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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눈으로 집의 의미 사진에 담아”

주거 취약 아동·청소년 온라인 사진전 연 초록우산의 차용기 서울아동옹호센터장

등록 : 2020-10-0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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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에 10~24살 107명이 함께 준비

일회용 카메라로 집 안팎 찍어 보내

‘내 방·’ 오르막길·하늘 등 54점 전시

“아동 주거권 콘텐츠 플랫폼 첫발 떼”

9월25일 마포구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서울아동옹호센터에서 차용기 센터장이 ‘집으로 가는 길’ 온라인 사진전을 큰 화면에 띄워놓고 설명하고 있다.

지난 6월30일 서울시의회에서 또 하나의 전국 최초 조례가 만들어졌다. ‘서울시 아동 주거빈곤 해소를 위한 지원 조례’다. 전국의 아동 주거빈곤(94만 명, 2015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가구 넷 가운데 한 가구는 서울에 산다. 조례 제정은 아동 주거빈곤 문제가 심각한 서울에서 시가 좀더 주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조례가 만들어지기까지 서울시의회 민생실천위원회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초록우산)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초록우산은 5일 세계 주거의 날을 맞아 아동 주거권 보장을 위한 온라인 토론회를 열었다. 서울시주거복지센터, 하우징랩도 함께했다. 세 기관은 주거 취약 가구 아이들의 눈높이로 본 ‘집으로 가는 길’ 온라인 사진전도 같이 준비했다.

“아이들 시선으로 집의 의미를 보며 함께하고 싶었어요.” 9월25일 마포구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서울아동옹호센터에서 <서울&>과 만난 차용기(44) 센터장은 온라인 사진전의 취지를 설명했다. “사진작가들이 아이들 모습을 담은 기존 아동 주거 관련 사진전과는 다르게 접근하려 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8월 주거 취약 가구의 아동·청소년 107명에게 일회용 카메라를 나눠줬다. 아이들의 주거 상황은 다양했다. 18살 이상의 아동복지시설 보호종료 아동, 가정위탁 아동도 참여했다. 10살부터 24살까지 아이들이 한 달 동안 ‘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공간’ ‘집으로 가는 길 풍경’ 등을 찍어 카메라를 센터로 보냈다.

이번 기획은 아이들이 느끼는 그대로를 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사진 찍기 등 사전에 별다른 교육 없이 진행했다. 500여 점 가운데 54점을 실었다. 센터 직원들이 일일이 통화해 사진의 의미를 물어 설명을 달았다. 그는 “구도나 초점이 어색하더라도 아이들이 집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아이들이 렌즈에 담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내 방’이다. 침대, 화장대, 스탠드 전구, 눈 뜨면 바로 보이는 인형과 소품 등의 사진이다. 태어나 처음 갖게 된 ‘내 방’ 모습도 있고 자립생활관, 그룹홈 등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아이들의 시선을 담은 사진도 눈에 띈다. 어둠 속 침대맡에 있는 가족사진과 편지를 찍은 사진엔 원가족(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듯 애틋함이 묻어 있다. 공동생활로 취침 시간이 되면 전등을 끄는 ‘소등’ 뒤 어둠 속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순간을 찍은 사진엔 묘한 해방감이 깃들어 있다.

아이들이 생각하는 집의 범위는 넓다. 동네 입구 계단, 오르막길, 놀이터도 ‘내 집’이다. 집으로 가는 길의 하늘을 ‘내 집’의 모습으로 담기도 했다. 열악한 주거 환경에 사는 아이들이라 집에 대한 불편함을 더 표현할 거라 예상했는데, 아이들은 집을 행복한 공간으로 바라봤다. 불편을 느끼는 공간을 담은 사진은 거의 없었다. 차 센터장은 “아이들에게 집은 편안하며 물건이나 동식물 등과 관계를 맺는 공간이었다”고 풀이하며 “관계나 추억이 스며든 곳에 렌즈를 주로 맞춘 게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온라인으로만 열리는 이번 사진전은 ‘집으로 가는 길’ 누리집(omwh.net)에서 볼 수 있다. 누리집에는 앞으로 아동 주거권 관련 여러 형태의 콘텐츠를 쌓을 계획이다. 차 센터장은 “궁극적으로 아동 주거권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끌어내는 콘텐츠 플랫폼으로 가려 한다”고 했다. 이번 온라인 전시로 그 ‘첫발’을 뗀 셈이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차 센터장의 첫 직장이다. 초록우산에서 20년째 일하며 최근엔 아동 주거권 옹호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주거권은 아이들의 정서, 교육, 성장 등 전 생애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인데 어른들 주거 문제에 가려져 정책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안타까웠다”고 했다.

초록우산은 2016년부터 서울아동옹호센터를 만들어 정책과 법제도 개선에 나섰다. 그는 지난해 센터장을 맡아 서울시와 최저 주거기준 미달 아동 가구의 주거 상향 사업을 펼치고, 서울시 조례 제정을 위해 여러 기관과 협력해왔다. 센터에는 그와 4명의 직원이 함께 일하고 있다.

차 센터장은 “아동을 주거 정책 대상으로 인식하는 등 크게 봤을 때는 점차 좋아지고 있는데, 학대 사건 등을 접할 때는 무력감을 느낀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맞아 죽고, (교통사고 등으로) 길에서 죽는 아이들이 없길 간절하게 바란다”고 했다. 아이들을 부모 소유물로 보지 말라는 수준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심각한 상태라고 차 센터장은 지적한다. 그는 “서울시의 청년청이 만들어지듯 아동의 안전 문제를 총괄할 수 있는 중앙정부 차원 기구가 생기길 기대한다”고 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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