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광장, ‘한국적 경관으로 도심 재편’ 촉매

기고 ㅣ 최정민 순천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등록 : 2020-11-26 15:34 수정 : 2020-12-04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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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쉬고 걷기 편한 광화문광장’ 조성 공사가 시작된다는 발표가 있었다. 정보를 그대로 전달하는 언론이 있지만 졸속, 강행, 시민단체 반발 같은 자극적 기사로 재생산하는 보도도 많다. 4년은 무언가를 합의하기에 충분치 않은 시간이었기 때문일까?

2016년 광화문포럼을 시작으로 설문, 토론회, 워크숍, 광화문시민위원회 같은 공론화 과정을 거쳐왔음에도 졸속과 소통 부재라고 비판받는 서울시는 억울할 만하다. 지난해에는 더 심했다. 새 광화문광장 당선작 발표가 있고 난 이후로 부정적이고 선동적인 기사들이 쏟아졌다. “물구나무서는 이순신 장군”(<일간투데이> 1월23일), “박원순, 대권놀음 빠져 광화문광장 좌파 취향 훼손”(<아주경제> 1월23일) 같은 기사들이다. “광화문광장이 교통지옥을 만든다”는 보도는 시민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청계천 복원공사, 현 광화문광장 조성,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같은 사업과 견주지 않더라도 새 광화문광장 조성에 호의적이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왜, 무엇 때문일까?

이유 가운데 하나는 유력한 대권 주자이기도 했던 고 박원순 시장에게서 찾을 수 있다. ‘새 광화문광장’ 구상은 차기 대선을 의식한 공간정치라는 것이다. 공공 프로젝트의 동인이 정치적 의도인지 아닌지를 비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르페브르가 정의하듯이 “공간의 생산과 소비는 권력과 계급, 정치, 경제 같은 힘이 관계”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실현된 공공 공간들 가운데 정치와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례는 찾기 어렵다. 어떤 프로젝트이든지 전문가나 시민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 방안을 만들 수 있지만, 실행 의지를 가진 권력이 없다면 실현되기 어렵다. 정치적 동인을 이유로 공간을 비판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동인이다.

다른 하나는 서쪽 광장 조성에 대한 비판이다. 그동안 전면적, 서쪽 또는 동쪽, 도로 양쪽, 중앙 조성 방안들이 검토됐다. 10년 전 이 안들을 놓고 시민과 소통해 결정한 것이 현재 중앙광장이다. 그 결과는 “나무와 그늘이 없는 땡볕 포장” “소음과 매연으로 둘러싸인 섬” “접근이 어려운 거대한 중앙분리대” 같은 문제로 나타났다. 행사로 인한 소음, 천막, 거대한 조형물은 광장을 더욱 왜곡시켰다. 광화문광장 재구조화를 위한 논의의 시발점이자 새 광화문광장을 조성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광화문포럼이 채택했던 전면적 광장(차도는 지하화) 안은 막대한 사업비 같은 현실 문제에 부딪혔다. 발표된 서쪽 광장 안은 한양 도성의 입지 개념인 풍수적 축을 담을 수 있고, 동쪽보다 풍부한 공공 공간과 문화시설을 연계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이곳에 숲과 물, 정원과 쉼터가 있는 ‘공원 같은 광장’을 조성하고자 한다. “광장은 비워야 한다”는 서구 광장에서 형성된 고정관념을 따르지 않은 것이다. 새 광화문광장은 국가 상징 가로를 지향하지만, 파리의 샹젤리제처럼 열식 된 가로수를 축으로 공간을 규정하는 도식은 거부했다. 서울 중심부에 서구적 공간 모델을 대입해 국가 상징 공간으로 내세우는 아이러니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지형, 지세를 존중하고, 건물과 숲이 조화된 경관을 만들어온 전통을 이어받아 ‘한국적 경관’을 만들고자 한다. ‘한국적 광장’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우리 도시와 경관에 대해 더 깊이 논의하게 하는 계기가 되어 사람 중심으로 도심을 재편하는 촉매 구실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한다.

월대 복원과 역사광장 조성을 포기하면 안 된다. 월대에서 해치(해태)상까지는 경복궁 영역이다. 이 영역을 매몰한 일제는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을 단절시켰다. 월대 복원은 단순히 광화문의 기단을 복원하는 일이 아니다. 공간 복원은 시간을 복원하는 일이다. 시간적 연속성을 복원하는 것은 장소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월대 복원과 역사광장 조성이 조속히 추진돼야 하는 이유이다.

새로운 광화문광장에 조성될 사계정원 모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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