로 산악인이자 사진작가다. 2006년 휴가차 한국을 찾아 가벼운 트레킹으로 시작해, 백두대간을 올랐다.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들에 빠져들었다. 지리산 자락 구례에 삶의 터를 옮기고 2009년 외국인 대상 트레킹 가이드를 하는 회사 ‘하이크 코리아’도 차렸다.

북한엔 2011년에 처음 갔다. 조선뉴질랜드친선협회 도움으로 평양 회원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들의 협조로 지난해까지 15차례 북한을 찾아 백두대간 산을 등반했고, 소규모 외국인 배낭여행 안내도 했다. 10년 새 다섯 권의 책을 펴냈다. 두 권은 백두대간을 하이킹하는 방법에 대한 영문판 안내책자다. 나머지는 남북 백두대간 산들의 사진집이다. 사진전도 국내외에서 수차례 열었다.


그는 북한산을 수도에 있는 국립공원 중 세계 최고라 평가했다. 도심을 배경으로 한 분홍빛 암벽과 멋진 봉우리는 세계 도시 어디에서도 만나기 어렵다고 했다. 탐방할 수 있는 개방 산책로가 가장 많은 공원이라는 점도 꼽았다. 세계의 많은 국립공원이 길을 부분적으로 막는 것과는 대조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강북구가 북한산을 세계 최고의 도심 국립공원으로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강북구의 6번째 명예구민이다. 사진과 책으로 백두대간을 소개하며 북한산의 매력도 함께 알려온 점을 평가받았다. 강북구는 2005년 강북구 명예구민증 수여 조례 제정 뒤 5명의 명예구민을 선정했다. 미아리 이미지 개선에 큰 도움을 준 작곡가, 지역을 위한 기부자, 첫 자매도시인 김천시장 등이다. 강북구는 북한산 역사문화관광벨트 사업을 꾸준히 펼쳐왔다. 내년부터 가족캠핑장, 산악전시관, 인공암벽장 등의 개관을 차례로 앞두고 있어 그가 홍보대사로 역할을 해줄 거라 기대를 걸고 있다.

셰퍼드는 “세계에서 보기 드문 도심 속 국립공원인 북한산의 매력을 알릴 수 있는 역할을 맡아 기쁘다”고 했다. 앞으로 강북구의 북한산 관련 행사에서 자원봉사도 할 계획이다. 뉴질랜드 타와(웰링턴시 북쪽 외곽 지역) 출신인 그는 자신의 고향과 강북구가 자매도시를 맺을 수 있게 힘을 보태고 싶다고 했다.

그가 강북구와 인연을 맺은 건 근현대사기념관에서 사진전을 열면서였다.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2월까지 열린 ‘한반도 평화기원 일맥상통 백두대간 사진전’은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한 민족으로서의 한국을 조명하는 자리였다. 백두산의 사계절 사진, 한라산 백록담의 대형 설경 사진 등 북한 사진 30여 점, 남한 사진 20여 점을 전시했다. 이 가운데 2013년 장군봉에서 찍은 백두산 사진을 그는 강북구청에 기증했다.

9월엔 강북구민 대상 평생교육 인문학 온라인 강의를 했다. ‘남북 백두대간 답사기’ 주제로 답사 과정과 현장 체험을 50분 정도 얘기했다. 유튜브에 올린 강연을 본 이들이 ‘재밌게 잘 봤다’ ‘감사하다’는 댓글도 달았다. 강의 마무리에서 셰퍼드는 “언젠가는 모든 한국인이 저처럼 백두대간 전체를 걸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외국인으로서 남북이 하나가 되는 것을 돕고 싶다”며 “작은 힘이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건 백두대간을 걷고 사진과 글 등으로 많이 알리는 거라 믿는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처럼 그 역시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고 있다. 외국인 방문객이 없어 사진전 개최와 온라인 강의를 주로 하고 있지만 수입이 크게 줄었다. 게다가 지난여름 구례에서 큰 홍수를 겪었다. 그래도 그는 코로나19가 준 자유 시간으로 한국에서 더 많은 배낭여행과 하이킹을 하기로 자신과 약속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다고 한다.

최근엔 북한 백두대간 산들의 유화를 그려 모으고 있고, 내년 봄 전시할 계획이다. 그는 “코로나 대유행이 어서 끝나 외국인들에게 다시 한국의 아름답고 끝없이 이어지는 산들을 보여주고 싶다”며 “한국을 하나의 민족으로 잇는 백두대간을 통해 분단 상황을 세계에 더 알리는 노력도 이어가려 한다”고 했다.

백운대를 향해 올라가고 있는 로저 셰퍼드.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강북구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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