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비축기지와 종합운동장이 9월 미래유산 된 이유는?

서울시, 9월의 미래유산으로 마포석유비축기지, 잠실종합운동장, 소설 ‘날개’ 선정

등록 : 2020-09-1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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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9월과 인연 있는 문화유산들

석유기지, 2017년 문화공간 재탄생

종합운동장, 88올림픽 9월17일 개최

‘날개’, 작가 이상이 1937년 9월 발표


서울시는 현재 미래유산 470개 지정

“소중한 문화유산 관심 갖는 계기 되길”



현대의 서울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담은 유물은 100년 뒤 보물이 된다. 이런 취지에서 서울시는 2013년부터 이를 ‘서울미래유산’으로 칭하고 매달 해당 월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는 장소, 작품 등을 이달의 미래유산으로 선정해 소개해왔다.

서울미래유산은 다수의 시민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공통의 기억과 감성을 지닌 근현대 서울의 유산으로, 현재 470개가 지정됐다.

이번 9월의 미래유산에는 산업화 시대의 유산이 문화공간으로 재생된 ‘마포석유비축기지’, 서울올림픽 개최지인 ‘잠실종합운동장’, 천재 작가 이상의 소설 ‘날개’가 선정됐다. 이 셋은 모두 9월의 역사를 담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마포석유비축기지’는 2017년 9월1일 유류 저장소에서 시민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고, ‘잠실종합운동장’은 1988년 9월17일 열린 서울올림픽의 개최지다. 작가 이상의 소설 ‘날개’도 1936년 9월 잡지 <조광>에 발표됐다. 저마다 9월의 역사를 간직한 근현대사 흔적이다.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1973년 10월6일 제4차 중동전쟁이 일어나면서 이 전쟁에 참여한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여러 중동국이 단합해 석유 생산량을 줄였고, 그 결과 국제 원유 가격은 치솟았다. 1973년 10월 3달러 수준이던 국제 원유 가격이 1974년 1월에는 12달러로 4배 가까이 오르며 전세계는 인플레이션에 빠지게 됐다. 제1차 석유파동의 시작이었다.

이를 계기로 서울시가 유사시 서울의 안정적인 유류 공급을 위해 1978년 조성한 곳이 바로 마포석유비축기지다. 약 1개월간 서울시민이 소비할 수 있는 6907만 리터의 석유를 저장할 수 있는 이 시설은 총 5기의 석유탱크로 이뤄졌다. 당시 1급 보안시설로 분류돼 시민의 접근과 이용이 통제됐던 곳이기도 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안전상의 문제로 폐쇄됐다가 ‘공간 활용을 위한 시민 아이디어’ 공모를 통해 2017년 9월 ‘문화비축기지’로 재탄생했다. 현재 석유탱크 5곳 중 4곳은 공연장, 강의실, 이야기관, 커뮤니티센터 등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나머지 1곳은 원형을 보존해 유류저장탱크 본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화석 에너지 시대의 상징으로 보전 가치가 있어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다고 한다. 현재 문화비축기지의 야외 공원 공간은 연중무휴로 개방돼 다양한 동식물을 볼 수 있는 자연 친화적 둘레길로 가꿔져 서울시민의 쉼터로도 이용되고 있다.

올림픽 주경기장으로 사용된 잠실종합운동장은 1984년 고 김수근 건축가의 한국적 작품 설계를 바탕으로 건설됐으며 서울올림픽 개최 당시 한국의 미를 세계에 알렸다는 점에서 높은 의의를 지닌다.

마포석유비축기지

서울올림픽은 1981년 9월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제84차 국제올림픽위원회 총회에서 결정됐다. 당시 차기 올림픽 개최지로 서울과 일본 나고야가 입후보했는데, 위원들의 비밀투표 결과 득표수 52 대 27로 서울이 압승했다고 전해진다.

잠실종합운동장은 흔히 ‘화합과 평화의 중심지’로 불린다. 1980년에 열린 모스크바올림픽은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보이콧으로, 1984년에 개최된 로스앤젤레스올림픽은 소련 등 사회주의권 국가의 보이콧으로 반쪽 올림픽으로 치러야 했다. 서울올림픽은 이런 분열을 넘어 동서 양 진영이 모두 참여하는 올림픽으로 치러지게 되면서 화합과 평화의 올림픽으로 불리게 됐다.

실제로 서울올림픽은 한국이라는 분단국가에서 올림픽을 개최함으로써 세계 160개국이 참여하는 당시를 기준으로 할 때 올림픽 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됐다. 또한 선진국이 아닌 개발도상국에서 사실상 처음 열린 올림픽이라는 점도 주목받았다. 그 결과 헝가리, 동독, 유고슬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 등 공산권 국가를 비롯한 다양한 국가와 수교를 시작하면서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다. 서울올림픽 당시 한국산 제품을 사용해본 국가들이 그 품질을 인정해 한국산 물품을 활발하게 수입하기 시작하면서 경제적인 위상도 높아졌다.

단편소설 ‘날개’는 천재 작가 이상(1910~1937)의 대표작이다. 일제강점기 지식인의 자기 소모적인 모습을 의식의 내면으로 투영한 실험적 문체를 선보이며 한국 현대 소설사의 분기점이 됐다.

이상의 본명은 김해경이다. 그는 필명으로 ‘이상’을 선택했다. 이에 관련된 일화가 있다. 이상의 어릴 적 친구인 화가 구본웅에게 선물로 받은 화구 상자에서 필명이 유래됐다는 것이다. 구본웅의 조카 구광모씨가 2003년 한 언론에 이와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이상의 소설 ‘날개’

“그의 졸업과 입학을 축하하려고 구본웅은 김해경에게 ‘사생상’(화구 상자)을 선물했다. 김해경이 그간 너무도 가지고 싶었던 것이 바로 사생상이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자기도 제대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고 감격했다. 그는 간절한 소원이던 사생상을 선물로 받은 감사의 표시로, 자기 아호에 사생상의 ‘상자’를 의미하는 ‘상’(箱) 자를 넣겠다며 흥분했다.”

통인동에 있는 ‘이상의 집’은 과거 이상의 백부 김연필의 가옥이었다. 이상은 1912년부터 1932년까지 이곳에서 생활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이 터는 근린생활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이상의 시, 소설, 수필, 서신, 그림, 삽화 등 다양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어 예술가로서의 이상의 자취를 되새겨볼 수 있다.

이달의 미래유산과 관련된 카드뉴스와 흥미로운 읽을거리는 ‘서울미래유산 누리집’(futureheritage.seoul.go.kr)의 이달의 미래유산 게시판과 서울미래유산 인스타그램·페이스북에서 읽어볼 수 있다. 이밖에도 서울시는 미래유산 보존에 대한 시민 공감대 형성을 위해 공모전, 돈의문박물관마을 내 ‘서울미래유산관’ 운영 등 시민과 함께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김경탁 서울시 문화정책과장은 “9월의 미래유산은 독서의 계절을 맞이해 시민 여러분이 읽어볼 수 있는 소설 ‘날개’를 비롯하여 1970~80년대의 기억을 되살리는 미래유산들로 선정했다”며 “매월 소개되는 이달의 미래유산을 통해 우리 주변의 미래유산에 대해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잠실종합운동장

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 사진 서울시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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