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일상에 스며들어 마음 문 열고 삶의 질 개선

마을의사 중심으로 건강취약계층 방문하는 양천구 신월보건지소 건강돌봄팀

등록 : 2020-12-03 14:23 수정 : 2020-12-04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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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와 눈 한 번 마주치기 힘든 사람들

세상과 스스로를 단절시키며 지내다

꾸준히 찾는 팀원들 친절 설명에 감동


3개월 건강돌봄 서비스 끝난 뒤에는

장기요양등급 받도록 연결도 시켜줘

“가난한 나에게 천사들이 찾아왔다”며

눈 붉힐 때는 돌봄팀 어깨도 ‘으쓱’


11월30일 오후 4시30분. 양천구 신월보건지소 건강돌봄팀 안용호 마을의사(왼쪽)와 김영희 사회복지사(오른쪽)가 건강돌봄 대상자 박진원(가명)씨 집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양천구 신월동 골목길. 한 다가구주택 옥탑방에 박진원(가명·52)씨가 홀로 산다. 박씨가 쓰러진 건 지난해 6월이다. 평소처럼 “저수지에서 낚시하고 있었는데 눈을 뜨니 병원”이었다. 급성 뇌경색이었다. 가난에 더해진 질병은 박씨의 일상을 뿌리부터 바꿨다. 기본적인 대화조차 불가능해 경제활동도 더는 할 수 없었다.

지난 5월 두 번째 쓰러진 박씨는 세상과 스스로를 단절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박씨가 힘겹게 단어를 골라 말했다. “왜냐면 제가… 뇌가 문제가 생겨서… 밖에 나갔다가 길을 잃어도… 도움을 구하기 힘들어요. 대화를 못해서… 가족들과도 연락을 안 해요.”

박씨의 고립된 일상에 처음으로 ‘스며든’ 사람들이 양천구 신월보건지소 건강돌봄팀이다. 안용호(68) 마을의사와 김영희(52) 사회복지사 외 간호사, 영양사, 작업(물리)치료사 3명을 포함한 총 5명의 전문 인력이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매주 박씨를 만나러 옥탑방으로 올라왔다.

11월30일 오후 4시 박씨의 집을 다시 찾은 안용호 마을의사가 최근 박씨가 받아 왔다는 증상과 관련해 메모한 자료를 건네받았다. “일부는 머리에 원인이 있는 거고요. 이건 내일 신경정신과로 가셔야 해요. 변 색깔이 선홍색이면 좀 더 검사해봐야 해요. 짧은 거리다닐 때 숨이 차신다고요? 지난번 검사 보니까 심장이 조금 안 좋았잖아요. 약을 잘 먹어야 해요. 그리고 숨찬 것은요, 누구나 나이 들면 계단 오를 때 숨이 찰 수 있어요. 괜찮아요. 조금씩 천천히 걸으시면 돼요.” 안 의사가 박씨의 눈을 맞춰 설명하자 박씨의 굳은 입매가 풀려나갔다.

김영희 사회복지사가 박씨와의 첫 만남을 기억했다. “동 주민센터로 찾아와 부탁하셨대요. ‘제발 병원 갈 때만이라도, 누가 좀 나를 도와줄 수 없느냐’고. 동 주민센터 방문간호사로부터 저희에게 건강돌봄 의뢰가 들어왔어요. 대상자분과 인연이 된 거죠.”

이후 건강돌봄팀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3개월 동안 박씨 삶이 하나씩 나아졌다. 팀은 우선 박씨를 양천구 ‘돌봄SOS센터’ 동행지원서비스와 연결해 통원을 돕는 동행인을 구했다. 이후 의료상담, 영양식 지원, 통증 관리 등 건강돌봄 지원을 해나갔다. 지난 10월 돌봄서비스는 종료됐지만 팀은 여러 번 사례회의를 거쳐 박씨가 장기요양등급을 받을 수 있도록 행정 지원에 나섰고 데이케어센터(복지관)로 연결해 지역사회 복귀를 도와 돌봄이 이어질 수 있게 했다. 주거환경이 좋지 못한 박씨 사정을 이해해 임대아파트와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고, 엘에이치(LH) 임대아파트 입주 신청도 마쳤다. 이들은 함께 내년 2월에 나오는 입주 선정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양천구 신월보건지소 건강돌봄팀과 만난 대상자들은 “살면서 의사 선생님과 눈 한 번 마주치기 힘들었다”고 고백하거나 “(병원에 가면 자세한 설명을 못 듣고 오는데) 이렇게 의사 선생님과 오래도록 얘기해본 적이 없다”며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이들이 양천구 내 돌봄서비스를 시작한 건 지난해 10월. 이후 하루에 5가구, 일주일에 평균 16~20가구를 방문해왔다. 대략 60가구가 넘는 대상자들과 만났다. 현장에서 보면 상당히 바쁜 일정이다. 대문 넘어 마음의 문까지 열고 들어가려면 시간 소요와 정신적 소진이 많다. 대상자의 건강 기준을 몸에 한정하지 않고 주변 환경까지 확장해 살펴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팀의 발품과 노력으로 돌봄 대상자들과 신뢰를 쌓아갔다. 양천구 내 건강돌봄팀은 지난해 1곳에서 올해 1곳 더 늘어났다. “상사병에 걸렸다”고 고백하는 어르신이나 “같이 노래하자”고 부추기는 어르신, “젊은날 나쁜 짓 하며 산 나에게 신이 천사들을 보냈다”며 눈을 붉히는 분들의 소감은 건강돌봄팀이 꼽는 “고마운 기억”이다.

이에 대해 안 마을의사는 “팀원들 사이 신뢰를 먼저 쌓은 덕분”이라 설명했다.

“사명감은 분명 아닙니다. 그런데 팀에 들어와서 보니까 함께하는 사람들이 내 자식처럼 참 좋은 겁니다. 사람들이 제게 ‘은퇴 후 편하게 살 수 있는데, 힘들지 않으냐’ 묻기도 했어요. 그런데 저는 지난 1년 즐겁게 생활했어요.”

안 마을의사가 말을 이었다. “친절한 설명만으로도 병이 호전되는 경우를 건강돌봄팀 마을의사로 활동하며 본 적이 있어요. 예를 들어 당뇨병이 있는 대상자 한 분은 당화혈색소 수치가 10%에서 석 달 뒤 6%로 떨어진 경우가 있었습니다. 약 처방 말고도 다른 방법이 있음을 봤지요. 앞으로도 지역 안에서 서로 도와가면서 살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박유미 서울시 시민건강국장은 “마을의사를 중심으로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한 건강돌봄팀은 취약계층 대상자들을 보다 세밀하고 따뜻하게 돌볼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향후 건강돌봄팀을 25개 전 자치구에 확대 시행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건강돌봄팀이 대상자가 남긴 기록을 함께 훑으며 다음 단계를 논의하고 있다.

글·사진 전유안 기자 fingerwhal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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