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을 나누는 밥상 “노후 돌봄의 시작이죠”

‘서울케어-건강돌봄 서비스’ 영양사가 어르신들에게 가져온 변화

등록 : 2020-11-26 14:48 수정 : 2020-12-04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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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플레이스 속 외딴섬에 갇힌 어르신

찾동 방문간호사가 건강돌봄팀 의뢰

주 3회 ‘영양간편식 지원 서비스’ 받아


영양사가 사회적·정서적 지지도 전달

지역사회 연계해 모니터링 실시하고

치매 검사, 안전장치 등 후속 관리 진행



“각 자치구 영양사들 현장 활동 힘입어

어르신들 사회 복귀 의지 밝히기도 해”

영양간편식이 배달된 지난 23일, 홀로 사는 박정자(가명)씨와 김태희 광진중곡보건지소 영양사가 안부를 나누고 있다. 광진구에선 현재 23명의 독거 어르신이 대상자 맞춤형 영양간편식을 받고 있다.

“걷기도 힘들어서 누워 있는 날이 많은데, 챙겨 먹는 일이 여간 귀찮고 힘든 일이어야지. 먹어야 하는데 먹질 못해요. 집에 밥도 없고 몸도 아프고…. 때마다 늙은이가 누구한테 밥을 달라고 하겠어. 그럴 때 먹을거리가 어디선가 와요. 그날은 잠을 잘 자는 거예요. 덜 아파서.”

지난 20일 오후 광진구 다세대주택가 골목 반지하방에서 만난 박정자(가명·86)씨가 말했다. 집에서 10분 정도 걸어나가면 청년들이 자주 찾는 ‘핫플레이스’가 널려 있어 거리는 온통 분주했지만, 박씨의 두 평짜리 방은 외딴섬처럼 고독이 묻어났다.

양쪽 무릎 수술로 거동이 불편하다. 건강돌봄팀은 이처럼 외출이 힘든 어르신들 자택 방문으로 의료적 지원과 사회적 지지를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다.

코로나19 확진자 수를 집계하는 티브이 뉴스 소리가 작은 방을 쟁쟁 울리자 박씨가 말을 이었다. “저봐요.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들은 코로나에 걸리기 쉽다고 집에 꼭 붙어 있으래요. 여긴 골목도 좁아 차가 오기 힘들어요. 무릎이 붓고 너무 아파서 병원 가기도 쉽지 않고.”

박씨는 지난 5월부터 7월까지 3개월 동안 ‘서울케어-건강돌봄 서비스’ 대상자로 돌봄 지원을 받았다. 각 자치구가 운영하는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찾동) 방문건강관리사업으로 자택을 찾아왔던 자양동 주민센터 방문간호사가 박씨의 혈압·당뇨·정신건강 등 문제를 발견하고, 지난봄 ‘서울케어-건강돌봄 서비스’ 건강돌봄팀에 의뢰한 경우다.

2주에 한 번씩 총 7번 건강돌봄팀의 재택방문 서비스를 받은 박씨는 평소 고혈압과 당뇨 같은 만성질환, 관절염으로 인한 극심한 무릎 통증, 심질환 등 병력으로 꾸준한 의료적 관심이 필요했지만,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이자 직계가족이 없는 독거 생활로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5월부터 박씨의 영양 관리를 맡아온 김태희(31) 광진중곡보건지소 영양사는 “건강돌봄팀의 방문 목적은 ‘직접 치료’보다 ‘예방 차원의 다방면 지지’에 가깝다”며 “영양적 측면 외 운동, 복지, 의료 등의 사회적·정서적 지지를 바탕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당뇨·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은 ‘식생활 습관’과 관련이 많습니다. 어르신(대상자)에게 맞춘 식사는 만성질환과 질병이 더 악화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데 목적이 있어요. 이 과정에서 대상자가 외부인과 소통하니 덜 외로워하시는 측면도 있을 겁니다. 영양 관리 이상의 의미도 생기는 거지요.”

이 때문에 자치구 관할 보건소 건강돌봄팀은 대상자가 앓는 질환과 주거환경, 생활환경 전반을 이해해 삶에 개입하게 된다. 예를 들어 박씨는 고령과 만성질환 때문에 홀로 식사 준비를 하는 것마저 어려운 실정이었다. 이에 보건소에서 하루 한 끼는 간편하게 대체할 수 있는 영양두유나 영양죽 등 식사를 제공했는데, 식사 동선을 줄인 이런 ‘작은 관심’이 박씨가 꼽았던 “덜 아프고 덜 괴로웠던 지난여름 기억”이었다.

식사 한 끼에 ‘정서적 지지’가 전달됐다고 볼 수도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거동이 한층 불편해진 고령 어르신들 상황에 맞춘 ‘영양간편식’과 이에 따른 ‘영양교육’도 마찬가지다.

벽에 붙이는 영양 관리 방법 포스터는 어르신들의 학습효과를 높여준다.

박씨가 주 3회 받는 ‘고령 만성질환자 영양간편식 지원 서비스’는 영양과 식생활 관리에 취약한 만성질환 어르신 대상으로 시가 제공하는 식사 서비스다. 대상자의 영양과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12개 구(동작·은평·광진·용산·도봉·양천·성동·관악·구로·서대문·중구·마포) 만성질환 영양고위험군 어르신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다. 영양서비스 지원 전문기관과 연계한 서울시를 중심으로, 영양간편식 운영기관, 자치구 보건소, 질환 대상자가 밀접히 연결돼 대상자 영양 관리 서비스부터 지역사회 연계 모니터링까지 수행한다.

영양간편식 종류도 대상자 맞춤으로 ‘만성질환식’ ‘신장질환식’ ‘저작곤란식’으로 구분했다. ‘만성질환식’이 저염·저당 조리를 중심으로 저·중지방 어육류 식재료를 사용해 대상자의 혈압과 혈당을 관리하고 약물 복용 흡수를 도운다면, ‘신장질환식’은 칼륨·인 함량이 높지 않은 채소를 위주로 대상자의 저하된 신장 기능을 고려한다. ‘저작곤란식’은 치아가 좋지 않은 어르신을 위해 부드러운 식감을 만들어내는 식이다.

현재 단백질 섭취 보완이 필요한 박씨는 표고버섯, 쇠고기, 검정콩 등 식재료로 만든 만성질환자 영양간편식을 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고기가 먹고 싶었는데 말을 못했지.” 도시락을 받은 박씨가 말했다. 현재 광진구에선 23명의 독거 어르신이 영양간편식을 받고 있다.

차후 관리도 한다. 박씨는 건강돌봄팀 방문 이후 광진구 치매안심센터와 연결돼 치매 검사를 받았고, 광진 주거복지센터 지원으로 출입구 낙상 예방 안전바와 가스 차단 타이머, 방충망 등을 설치했다. 허리가 굽고 무릎이 허약한 상태에서 실버카에 의지해 걸어야 할 정도여서 높은 계단을 오르기 힘들었는데, 출입구 안전바가 부상 위험을 줄였다.

박유미 서울시 시민건강국장은 “만성질환을 가진 어르신들이 잃어버린 삶의 의지를 ‘영양 관리’가 독려하는 것을 자주 본다. 앞으로도 꾸준한 전문기관 검수와 현장 피드백을 바탕으로 식단 질을 높여 고립된 어르신들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소도구 역시 어르신 눈높이에 맞춘다.

글·사진 전유안 기자 fingerwhal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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